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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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29의 연습으로부터)
화실 선생님(아트)께서는 내가 무척 급하게 그리신다고 말씀하셨다.
물감이 어느 정도 마른 후에 그 위에 덧칠을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유화가 이번에 3번째이다.
첫번째는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정물화를 실기시험으로 그린 것과
두번째는 지난 주에 정물그림을 보고 무채색으로 그린 것.
이번에 세번째 이다.
어느 순간에 그만 그려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초짜들이 가장 흔히 겪는 혼란이다.
그리면서 또 혼란스러운 것이 있었는데,
검은색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흰색을 써야 하는지,
어느 시점에서 회색을 써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바탕을 잘 깔아두어야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그럼 바탕은 언제까지 깔아야 하는 것인가?
검은색으로 어두운 것을 찾다가 선생님께
'선생님 이제 흰색 써도 돼요?'라고 여쭈었더니 천천히 쓰라고 하셨다.
이 그림의 마지막에... 선생님께서 회색으로 전체를 엷게 칠하셨다.
그 이유는 흰색을 내려면 회색이 밑에 깔려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밑에 깔아둔 회색이 전체의 중심이 되었다.
그것이 기준이 되어 그보다 더 어둡거나 그 보다 더 밝은 것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하고 집으로 가는 길목, 지하철 입구까지 가기까지가 내가 그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왜 내 초기 그림은 이리도 초라할까? '
끝마치고 싶지 않은 것을 몇번이나 경험하고서
그중에 몇번은 포기하려다가 적절히 고친것을 경험하고서
중간에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꿈그림도 그렇게 될까?'
'그건 초라하면 안되는데.'
나는 여전히 그림은 초라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꿈그림이 아닌, 꿈이라면 어떨까?
대부분이 처음에는 미약하다.
처음은 그렇다.
거대한 소용돌이의 처음이 대부분 있는 듯 없는 듯 작은 소용돌이에서 시작하듯이
그러다가 거대한 난류가 일어나 세상을 덮거나 뒤집듯이
꿈들은 그렇게 처음에 조금씩 꿈들거리며 시작되는 것 같다.
그것이 어느 정도 커지고 형태를 갖추기 전에는
그것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매번 고민했던 것처럼
꿈을 한걸음씩 이루어가는 모습이 그럴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면
그제야 이게 그것이구나 하고 애착이 더욱 가고 그때부터는 놓치지 않겠지.
29일. 그림을 막 시작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나보고 너무 급히 나간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시점은 급히 한다는 말을 들은 28일 이후 병부분만 조금 칠했을 때였다.
선생님 눈에는 난 항상 급한 사람이다.
그말씀이 맞다. 난 참 급하다.
28일 화실을 나올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년에 유화를 별로 배우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유를,
나는 더디 마르고, 하나 그리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을 싫어했었다.
그래서 가장 빨리 그릴 수 있는 재료를 선택했었다.
딸기의 광택을 심하게 넣어서 딸기가 병에 그림자진 것보다 어두워져서 일부를 지워냈다.
가까이서보면 엉망인데, 조금 떨어져 보면 딸기의 광택이 두드러졌다.
그림은 바짝 붙어 보지 말고 한발 물러서 보라고 하는 말을 또 들었다.
내 앞에서 정물화를 그리고 계시는 교수님께 선생님이 하신 말씀인데 내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나는 이게 나중에 뭐가 될지 모르겠다.
상상을 한다해도 어렴풋할 뿐이고,
또 그리다보면 내가 예상하던 것과는 다른,
신이 우연이란 것으로 선물한 것들을 그림에 담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즐길 것이다.
지금은 연습량이 적어서 상상이 부족해서 최종모습을 미리 머리속에 그려낼 수 없지만,
나중에 연습량이 많이 쌓인다 해도 머리속에 그려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연이 만들어내는 환희는 계속 즐기고 싶다.
더디 마르는 유화의 특성을 고려하여 위에 그림이 마르는 동안
다른 것을 그리게 되었다.
이 그림은 흰색이 없는 것이라서 어떻게 그리게 될지 기대된다.
노랑이나 빨강을 무채색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세상에는 수많은 회색이 있다.
수백가지의 회색이...
수많은 검은색과 수많은 흰색이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이...
그중에 어떤 것이 노랑과 빨강에 매치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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