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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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편지]
시작의 말, 비난
한동안 부지런떤다고 책을 읽고 나면 블로그에 리뷰를 올렸다. 책에 대한 리뷰라기엔 그날의 일상을 책을 엮어 주절거렸다는 것이 더 맞겠다. 더 이상 새 글을 올리지 못한 시점이 4년 전인데 글을 올릴 수 없었던 이유 중 1순위가 책을 읽지 않아서다. 그럼 왜 책을 왜 읽지 않았는가. 거기에 여러 이유들이 주렁주렁 매달릴 테다.
오래도록 책을 읽지 않은 기간으로 꼽힐 이 시기 덕분에 독서가 내 취미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완료하지 못할 때마다 그것에 내가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체념과도 같은 사실을 확인하곤 한다. 특별히 다른 것을 소원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음으로 유일무이한 욕망인 그것에 제법 열성으로 전진할 만도 하건만 걸핏하면 손을 놓으려는 이 의지는 오래도록 자리를 차지한 그 욕망이 무거워서 일지도 모르겠고, 이미 실현의 욕망이 거세된 채 자리를 차지한 그것이 눈에 띄지 않는 장식품과도 같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글이라면 나는 지금, 또, 왜, 쓰고 있는 것인가.
가끔, 오래 처박아둔 장식품에 쌓인 먼지도 털고 싶어질 때가 있다. 툭, 툭. 아니면 털털, 탈탈.
단지 이런 말로 오랜 마음편지의 공백을 그리고 발송을 얘기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인들 적절할까 싶다. 어떻게 표현해도 뻔한 이야기,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이유의 첫 번째는 직장인으로서 바쁜 업무, 업무. 이렇듯 철저한 아니 처절한 직장인의 삶을 반복하며 행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삶을 결정짓고 마는구나 생각하기도 한다. 월마다 나오는 급여가 미래 행복의 담보이리라는 신화 속에서 언제라도 급여가 사라질까 버둥거리는 삶. 많은 과정을 지나왔고 무수한 생각들로 그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보고 있으면 씁쓸하고 허무하다. 하지만 이 오랜 일상 속에서 비단 그 이유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스러진다’. 독서 리뷰를 하며 올렸던 블로그의 마지막 글 제목이다. 새로운 직장에서 일주일 후 적은 글이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예언이었던 것처럼 나는 지금까지 스러져 있었던가 싶다.
때로 인간은 어떤 단어 속에 매몰된다. 나는 직장인으로 연명하기로 한 순간부터 저 말에 매몰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당시 책 속 주인공인 ‘바틀비’를 ‘저항’의 인물이라기보다 ‘패배’한 인간으로 보았다. 바틀비가 조용히 외치는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는 말이 귓 속에서 울리고 있다. 저항일까, 패배일까. 어쨌든 스러진다, 패배한다는 부정적인 말을 자기충족적예언처럼 달고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나는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었다. 세상의 좋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글 또한 자기충족적예언을 담고 있다면 어떡하든 잘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러한 글들이 좀 더 세상에 많아지는 것일 테니. 그리하여 나 또한 아름다운 단어들을 만들고 그런 기억 속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언어는 점점 아름다움과는 멀어진다. 권력이라던가 조직이라던가 세상의 규율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 사람 하나하나에 대한 비난이 더욱 차올라지면서 내 삶을 채운다. 내 글을 채운다. 어떤 단어도 채우지 못하고 계절이 지나갔다.
그런데, 세상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보는 이의 ‘눈’을 배울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배울까. 오래도록 생각했다.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의 외침이 그렇게 내 입을 뚫고 다시 나온다.
보이는 세상이 암흑이라면 암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내 눈 앞의 누군가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면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거짓말을 멈추진 못할 지라도 거짓말을 줄일 수 있도록 말이다. 적어도 그 거짓말로 상처입고 스러지는 사람은 없어야 하니까.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니까.
누군가가 강조했던 것처럼,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비록 비난처럼 들리고 보일 지라도 그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이 공정하다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선이 거리낌이 없다면, 그건 결국 비난만은 아니라 비판일 터이니 비난이 나를 갉아먹을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나는 평정심과 정체성을 찾아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