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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8일 03시 34분 등록
 

어머니


  정말 하루 종일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난 디렉토리를 만들고 지우고 다시 만들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가끔 파일을 복사해서 옮겨 넣는 것을 했지만 이것은 지난 열흘 동안 내가 유일하게 배운 것이다. 퇴근 시간이 되어 가는데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다행히 경리누나가 퇴근하는 길에 따라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큰 소리는 쳤지만 다음이 문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아무리 실습생이라고는 하지만 점심도 주지 않는다는 것은 해도 너무한 거다. 명색이 취업을 했다는 녀석이 부모님께 또 손을 내밀어야 하다니. 집에 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 변명이 궁색하다. 그리고 빽한테 이러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오라고 하면 아마 그 녀석은 날보고 미쳤다고 할게 뻔하다. 내가 잠시 돌은 듯싶다. 이건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다. 이를 어쩐다........ 덜컹거리는 전철이 합정역에서 당산역으로 가는 철교를 건너기전이면 유난히 느리게 가면서도 술 취한 사람처럼 흔들린다. 그래도 철교에 올라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원하게 달린다. 오늘 따라 성산대교 넘어 기우는 붉은 노을이 나를 반히 쳐다보고 있다.


  “그래 취직이 되긴 됐냐.”

  밥상을 들고 들어오시는 어머니는 상을 내려놓지도 않으신 채 먼저 취직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 미치겠다.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간다. 애라~ 모르겠다.’

  “응. 취직 됐지. 내일부터 나오래.”

  “어이구 내 새끼. 용해다 용혀. 그러고도 취직 되는 거 보면 니가 꿈은 지대로 꿨나보다.”

  “용꿈 꿨어. 용꿈.”

  일단 화제를 돈 이야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바꿔야 한다. 월급을 타려면 한 달은 있어야 하니까. 걱정을 가불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일단 그런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는게 상책이다.  이 상황에서 취업한 곳이 밥 사 먹어가며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아시면 어머니 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려. 그려. 언능 밥 먹어. 배고푸지야.”

  “배고퍼 죽는 줄 알었어. 저녁 먹고 가라는 걸 집에 가야된다고 하고 빨리 왔더니.......”

  “그래 뭣하는 회사래냐?”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아들을 가만히 보고만 계시던 어머니가 궁금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하시겠다는 듯 말문을 여셨다.

  “컴퓨터로 도면 그리는 회사랴.”

  “뭐! 콤푸타........ 니가 그거 할 줄 알어.”

  “배우면서 하는 거지 뭐. 그래도 쪼금은 할 줄 알어.”

  “야~ 그 회사 사장님도 용허다. 어째 할 줄도 모르는 너를 쓴데냐.”

  난 다 나가고 나만 남아서 그랬다고 차마 이야기 하지 못했다.

  “엄만....... 컴퓨터로 도면 그리는 건 다른 애들도 다 할 줄 몰러. 학교에도 그런거 없어. 사장님도 배우면서 하면 된댜.”

  “그래도 그렇지 야. 그 회사 사장 돈이 많은 가부다.”

  “원래 컴퓨터학원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벼.”

  “그래 뭐 어쨌든 취직은 됐으니 다행이다. 다행여.......

아아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콤푸칸가 뭔가 그거 사주는 건데 말여. 그놈의 돈이 뭔지. 좌우간 너라도 돈 많이 벌어야 헌다.”


  어머니가 사회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농촌에서 서울로 이사 온 후 부잣집 밥해주고 빨래해 줘가며 자식들 뒷바라지 하시는 어머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사달라고 했을 때 못 사준 컴퓨터가 아직도 잊혀 지지 않으시는지 눈물을 훔치셨다.

IP *.38.2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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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9.01.28 07:50:43 *.244.220.252

묘사하는 단어가 점점 좋아하지는 것 같습니다........근데 글이 너무 짧은 것 같은데........아무튼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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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01.30 20:41:15 *.247.80.52
대화체로 쓴게 확확 와 닿는고만. 전개도 빠르고.
하하하. 그래서 좋다구요. 히히.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대화로만 이루어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에 연극을 하도 재미나게 봐서 그런가 봅니다.
글을 읽으면서 고민할 거 없이, 말하는 속도로 읽으면 뚝닥하고 전체 메시지가 전달되니까.
그리고 연극처럼 오래오래 여운이 남는 거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연극 한 장면 한장면을 떠올리듯이 말이예요.

인생의 한 부분에서 멋진 희곡을 쓰길 기대하며...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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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1 05:54:03 *.212.21.111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알면서도 모른체 또 자신의 아들이 이야기했는데 믿어야지
누구말을 믿니 .. 그게 어머님 아닐까? 무조건 자식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고 보시는것이 우리들 어머님이 아닐까요?
이 글을 통해서  그 느낌이 들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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