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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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남편이 급하게 깨우길래 일어나 아이의 작은 몸을 안아보니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요 며칠 바깥 외출이 잦았는데 어디에선가 옮은 모양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도 아프고, 다른 가족들도 아이 간병을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습니다.
낮에는 아이가 계속 안아 달라고 떼를 쓰고, 밤에는 울다 지친 아기를 깨워 시간마다 열을 재고 약을 먹이고 다시 달래서 재워야 했습니다. 열은 떨어지는 듯하다가도 새벽이 되면 다시 38도를 넘기 일쑤였습니다. 간병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아직 태어난 지 일 년도 안된 작은 아기가 그렁그렁 한 기침을 하고 소스라치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대신 아팠으면 싶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아이도 서서히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아마 제가 온전히 아이를 맡았던 이틀이 가장 병세가 극에 치달을 때였던 모양입니다.
혼자 이틀 동안 아이를 간병하고 나니 저도 지쳤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병세가 나아진 남편이 아이를 잠시 맡아주었을 때 화장실에 갔다가 저는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큰 고비는 넘겼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 자신이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한동안 눈물을 흘려보내고 세수를 하고 화장실에서 나온 저는 이틀 전보다 부쩍 큰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정도로는 울지 않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쓰이는 말이 있지요. 저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되기만 하면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강해진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 문장 자체는 제 나름대로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자는 약했으나 어머니로 거듭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보호받기만 하던 존재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강해진다는 것은 상당히 강력한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저는 소년만화나 히어로물에서나 이런 방향성의 강함 추구를 봐왔는데, 이제는 제가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점점 내려놓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이제 이백일이 갓 지났는데 앞으로 그럴 일이 얼마나 더 많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로 거듭나는 중인 모양입니다.
저뿐 아니라 아이도 아픈 만큼 성장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아프기 전에는 못했던 무릎 꿇고 엎드리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안아달라고 전하고 싶을 때마다 기침을 하며 아픈 시늉을 하는 것은 덤입니다. 약간 영악해진 녀석이 자동차 사고를 가장한 보험 사기단 같아서 웃기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응석을 받아줄 셈입니다. 지난주 마음 편지를 건너뛴 변명이 담긴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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