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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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먹을 것을 주지 않나요?”
“아니요. 밥을 주지요. 하지만 밥을 먹는 숟가락이 불편하답니다. 1미터나 되는 숟가락으로 저마다 밥을 떠 자기 입에 넣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먹지 못하지요. 눈앞에 밥을 놓고도 먹지를 못하는 그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사자는 천당으로 가보았다. 그곳 사람들은 얼굴에 생기가 돌고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당의 숟가락도 1미터나 되는 긴 숟가락이었다. 어떻게 천당 사람들은 지옥 사람들처럼 굶주리지 않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것일까? 비밀은 단 한 가지. 긴 숟가락으로 자기가 먹으려고 애쓰지 않고 상대방을 먹여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장자 멘토링』에서 본 우화다.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라고 하는 데 나는 이 우화를 처음 접했다. 여기에서 보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관계로 이루어진다. 그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배려하는 따뜻한 세상이 되기도 하고 더 삭막한 세상이 되기도 한다.
국민연금에서도 이런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所得再分配)라는 기능이 있다. 소득이 낮은 사람은 자기가 부담한 것에 비해 좀더 많은 금액을 급여로 받게 된다. 반대로 소득이 높은 사람은 부담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등 다른 사회보장제도에도 이런 소득재분배 개념이 도입되어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소득과 재산에 비례해서 보험료를 부담하지만 병원에 갈 경우 받게 되는 보험 혜택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 이것도 소득재분배의 한 형태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지금보다 더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기가 부담한 것에 더 충실하게 급여를 받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 더 불리해지고, 높은 사람에게는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한편에서는 이런 목소리도 들린다. 노후 생활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사적연금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사적연금은 소득재분배 등 사회보험적 성격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보험이다. 한마디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기 능력껏 살아가게 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인 효율성과 생산성 면에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예를 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그에 상응한 댓가를 받는 데 반대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열심히 살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하루아침에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도 많다. 내 입에 들어갈 밥만을 챙기다보면 우화에서 보는 지옥같은 나라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