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어니언
  • 조회 수 1858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24년 12월 19일 08시 37분 등록

어제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날이 몹시 추워서 옷을 겹겹이 입혀 갔더니 성당 안에서 덥다고 찡찡대는 통에, 가져간 다른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성당이었습니다. 마침 다음 주가 크리스마스여서 제단에는 작은 구유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안고 크리스마스 구유를 바라보니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구세주가 될 아기가 동물들이 먹이를 먹는 말구유에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내 품에 안긴 작은 아이와 겹쳐 보이며, 그 겸손함과 사랑의 상징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의식은 제대에 있는 초에 불을 붙이며 시작되었습니다. 몇 가지 기도문과 다짐이 진행되고, 아이의 가슴에 향유를 바른 후 이마에 물을 부었습니다. 세례를 상징하는 하얀 천을 아이에게 씌워주고, 희망과 생명의 빛을 상징하는 커다란 초의 불꽃을 옮겨 작은 유리컵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삼십 분 남짓한 짧은 의식이었지만, 돌도 안 된 아기에게는 갑갑한 시간이었는지 마구 움직이고 싶어 했습니다. 아이를 붙드느라 애를 먹으면서도, 한 생명이 많은 축복을 받는 순간임을 실감했습니다.


천주교에서 유아세례는 부모가 종교를 통해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겠다는 다짐을 하고, 가족뿐 아니라 공동체가 아이의 축복과 성장의 여정을 함께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례식에서 사용하는 물은 영적인 깨끗함과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 순간이 아이와 가족, 공동체 모두에게 깊은 의미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참으로 우연하게도 수녀님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직계 가족들 모두 천주교 신자라는 공통점 덕분인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종교적인 의식은 빠짐 없이 진행해왔습니다. 어제도 많은 가족들이 참석해 주었는데, 외할머니는 멋진 빨간 포인세티아 꽃바구니를 선물해 주셨고, 친할머니는 절친한 친구분이 직접 만든 묵주를 건네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맛있는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주인공인 아이 대신 엄마, 아빠가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촌 누나와 형은 학업을 잠시 뒤로 미루고 시간을 내어주었습니다. 이 모든 사랑과 축복 속에서 아이가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뭉클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를 통해 드러나는 나의 존재 의미와, 아이가 찾아갈 자신의 존재 의미가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가 되길 바랍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닐 테지만, 어제의 경험은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하였습니다.


아이는 힘든 일정 속에서도 매우 협조적이었습니다. 오전 4시 반부터 저녁 9시까지 이어진 긴 일정이었지만, 전날부터 설계한 식사와 낮잠 패턴을 충실히 따라주었습니다. 특히, 아이가 세례 받는 순간의 해프닝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마에 물을 붓는 순간, 아이가 밑에 받친 수건을 잡아당겨 물이 와장창 얼굴로 쏟아지며 '유스티노'라고 쓰인 턱받이를 축축하게 적셨습니다. 모두가 웃음 짓는 사이, 아이의 이름과 세례명이 함께 축복받는 특별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며 창밖을 보니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습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보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별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아이가 자신의 삶 속에 별처럼 빛나는 축복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IP *.166.87.118

프로필 이미지
2024.12.19 20:13:27 *.133.149.229
축하드리며, 아이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24.12.19 23:41:39 *.42.7.33

유스티노의 유아세례 축하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2024.12.20 09:05:27 *.97.54.111

아기의 앞날에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길 빕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54 엄마, 자신, 균형 [1] 어니언 2024.12.05 1414
4353 [수요편지] 능력의 범위 불씨 2025.01.08 1429
4352 삶의 여정: 호빗과 함께 돌아본 한 해 [1] 어니언 2024.12.26 1436
4351 목요편지 - 아내의 눈물 [2] 운제 2018.10.18 1464
4350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종종 2022.07.12 1481
4349 [수요편지] 발심 [2] 불씨 2024.12.18 1484
4348 [일상에 스민 문학] 에필로그 [4] 정재엽 2018.12.26 1488
4347 [일상에 스민 문학] 휴가 책 이야기 1. 정재엽 2018.08.15 1491
4346 [금욜편지 89- 21세기에 프로로 산다는 것은] [4] 수희향 2019.05.24 1509
4345 목요편지 - 요가수업 [2] 운제 2019.05.09 1512
4344 [수요편지] 위대한 근대인 [2] 장재용 2019.04.03 1523
4343 [금욜편지 32- 서울산업진흥원 창업닥터] 수희향 2018.04.13 1524
4342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제산 2018.12.24 1526
4341 [금욜편지 98- 내가 만드는 나의 미래] 수희향 2019.07.26 1526
4340 핀테크는 왜 '개인금융의 미래'라 불리는가?(2편)-레이니스트 [2] 차칸양 2017.10.10 1527
4339 ‘1인 기업가’ 차칸양의 직업, 일, 미션 이야기 file [6] 차칸양 2018.06.12 1527
4338 목요편지 - 북수꽃이 피었어요 [3] 운제 2019.02.21 1527
4337 어린이날 어떻게 보내셨나요? 제산 2019.05.06 1527
4336 목요편지 - 포근한 겨울 운제 2020.01.23 1527
4335 자신에게 냉정한 통찰력을 발휘하라 [2] 이철민 2017.10.12 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