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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2일 12시 45분 등록

 조카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았는지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일본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일본 만화를 좋아해와서 그 재미를 공유할 수 있는 조카가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긴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어서 마음이 복잡합니다. 20년 넘게 일본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보다 보니, 이게 한국인 입장에서 볼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면서 봐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인기가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온 작품 중에서 ‘바람이 분다’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이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성장한 주인공이 실제로 꿈을 이뤄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주인공이 카미카제로 악명 높은 제로센이란 전투기를 만든 항공기 설계자였습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지브리답게 영상미가 높고 연출도 드라마틱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아름다운 장막을 한 겹 들춰보면 주인공이 만든 비행기가 전장에서 폭탄과 총을 달고 폭격을 퍼붓고, 인간방패를 태우고 미국 전함으로 들이받는 현실이 있다는 것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만약 어떤 어린이가 ‘이 만화를 보고 비행기 설계자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한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1987년 생이고,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에는 일본 문화를 그대로 수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공중파에서 일본 만화를 방영해 주기는 했지만 이름과 지명은 모두 한국인, 한국지명으로 바뀌었고, 만화 주제가도 한국 버전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모노 등 일본적인 것을 담고 있는 화는 아예 통째로 편집되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일본 문화가 개방되고 나서도 한동안 한국 현지화 기조는 유지되었는데, 최근에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막을 달아 원문 그대로 방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 콘텐츠를 접하는 순간부터 한국인으로서의 감각과 시각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조카보다 어른이면서 만화도 어느 정도 본 제가 국사를 깊게,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침 좋은 기회에 학창 시절 이후 처음으로 국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7차 교육과정과는 달리, 수능에서 국사가 전체 필수 과목이 되었다고 하니, 아마 조카도 학교에서 머리를 싸매고 역사적 사건들을 외우게 될 거라 예상되지만, 또 국사를 좋아하고 재미있게 공부한 가족이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약간의 의무감을 갖고 시작한 국사 공부였습니다만, 덕분에 멋진 선조님들과 아름다운 유물들을 새로이 알게 되는 즐거움(이렇게 멋있다니!)과 놀라움(내가 몰랐다니!)을 느끼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주변에 다른 나라에서 만든 콘텐츠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도 살짝 알려줘 보세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분명 흥미를 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또 혹시 모르죠. 그중에서 한국의 새로운 이야기꾼이 나타날지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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