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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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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9일 11시 4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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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이야기 3(마지막)
 

 

노래방에서 나온 시각은 근 12시가 넘어서였다. 무려 2시간을 넘게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자정까지는 들어오라고 했는데 끝난 시간이 자정이 넘었으니 어떻게 해야할 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 이럴 때는 아내가 상사보다 더 무섭다... 불현듯 어느 잡지에선가 본 설문이 기억난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꼽으라고 했더니 1위가 ‘돈’이였고, 2위가 바로 ‘아내’였다고 한다. 100% 완전공감가는 말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내에게 전화하는 것도, 전화가 오는 것도 모두 두렵다... 그리고 그 목소리 뒤에 숨어 있을 아내의 살벌한 표정도 무섭다. 세상은 왜 이리 무서움 투성인가. 편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는걸까....


아직 집까지 가는 버스의 막차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다소의 여유는 있다. 하지만 만약 막차를 놓친다면 택시를 타야하는데, 집까지의 거리가 꽤나 멀어 택시비 부담이 장난 아니다. 택시비 한번 타면 알량한 한달 용돈의 반가까이가 날라간다. 그 다음날부터는 완전 거지 신세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고로 어떻게든 버스를 타야만 한다. 신사와 거지는 한끝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내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이라곤 달랑 만원짜리 한 장. 벌써 한 달 용돈이 다 떨어졌다. 어제 아내에게 용돈을 좀 더 달라고 매달렸어야 하는데 눈치보느라 타이밍을 놓쳤다. 달리 선택의 길이 없다. 어떻게든 막차를 놓치면 안된다....


노래방에서 나왔다. 팀장이 한마디 한다.


“어이~ 다들 즐거웠나 모르겠네. 나는 재밌었는데 말이야. 허허. 강대리하고 나미인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춤을 잘 췄었나. 부러워. 역시 젊음이란 좋은거야, 그렇지? 허허허. 그래, 어디보자 시간이... 어이쿠 벌써 12시가 넘었네. 어떻게, 나미인씨는 빨리 들어가야 하겠고, 나머지 남자 직원들도 다 집으로 들어가는게 좋..겠....지?


웬지 느낌이 매우 좋지 않다. 오늘따라 팀장이 사모님하고 싸웠나? 그래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건가? 아니면 술이 모자랐나? 갑자기 등줄기에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기분이다.


눈치 10단 강대리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삐집고 들어온다.


“팀장니~힘~!! 아니, 들어가다니 어딜 들어가신다는 말쌈이십니꺄? 지금 시간이면 밤은커녕 초저녁이에요, 초저녁~!! 초저녁 집에 들어가셔서 이 긴긴밤 얼마나 허벅지를 찌르려고 하십니까?!! 조기 앞 호프집에 가셔서 입가심으로 맥주 한잔, 딱 한잔만 더 하시면서 저희랑 같이 단체로 허벅지를 찔러보심이 어떠신지요?!! 네, 팀장니~힘~!!??”


“허허허. 아, 강대리.. 심정은 알겠는데, 그래도 내일 업무를 생각하면 이쯤에서 정리하는게....”


팀장이 슬쩍 떠본다. 안 봐도 뻔하다. 체면도 살리고, 본전도 찾고. 가재 잡고 가재 먹고. 꿩 먹고 수제비 먹고. 내가 눈치 깔 정도면 모든 동네 주민들이 다 아는 뻔할 뻔자 고전 뻔데기 뻔뻔 수법이다.


“에이~ 저희가 언제 쪼금 과하게 많이 먹었다고, 지각을 하거나 업무를 제대로 못하거나 그런 적 있습니까? 저희는 프롭니다, 프로!! 놀 땐 확끈하게 놀고, 일할 땐 열심히 빨리 일 끝내고 또 놀고~!! 그렇지 않습니까, 팀장님? 팀장님도 이 방면에 프로시잖아요~ 왜 이러세요, 아마추어같이~”


강대리, 오늘 너도 집에 우환있니? 이 사람들이 작정을 했나... 제발 술 못하는 나 같은 사람 배려 좀 할 줄 알아라. 그냥 술 좋아하는 사람끼리 날 밤을 까든 새벽별을 보든 퍼붓든가 하고 나는 제발 좀 집에 보내주면 안될까? 응? 난 막차 놓치면 거의 무기징역이라니깐...흑흑....


“저, 팀장님.. 저는 늦었으니까 먼저 갈께요. 남자분들은 저 신경쓰지 마시고 홀가분하게 한잔 더 하고 가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나중에 조심들해서 들어가시구요~!!”


눈치 10단 나미인씨도 분위기를 보더니 바로 자리를 뜬다. 갑자기 여직원이란 위치가 부러워진다. 내숭에 애교만 부릴 줄 알면 칭찬받고, 자기 가고 싶으면 집에도 갈 수 있고. 이럴 땐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좋은 듯 하다. 저런게 치마의 힘인가? 나도 치마를 입고 싶어진다는....


“어, 어, 그래.. 나미인씨는 어서 들어가고. 택시비는 있나? 어, 있다구..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고생 많았어, 오늘. 그래, 그래. 내일 보자구~”


“네,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나미인씨가 부리나케 잰 걸음으로 큰 도로를 향해 나아간다. 그 뒷모습이 무척이나 경쾌해 보인다. 아마 나머지 공부하는 친구들을 남겨 놓고 혼자만 홀가분하게 빠져 나가는 기분이리라. 좋.겠.다...


“자, 그럼. 팀장님 3차 가시죠, 3차~!! 이제 본격적인 이 밤을 즐겨야죠? 여기까지가 오프닝이였다면 지금부터는 화려한 메인 이벤트를 맛보아야지요, 그렇죠, 오과장님? 하하하~”


“그래. 한 잔 더 하는 것도 괜찮겠네. 노래방에서 2시간이나 있었더니 술도 다 깨고, 목도 좀 칼칼하고..”


오과장님까지 강대리의 의견에 맞춰주니 게임은 완전 끝이다.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오늘 제대로 걸린 날이다. 휴~~~


“허허허.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팀장도 당연히 따라야겠지? 그게 도리일테니까 말이야. 그래, 그러면 어디를 갈까? 강대리, 우리 저번에 갔었던 ‘샹젤라’ 어때? 분위기도 좋고 마담도 싹싹하지 않았어?”


“아, ‘샹젤라’요? 좋지요. 분위기도 좋고. 지금 가면 딱 좋겠는데요? 가시죠, 어서. 제가 앞장 서겠습니다!!”


강대리가 신이 나서 대답한다. 가끔 팀장하고 한잔하러 간다는 곳이 ‘샹젤라’란 곳인가 보다. 마담이 30대 중반으로 젊은 데다가 비위까지 좋아 손님들 이야기를 잘 맞춰준다고 강대리가 자랑한 적이 있던 바로 그 까페말이다.


까페 안은 다소 어두컴컴했지만, 여기저기 테이블 위에 모양이 이쁜 양초들을 세팅해 놓아 분위기는 제법 아늑해 보였다. 반반하게 생긴, 어떻게 보면 남자깨나 따를듯한 포스를 지닌 마담은 호들갑스럽게 우리를 맞았고, 팀장은 마치 오랜 단골인냥 마담에게 반말을 던지며 친한 척을 한다. 강대리도 마담이 더 이뻐졌다는 둥 농담을 던지자 마담은 강대리가 갈수록 사람 보는 눈이 좋아진다며 칭찬을 해댄다. 내 얼굴로 침이 튀기는 지도 모른 채. 으....


잠시 후 양주 한병과 맥주 몇병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마담은 자연스럽게 옆에서 폭탄주를 만들고 우리는 돌아가며 마담이 건네주는 폭탄주를 마신다. 짜르르 목을 타고 들어가는 양주의 향기와 맥주의 조합이 속을 타게 만든다. 속이 쓰리다. 본능적으로 안주를 먹어대지만 그 쓰림은 가시지 않는다. 한잔 더. 다시 한잔 더. 스스르 눈꺼풀이 감긴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하지만 어떤 힘도 몰려드는 졸음을 막을 수가 없다. 고개가 툭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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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 김대리~!! 일어나 이제 가야지~!! 김대리, 집에 가자~!! 이제~!!”


누군가 날 흔들어 깨우고 있다. 살짝 눈을 뜨고 바라보니 오과장님이다. 아, 과장님. 네. 일어나겠습니다.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갑자기 속이 울컥한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를 움켜잡고 속을 비워낸다. 먹은 게 별로 없어서 쓴 물만 올라온다. 누군가 뒤에서 등을 쳐준다. 오과장님이다. 고맙다. 속은 엉망이지만, 마음은 그래도 고맙다.


입을 닦고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고 밖에 나오니 팀장은 없고, 오과장님과 강대리만 남아 있다.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다. 젠장...


“자, 팀장님은 보내드렸으니 우리도 집에 가야지. 좀 많이 늦어지긴 했네. 김대리 이제 속 좀 괜찮어? 집까지 가는데 문제 없겠어?”


오과장님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쳐다 본다.


“네, 과장님. 많이 좋아졌습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장님, 저.... 혹시 도, 돈 좀... 있으시면 꿔..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택시비가 좀 모자라서...”


“어, 그래. 참 김대리 집이 좀 멀지? 얼마나 주면 되겠어? 3만원이면 되겠어? 어디보자, 내 택시비 빼고 음, 2만원 밖에 안되겠는데... 강대리, 너 만원만 있으면 줘봐라. 김대리 택시비에 보태게.”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는 강대리의 얼굴에서 순간 짜증의 빛이 비춘다. 겨우 그 정도도 안 갖고 다니냐는 무언의 불만표시다. 가소롭다는 듯 살짝 조소의 표정도 보인다.


‘내 드러워서 안 받고 싶다만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어 받는다. 그래, 너 잘 났고 너 팔뚝도 굵고 술도 잘 처먹어서 좋겠다. 행복하겠다. 난 니가 부러워서 죽을 것만 같다. 잘난 강대리야. 잘난 만큼 잘나가라. 멈추지 말고 쭈욱~ 그래서 제발 좀 내 앞에서 그만 알짱거려주면 참 고맙겠다... 젠장..’


돈을 받고 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기 위해 큰 도로로 나왔다. 담배 한 대를 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담배도, 라이터도 없다. 이런 젠장... 어디서 떨어뜨린거지? 노래방인지, 까페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싶지만 그러면 택시비가 모자를까봐 그것도 못하겠다. 어쩔 수 없이 참는다. 휴대폰을 꺼내 혹시 집에서 전화가 왔나 살펴 보았다. 1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 표시가 찍혀있다. 역시나 아내다. 아내의 성난 표정이 정지된 고해상의 디지털 화면처럼 선명하다. 시간 늦고, 택시비까지 날리게 되었으니 이건 이번 달 들어 가장  큰 사고다. 아내의 화를 풀기 위해 일주일 꼬박 집안일과 함께 모든 체면 버리고 아내 비위를 맞춰야 할 것 같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늘을 보니 까만 하늘 위로 눈망울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내린다. 눈이 오려나 보다. 나의 한숨 속에 작은 눈송이들이 들어온다. 하늘 위에 계신 분이 눈송이를 날리며 한마디 하는 듯 싶다.


‘자식~ 소심하기는....’


킁~~  코끝이 찡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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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9.01.21 01:20:28 *.100.109.186
아.. 점점 김대리의 마음으로 동화되어가는 나.. 자기답게 살기 못했을때의 나는 김대리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했던가.. 그때 나는 김대리같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오과장같은 존재였을까 아니면 강대리같은 사람이었을까.. 매번 글을 재밌게 읽으면서도 가슴 한켠을 아려오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다음 편이 궁금해지는구나.. 졸라..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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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20:57:22 *.38.102.222
참 위대한 소심. 이게 제목인 거 맞나요? 차카양님. 좋아요. 좋아. 그러 이제 내 제목도 고민해 주삼. 설 잘쇠고 리허설때 기대 만발 해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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