-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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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님, 현정효 선생님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겨울 자작나무 숲을 다녀왔습니다.
나무는 잎을 다 떨구고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펴듯 서 있습니다.
나뭇가지들이 그리움의 손을 뻗어 서로 마주잡고
하늘까지 닿을 듯 합니다.
자작나무 숲은 사시사철 반짝이는 빛의 숲입니다.
봄, 여름 눈부신 햇살을 머금은 이파리들의 은빛 파도
가을 자작나무는 황금빛으로 화답하고
겨울이 되면 푸른 하늘을 향한 거침없는 은빛 줄기
눈이 부십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항상 그런 분이셨습니다.
섬 머스메 같은 시골 촌뜨기 우리를
때로는 은빛으로 때로는 황금빛으로 때로는 푸른 창공을 향한 기상으로
빛나게 하셨습니다.
유난히 몸이 허약하고 쪼그만 아이
유난히 감수성이 예민해 자주 울던 아이
절대적 지지자의 부재로 사랑에 목마른 아이
그 아이에게 선생님은 동무였고 엄마였고 스승이셨습니다.
그 시절,
나만 홀로 세상에 내팽겨쳐진듯 했고
순수가 오히려 짐이 되던 그 때
스승님은 저의 든든한 후원자였고
절대적 지지자였으며, 변호인이셨습니다.
스승님,
자작나무가 자신의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벗어던지므로 더욱 빛이나는 것처럼
늘 성장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영혼이 깃들어 사는 자작나무
밤마다 손을 뻗어 별을 먹고 사는 자작나무
겨울에 유난히 아름다운 자작나무
천천히 자작나무 숲을 거닐며
선생님과의 인연에 참 행복합니다
선생님 올 겨울엔 스승님과
저 눈부신 숲을 거닐고 싶습니다.
겨울 자작나무 아래서 ….은미 드림.
자작나무
로버트 프로스트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타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꿈꿀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심려에 지쳤을 때
그리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
거미줄에 걸려 얼굴이 달고 간지러울 때
내 한 쪽 눈이 작은 나뭇가지에 스쳐 눈물이 흐를 때
나는 잠시 세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새 시작을 하고 싶어집니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나를 잘못 이해하고
반만 내 소원을 들어주어
나를 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더 좋은 세상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늘을 향해, 눈같이 하얀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습니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