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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3일 20시 50분 등록

 
(케이 날아오르다 -  케이에게 주는 글)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지. 나는 어딘가를 가고 있었잖아. 단지 고개를 들어 얼굴을 간질이는 햇살을 잠깐 느꼈을 뿐인데, 잠깐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을 봤을 뿐인데. 구름이 흩어진 사이로 다시 내지르는 햇살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대체 여긴 어디인거야.

지금까지 곁에 있던 엄마, 아빠는 어디에 계시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대체 어디쪽에 계시지. 줄곧 내 옆에서 같이 길을 걷고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린 거야. 케이는 갑자가 눈 앞이 캄캄해졌다. 몇 번을 눈을 껌벅이고 나자 다시 환한 세상이 보였다. 그때 내 앞에는 빙글빙글 웃으며 꼬마가 하나 서 있었다.


“글세. 몇 명의 사람들이 여기 이 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보았어. 그 사람들이 너와 같이 이곳에 온 사람들이니?”


나는 그 말에 얼른 모퉁이쪽으로 돌아서 달려갔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방금 돌아온 모퉁이 저쪽과 다를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물어서 난 모르겠어. 보통은 누군가를 만나면 ‘안녕, 난 타오야. 넌 누구니?’라고 묻던데.”

어느새 꼬마는 다가와 말을 건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었다.

“넌 누구니? 타오?”

“응. 넌?”

“아, 안녕, 난 케이.”

“안녕, 케이. 넌 방금 길을 잃은 모양이구나. 나도 막 길을 잃었을 때처럼 마구 묻곤 했어.”

“아 그러니.”

나는 길을 잃은 게 분명하다. 낯선 아이, 타오가 일러주지 않아도 나는 이곳이 이전에 내가 걷고 있던 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모퉁이를 돌면 막힌 벽과 그 옆으로 이어지는 다른 길이 나타나는 이 길은 미로와 같다.


“저기, 저 나랑 같이 갈래?”

“응?”

일행을 놓치자 마자 불쑥 나타난 낯선 꼬마에게서 듣는 말. 그것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사실 나 여기서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말야.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안될까. 어파치 이 길은 오래 같이 가진 못할거야. 네가 같이 온 일행을 잃어버렸듯이, 나도 그렇게 일행과 헤어졌어. 누군가가 날 부르는 것 같아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거든. 그리고 다시 앞을 보니 일행이 없더라구.”


나는 타오와 그렇게 같이 길을 걸었다. 길은 길과 이어졌고, 또 길은 무언가로 가로 막혀 있거나 어딘가로 꺽여 있었다. 어떤 길은 막혀서 다시 한참을 돌아나와야 했다. 어떤 길은 무척 따뜻했고, 어떤 길은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길을 걷는 동안 타오 외에 또 누군가가 내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희미한 무엇인가가 나를 이끄는 듯했다. 길을 걷다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볼 때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그림자. 그것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보이지 않았다.


미로 속을 헤맨지 벌써 보름. 이곳에서의 시간은 조용히 흐른다.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 그것 뿐이다. 그것에서 시간을 찾기란 어렵다. 어제의 빛과 오늘의 빛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낮동안에는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고요가 더욱 고요함을 더하는 밤의 시간에 나는 깨어 있다. 하늘에 둥근 달. 점점 커가는 달. 그것이 아니었다면 내가 헤맨 이곳에서의 시간이 멈췄다고 했으리라. 어제의 미로는 오늘의 미로와 같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 만한 것은 하늘에 보이는 달뿐이다.


옆에서 곤히 자는 타오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 길모퉁을 돈 그 순간. 나와 가족들이 길을 잃어버린 순간. 같이 길을 걷던 사람이 없어졌던 순간. 그리고 잠시의 침묵 속에 나타난 이 꼬마는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타오의 숨소리는 고른 조용한 음악소리다. 길을 걷다 잠깐씩 올려다본 앞쪽의 하늘에 잠깐씩 희미하게 보였던 것은 나의 그림자였다. 그렇다. 그런 분명 나의 그림자이다. 본디 내 것이었던 나의 그림자. 나와 같이 길을 걷던 것이 바로 저 앞에 있다. 앞쪽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쭉 뻗은 길. 이 길은 여지껏 보아온 길과는 다르다. 우리는 옆쪽으로 돌아보았다. 왼쪽의 길은 막혔다. 오른쪽의 길은 결국 다시 이 길로 되돌아 오는 길이다. 앞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앞쪽에 놓인 길 뿐이다. 단지 건너가기 어려울 만큼 큰 웅덩이가 있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여지껏 온 길과 다들바 없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길이다. 순간 희미한 영상, 나의 그림자가 웅덩이의 끝에 보였다. 나는 그곳을 응시했다.

“너도 여길 건너려고 하는 거지? 얼마나 넓은지 가늠해 보는 거야?”

내게 보이는 것이 타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여지껏 길을 걷는 동안 타오는 희미한 그림자에 대해선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만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어느새 타오는 뒤돌아서 길의 끝에 가더니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훌쩍 도약하더니 웅덩이의 끝에 간신히 착지하나 했더니 구르고는 매달려 있다.

“기다려. 내가 그쪽으로 갈께.”

나는 뒤로 몇 발짝 물러 힘껏 도약했다. 다행이 반대쪽에 무사히 착지했다. 얼른 몸을 돌려 타오를 끌어올렸다.

“하아~, 하아. 그런데 괜찮아? 쿵하고 떨어지던데. 발목 괜찮아?”

그러고 보니 발목이 시큰거린다. 나또한 숨이 고르지 않다는 것도 이제야 알아차린다. 가슴이 먹먹함이 가라앉자 차츰 숨이 돌아온다.

“고마워.”

“......”

“난 여지껏 이 웅덩이를 한번도 건너지 못했거든.”

그럼 타오는 이 길을 와보았단 말인가. 길을 잃을 때 만남처럼 점점 미스테리다. 

“사실은 나랑 같이 여길 뛰어줄 사람을 기다렸어. 바로 너 말이야.”

나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타오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난 이 길을 알고 있었어. 너도 이미 헤매다가 알았겠지만, 여기 이 길 말고는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은 없었어. 그래서 난 눈 딱감고 뛰었지. 웅덩이에 곤두박질, 그렇지 않으면 끝에 매달리기. 그리고 떨어졌지. 기어오르면 또 뛰고....”

그게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넌 바로 뛰어와 날 구해줬잖아. 네가 없었다면 난 또 한번 시도하지 않았을거야. 혹은 한다고 해도 또 주르르 미끄러졌을지도 모르지. 고마워.”

별걸 다 고마워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건데. 타오가 웃는 것을 보다 빙그레 같이 웃었다. 당연한 상황이긴한데, 어쩌면 나는 혼자였다면 이 웅덩이를 건너뛸 생각을 했을까. 웅덩이 이쪽 끝에 희미하게 보였던 그림자. 그러고 보니 그림자는 우리가 가야할 곳의 앞쪽에 있었다.  여지껏 그림자를 따라왔단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또렷해 지고 있는 그림자. 나와 닮은 모습. 나의 그림자. 나는 앞쪽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이완하면 점점 더 또점점 더 또렷해지는 그림자를 따라 앞쪽으로 갔다. 끝이 보이는 길다란 길이다. 내 그림자는 어느새 내 앞쪽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그림자가 멈추어선 곳. 그곳에는 또 다른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다. 먼저것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이번 것은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자는 여전히 앞쪽에 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타오는 뒤로 돌아갔다.

“잠깐만. 여기 이길 말고는 없다는 걸 너도 알잖아.”

“그래. 알아.”

“너 되돌아 가려던 거 아니었어?”

타오는 대답이 없다. 숨을 가다듬고 뛸 준비를 한다.

“괜찮겠어?”

“....”

“여기 건너는 거 말이야. 아까 거보다 훨씬 크잖아.”

“너도 알잖아 여기 말고는 돌아갈 길이 없다는 걸.”

타오는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그렇다. 이길 말고는 길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하려구?”

“우리가 지나온 길들이 새로 배치되지 않는 한 나는 이 길을 가야 할거야.”

나는 그 순간 타오가 결심이 선 것을 느꼈다. 또 한 그 길에서 타오와 헤어지게 될 거란 짐작을 헤본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 아닌 타오는 ‘나’라는 말을 쓰고 있다.

“저 검은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 나는 줄곧 그 북소리를 따라왔어.”

“응? 소리? 내겐 들리지 않는데.....”

“역시 그렇구나. 내게만 들리는 거구나.”

내게 그 웅덩이는 단지 검은 웅덩이일 뿐이다. 북소리 같은 것은 없다. 타오에게 고요함 속에 비치는 밝은 빛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듯이, 북소리도 내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케이, 난 저 아래로 갈 거야.”

타오는 몇 발짝 내게서 떨어지더니 웅덩이 쪽으로 달렸다. 어둠 속에 떨어질 것이 뻔한 데 달린다. 타오는 아래로 내려가려는 것일까. 타오의 몸이 붕 떠오르나 싶더니 인사를 했다.

“Bye”


타오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더 이상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쪽으로 난 길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여지껏 모퉁이를 돌기전에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던 것처럼 이 웅덩이들도 어쩌면 그런 모양일지 모르겠다. 나는 오래도록 검은 웅덩이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하얀 날 닮은 그림자가 거기에 있었다. 그림자는 더욱 또렷해져 있었다. 나는 머리에서 발끝으로 천천히 그것들을 응시했다. 나를 보고 있는 눈, 앞으로 내민 손, 하늘거리는 옷, 그리고 달개 달린 신발.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길을 잃었던 순간처럼 내 얼굴을 간지이던 따뜻한 햇살 같은 따뜻한 바람이다. 나는 잠시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짐작해 보았다. 눈으로 보면 막힌 길, 밑으로 꺼진 길이다. 그 속 어딘가에 길이 있음을 짐작한다. 바람이 불어 오고 있는 곳. 내 그림자가 선 곳. 그림자는 바로 나의 모습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가슴 깊이 숨을 들이 쉬었다. 마음이 차분해 졌다.


어쩌면 이번엔 그림자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 그 것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나는 힘껏 달렸다. 웅덩이의 넓이는 더 이상 상관이 없었다. 나는 길 저 위쪽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있는 힘껏 두딪혀 갔다. 나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림자에 닿는 순간 그것은 내게 녹아들었다. 나는 빛을 따라 날아 올랐다.


아래쪽으로 내가 지나온 길들이 점점 작아져갔다.

내가 지나온 길이지만 다르게 보이는 그곳에 인사를 했다.

“Bye!”

그리고.... 

“Hello!”

IP *.209.17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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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4 00:53:29 *.38.102.232

  음. 뭐랄까. 말그대로 꿈인 듯,  작가는 다알고 있지만, 독자에게도 그꿈을 좀더 보여주면 안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  

 드뎌 시작했네. 계속 쓰면 꿈에 다다르겠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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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12.24 07:31:41 *.209.172.49
그러게요. '케이 날아 오르다'라는 주제로 다른 글을 쓰던가, 이글에 설명을 달아야 할까봐요.
설명을 해야 할만큼 전달력이 떨어지면 안되는데....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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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9.01.09 20:42:16 *.193.194.22
캬~아..

'어제의 미로는 오늘의 미로와 같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 만한 것은 하늘에 보이는 달 뿐이다.'

연일 야근을 해보니 더 깊이 다가온다.

중학시절 내 머리속을 인수분해 시켰던
까뮈의 이방인과 도스트예프스키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그리고 장 폴 사르트르의 '벽'  카프카의 '城'이 떠오르는 문구다.

그들도 독자들에게 불친절하기는 마찬가지 설명도 논리도 이유도 없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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