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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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제가 고등학생일 때 일입니다. 제 작은 누님이 지인이 다니던 절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었는데요. 그 절의 주지스님에게 남동생 중 한 명이 나중에 크게 성공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그 스님이 신통력이 있는 걸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그러더군요. 그 얘기를 전해들은 가족들은 모두 제가 성공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남동생보다 제가 공부를 잘 했기 때문이였죠. 치기 어린 시절 저 역시 그 얘기를 듣고 장차 제가 성공할 거라는 흐뭇한 기대를 품었죠.
젊은 시절 힘들 때면 불현듯 그 스님이 했다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대체 난 성공한 삶을 언제부터 살수 있는 거지? 조바심이 났습니다. 삶이 찌질해질때면 내가 아닌 남동생이 성공하나보다 하는 씁쓸한 자괴감이 들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성공이란 것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스님의 예언(?)이 다시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스님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이 부자가 된다던지 유명인사가 된다던지 하는 속세의 성공을 말한 걸까 하는 의문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스님의 입장에서 성공은 뭔가요? 성불하는 거죠. 그러면서 솔직히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음… 그런 성공이라면 별로 하기 싫은데….” ^^;;;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든 유명인사든 혹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성공이든지 그게 뭐든지 간에 대체 성공이란 놈을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누님에게 들은 얘기에는 성공을 한다는 것 뿐이였지, 제가 언제 성공을 한다는 얘기는 없었거든요. 설마 역사의 위인들처럼 사후에 성공하는 것인가... 막연한 미래를 쫓으며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덧 중년에 이르렀습니다.
성공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 그럴 듯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지금의 나를 원하는 미래의 모습에 끝없이 맞추려는 시도가 성공을 위한 노력입니다. 주위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만, 정작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 완성된 성공의 트로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30평 아파트에서 살다가 50평 아파트로 옮기면 성공인 것인지, 그렇다면 50평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들일까요…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한 걸까요? 그럼 얼마나 벌어야 할까요?
과연 미래에 난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중년이 되고 이상보다는 현실에 삶을 수렴해나가게 되면서 뜬구름 잡는 성공이라는 것은 더 이상 찾기 어려운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공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반평생을 살다가 현실의 무게속에서 지난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럼 이제 결정해야겠지요. 아직 잡히지 않은 성공이란 녀석을 잡기 위해 닮아가는 무릎연골을 붙잡고 계속 달려야 할지, 아니면 아직 만나본 적 없는 성공이란 녀석의 정체를 재정의할지 말입니다.
또 다른 성공에 대한 정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바꾸는 겁니다. 미래의 성공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 삶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을 스스로와의 타협이라고도 폄하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스스로에 대한 성공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쫓던 성공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이라면 그럴 겁니다. 그런 경우 행복해지기는 쉽지 않겠죠.
진정으로 성공의 기준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만 바꾸면 된다지만, 생각을 바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습니다. 단순한 생각 하나하나조차 많은 것들이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내 삶이니 나만 알아서 하면 참 좋겠습니다만,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타인에게 잠식되어 있고, 우리가 그동안 쫓던 성공이라는 것 역시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행복으로 바꿔도 같은 이야기일듯 합니다. 지금 나 자신에게 성공과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마음편지 드렸네요. 이제 장마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무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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