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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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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5일 06시 23분 등록

회식이야기 1

오늘은 회식일이다. 나는 술을 그다지 잘 하지 못한다. 소주 반병정도? 그 이상 마시면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 증세가 심해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안 마시려 한다. 하지만 조직생활이 어디 내 맘대로 되는가. 좋아도 마셔야 하고 싫어도 마셔야 하는 것. 그래서 마신다. 그리고 구토한다. 변기를 부여안고 눈물 콧물 다 흘린다. 내 스스로의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만이 들을 수 있는 변기의 슬픈 변생사(便生史)도 눈물없이 같이하기 힘들다. 한바탕 변기와 난리 부르스를 치고 나면 속이 많이 가라앉는다. 동병상련이란 이런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식자리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변기와 이별하는 순간, 2라운드가 시작된다. 힘들어도 별 거 아니라는 듯 괜찮은 척 해야만 하고, 자리에 앉아 술을 주면 또 마셔야 하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가 싫고 조직생활이 힘들어 지기만 한다.

이쁜척 나미인씨가 오늘은 상당히 업 되어 보인다.

“오홋, 팀장님~, 팀장님~ 오늘 저녁 때는 조 앞에 새로 생긴 소고기집 어떠세요? 신규오픈해서 식당도 깨끗하고 서비스도 좋다고 하던데요~ 요즘 삼겹살만 먹었더니 제 날씬한 몸매에도 웬지 이겹, 삼겹으로 겹겹이 층이 지는거 같아서요~ 그리고 우리 최근에 사실 경비 아낀다고 회식도 자주 못가졌었잖아요~ 어때요, 팀장님~ 제 생각이 좋쵸?”

홍일점 나미인씨가 복부에 살짝 힘을 주면서 콧소리로 선방을 날린다.

“허허허~!! 우리 나미인씨가 소고길 먹자는데 누가 말리나~ 그래그래~!! 오늘은 특별히 나미인씨를 위해 그곳을 가자구~!! 김대리~!! 어때, 예산은 충분하지?”

오늘도 역시 기분은 팀장이 다 내고 계산하고 나중 예산처리 하느라 욕 보는 건 항상 마찬가지로 내 역할이 될 듯 싶다.

“아, 네... 조금 부족할 듯 싶지만 아껴 먹으면 될 것도 같습니다만...”

“아니, 이 친구가~ 그런 말이 어디있어? 부족하면 부족하고, 충분하면 충분한거지. 회식하는데 아껴먹고 자시구가 어디있나? 모잘러? 모자르면 내가 부족분은 사비로 내지. 팀장 자리가 그럴 때 쓰라고 있는거 아니겠어? 나미인씨!! 예산 걱정말고 맘껏 먹으라구~!! 내 그 정도 능력은 충분하니까 말이야, 허허허...”

팀장의 호기스러운 웃음에 돌아가던 상황을 지켜보던 강대리 한마디 한다.

“아하하하~!! 역시나 우리 팀장님은 배포가 크시다니까요. 만약 팀장님께서 쏘신다면 저와 김대리가 2차를 쏘도록 하겠습니다~!! 팀장님께서 희생을 하시는데 저희라고 가만히 있으면 안되죠~!! 그렇지 않아, 김대리?”

‘엥? 이건 또 뭐하는 시추에이션이야? 지가 쏘고 싶으면 지혼자 쏘지 왜 나는 걸고 넘어지고 그래? 으휴~ 아주 교활하다 못해 교묘, 교태하구만... 그리고 지맘대로 교집합 같은 넘...’

“응.. 으응...” 끙...

옆에서 오과장은 아무 말없이 그냥 빙그레 웃고만 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해서 인지 아니면 서비스가 좋아서 인지 어쨌든 식당은 꽤나 붐비고 있었다. 소고기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었지만, 품질이나 맛이 가격대비 떨어지지 않아 만족도는 괜찮은 편이었다. 게다가 주인이 직접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다니면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을 묻고 또 채워주고 하니까 손님들의 만족도는 더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만족도보다 나의 취기가 더 올라간다는데 있었다.

“자~ 팀장님 이하 여러분들~!! 이번엔 제가 건배제의 하겠습니다~!! 저는 이 회사 들어와 요즘처럼 행복하게 회사 근무 하는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삼촌처럼 저희를 자상하게 이끌어 주시는 팀장님을 위시하여 맏형처럼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오과장님, 동기지만 동생처럼 귀여운 구석이 있는 우리 김대리 그리고 미모 만큼 센스 좋고 매력 덩어리인 우리팀 홍일점, 나미인씨까지~!! 정말 우리 팀은 환상의 멤버 아닙니까? 정말 환타스티끄~ 럭셔리~ 한 팀이라니깐여~!! 자, 우리 환타스티끄 팀을 위하여~!!!!!!!”

“위하여~!!!”

“자, 자, 완샷입니다~!! 한 방울이라도 남기시면 바로 벌주들어 갑니다. 시원하게~ 쭈~욱 들이키세요~!!”

아, 벌써 몇 번째 완샷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토할 거면 술도 양 적은게 나은데 처음부터 아예 소주맥주 폭탄주로만 마시니 벌써 속이 부글부글 하는 것 같고 이미 얼굴색은 빨간 정도를 지나 점점 검붉은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

“자, 이번엔 김대리가 한번 건배 제의 하지~!! 이렇게 한마디씩 하니까 참 좋은데, 허허허!!”

팀장이 오늘따라 기분이 꽤 좋은 가 보다. 나 한테도 말할 기회를 주는 걸 보니 말이다. 이럴때 나도 강대리처럼 듣기 좋은 말도 하고, 술도 많이 마셔서 점수도 좀 따고 싶긴 한데 몸도 마음도 여의치가 않다. 가만, 오늘 취기도 만만치 않고 분위기도 괜찮은데 나도 한번 아부란거 한번 해볼까? 속에선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도 두 눈 딱 감고 한번 해 봐? 그래, 술김에 용기내서 한번 해 보자, 까짓거!!

“아, 네.... 그럼 팀장님의 지시대로 건배제의 하겠습니다... 팀장님은... 음... 참. 좋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모자란 저를... 이렇게.. 키워주고 계시니...까요... 물론... 많이.. 힘들어 하신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이뻐해..주세요... 아니, 많은... 지도편달 해 주세요.... 저, 잘 하겠습니다... 팀장님이 좋으니까... 저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윗물이 맑으니까... 아랫물도 맑다... 란 말이 있잖아요... 팀장님은 맑은 윗물입니다.... 저희는 맑은 아랫물...이고요.... 자, 맑은 팀장님을 위하여!!”

“..........................”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다. 팀장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팀장의 얼굴에서 영 머뜩찮은 표정이 나타났다가 금새 사라졌다.

“허허허.. 그 친구... 참... 말 희안하게... 잘 하네... 그래, 고마워. 자, 한잔 하자구~!!”

강대리 이럴 때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캐치한다.

“자, 우리 팀장님의 건강과 행복한 밤생활을 위하여~!!!!”

“위하여~!!!”

벌컥벌컥. 숨이 차 온다. 드디어 양을 초과했음을 몸이 감지한다. 아, 이거 더 먹으면 바로 화장실 직행인데... 하지만 알고 있다... 여기서 다 비우지 않고 잔을 내려 놓게 되면, 팀장의 눈초리며, 강대리의 타박이며, 나미인씨의 비웃음까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빨리 비우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러 가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 천장이 뱅글뱅글 돈다. 속에선 부글부글 빨리 세상과 대면하고 싶다며 거의 폭력시위 수준이다. 변기 앞에 앉았다. 이미 변기 주변은 과히 깨끗지 못하다. 어떤 넘인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더 동작빠른 넘이 있었나 보다. 변기 안의 맑은 물을 보니 웬지 기분이 차분해진다. 속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다. 좀 편해진다.

“얘, 너 많이 힘들어 보이는구나. 괴로우면 내 품에 얼굴을 안기렴...”

처음 보는 변기가 따스한 말을 건넨다.

“넌 참 친절하구나. 세상에 너처럼 친절한 변기, 아니 친절한 사람들로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래, 인간들이 못되긴 많이 못됐지. 정조준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내 몸에는 물론이고 내 방까지 다 더럽혀 놓고 말이야. 그리고 왜 그리도 휴지는 여기저기 아무데나 버려대느냔 말이지. 냄새가 심해서 밤에 잠 자기가 힘들어. 변기로 세상을 산다는 것, 사실 못해먹을 짓이야...”

변기의 인상이 많이 어두워졌다.

“인간들을 대표해 내가 사과하마.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 착하고 맑다는 걸 니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래. 정말 착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밖에서 착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이 좁은 공간안에선 지멋대로, 오만불손하며 전혀 예의라고는 발의 때만큼도 없이 행동하는 사람도 많더라구. 한마디로 이중인격자들이지. 화장실 안의 삶과 바깥의 행동이 틀린 자들 말이야.”

변기가 흥분하기 시작하자, 하얗던 빛깔이 다소 붉은 빛을 띠어 보인다. 내 눈이 이상한건가?

“변기야. 흥분하지 말고.. 흥분하.... 우... 우욱... 우욱~~.....”

눈물, 콧물 다 쏟고 있는 와중에 머리 뒤가 서늘하다. 변기가 내 뒷머리를 쓰다듬고 있는가 보다.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구토하랴, 울으랴, 울며 소리내랴... 한꺼번에 세가지 일은 내게 너무나 벅차다.....

입을 닦고 찬물로 세수까지 하니 검붉었던 얼굴빛이 조금 하얗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속은 다소 편해진 게 사실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니 그냥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여기서 아무 말없이 집으로 가버리면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까? 팀장의 성난 얼굴과 호통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최악 중의 최악이겠지? 회사 생활 지금도 힘들지만 더욱 가시밭길 고이 밟으며 가야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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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9.01.06 00:27:00 *.100.109.186
이렇게 재미있는데다가 메시지까지 그윽하게 담겨있는 좋은 글을 이제서야 읽다니.. 내가 참 무심하고 게을렀구나.. 앞으로 재우글은 꼭 챙겨봐야지 다짐해 보지만 장담은 할 수 없다는거..ㅋㅋ 농담아니구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계속 고고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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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9.01.12 05:17:06 *.178.33.220
기찬이가 힘을 실어주니 더욱 분발해야겠다..
쓰면서도 과연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을까가 고민인데..ㅎ
고맙고, 많은 질책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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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9.01.07 18:56:43 *.165.140.205
아아아!

정말 재미있어요. 상황이 그냥 눈이 그려지네요.

픽션을 가미하는 글, 정말 신나요! 화이팅. 열열독자가 될 것 같은 예감.

대박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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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9.01.12 05:18:36 *.178.33.220
재엽선배님,
댓글의 느낌이.. 뭐랄까.. 아저씨의 수다? ㅋㅋ
좋은 평가, 고맙습니다. 더욱 열심히 써 보렵니다.^^
선배님의 깊이 있으신 글도 좀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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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1.09 14:29:35 *.209.32.129
정말 재미있네요! 
상당한 정도의 직접경험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리얼한 묘사에
가슴이 아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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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9.01.12 05:21:49 *.178.33.220
맞습니다, 상당한 정도의 직접 경험...-_-;;
눈에 선히 보이시죠? 저도 선히 보입니다...
너무 리얼하게 하려다 보니, 비위 약하신 분들께는 죄송스럽다는...ㅋㅋ
대선배님께서 친히 댓글을 달아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다는....
더욱 열심히 쓰겠으니,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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