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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일 21시 20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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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요코_신뢰를 가지고 두시오>
오늘 내가 올려다 보고 있는 작품은 그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조각 작품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작가가 직접 손으로 만든 흔적이 없으니까요. 기성제품을 약간 응용해서 설치해 놓은 설치 작품이군요. 사실, 이런 식의 설치 작품들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많이 황당했습니다.

 

도대체 작가라는 작자들이 이렇게 게을러서야, . 제 손으로 만들거나 그리거나 하지도 않고서 기성 제품을 가져다 놓고 작품이라고 우기다니. 야옹.”

 

그런데, 이런 작품들을 감상하는 법은 약간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작품들은 대게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한 번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제목에 분명히 작가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입니다.

 

‘Play by trust’

신뢰를 가지고 장기를 두라는 말이겠지요. 가만 보니 이 장기판 좀 이상합니다. 도대체 말판에 이라는 것이 갈라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검은 편과 하얀 편 대게 이렇게 두 편으로 갈라진 것이 정상일진대 편이 갈라져 있지 않았으니 어떻게 장기를 둘 수 있겠습니까?

 

이라는 것이 갈라지지 않는 세상. 그 세상은 이상한 세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라는 상대를 만들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한 번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던 원래의 세상은 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우리는 하나였던 셈이지요. 그러나 언제 부턴가 이라는 이상한 개념들을 가지고 와서 우리편상대편을 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서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신뢰라는 것은 우리편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뢰라는 것이 우리를 가르기 전에는 우리는 항상 하나의 우리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신뢰라는 것은 점점 좁은 우리의 개념 안으로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개념이 미치지 못한 쪽은 우리편이 아닌 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지요.  

 

신뢰 혹은 믿음이 인간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걸까요? 글쎄, 저는 고양이라선지 신뢰로 전쟁이나 인종차별 등의 거창한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못됩니다. 대신 다음에 나오는 신의와 의신이의 이야기처럼 신뢰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차이로 인해 인간들이 어떤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의와 의신 -----------------------------------------------------------------------------------


신의와 의신이는 파리 배낭 여행길에 우연히 만났습니다. 신의는 직장에서 일주일 휴가를 얻어 겨우 이곳을 왔다고 했고 의신이는 한 달째 배낭 여행 중이지만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가는 대학원생이라고 했습니다. 둘은 각자 홀로 퐁피두 센터에 왔다가 “Tuesday Closed(화요일은 휴무)”라는 팻말 앞에서 실망해 돌아서던 길이었습니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고 서로 비슷한 처지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고 덕분에 함께 로뎅 갤러리에 가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둘 다 길 찾기에는 영 취미가 없었던 지라 환한 대낮에 지도를 보고서도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 때 적극적인 신의가 지나던 아저씨한테 길을 물어 보았습니다.

엑스큐즈 므와, 무슈. (여기까지만 대충 불어로 하고) 혹시 영어 할 줄 아세요?”

, 말씀하시죠. 영어 가능합니다.”

혹시 이 근처에 로뎅 갤러리가 어딘가요? 저희가 그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어딘지를 모르겠어요.”

아주 가까워요. 이 방향으로 쭉 가면 될 거예요. 아 잠깐만요. 이거 한국말 아닌가요?”

한국말을 아세요?”

잠깐만 기다려요. 꼬마 아가씨들 제가 시장 본 것들을 좀 우리 집에 내려두고 곧 올께요. 절 믿고 잠깐만 좀 기다려 주세요.”

그러지요. . 그럼 저희 좀 데려다 주세요.”

 

신의는 아저씨의 인상이 좋아 보이는 데다가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분이니 재미있는 인연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의신이는 약간 두려웠습니다. 신의가 무턱대고 믿어 버리는 그 사람이 진짜 믿을만한 사람인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잠깐 기다리자. 5분 기다렸다가 안 오면 그냥 우리끼리 가자. 근데 너무 신기하지 않니? 우연히 만났는데 한국말을 아시는 분이라는 게

그러네요.”

의신이는 간신히 신의의 물음에 대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그 아저씨, 에릭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손에는 작은 지도 책이 들려 있었고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기다렸군요. 정식으로 인사하지요. 저는 에릭이에요. 프랑스식으로 에릭 이라고 불러 주세요.”

저는 신의구요. 이 친구는 의신이에요.”

두 아가씨들은 친구들인가요?”

저희는 각자 따로 배낭 여행을 왔다가 여기서 우연히 만난 거에요.”

그랬군요. 저는 10년 전에 한국에서 1년간을 보냈어요. 직업 때문에 딱 1년 지냈는데 그 때 저한테 잘해 주었던 한국 사람들 때문에 한국이 무척 그리운 곳이 되어 버렸어요.”

 

에릭을 따라 두 블록을 걷자 신의와 의신이 찾던 로뎅 갤러리가 눈에 보였습니다.

자 로뎅 갤러리는 여기에요. 별로 멀지 않았지요.”

그렇군요. 감사해요. 그런데 저희가 여기 이 곳에 나와 있는 식당을 찾고 있는데 그곳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오늘은 제가 오랜만에 비번인데다가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만났으니 충분히 시간을 내 줄 수가 있지요. 어디든 말만 하세요.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 ”

감사합니다. 이렇게 친절히 가르쳐 주셔서, 그런데 이 식당은 말로 알려 주시면 저희가 찾아 갈께요.”

이 곳은 말로 알려 드리기 힘든 곳이니 제가 직접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꼬마 아가씨들.”

정말로요. 우리가 오늘은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은데요.”

그게 다 꼬마 아가씨들 복이지요. 그런데 서울은 아직도 아름답겠지요. 10년 전에 저는 용산에서 살았어요. 하숙집. 그러니까 하숙집에 있었어요.”

하숙이라는 단어를 아시네요.”

그 때 우리 하숙집 아주머니가 나한테 참 잘해 주셨어요. 김치는 좀 매워서 잘 못 먹었지만 음식들이 대게는 다 맛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뭐더라. 기름에 튀겨서 갈색 빛이 나고 달고 쫄깃한 과자. 후식으로 먹는 그것이 가장 생각이 나는데요

, 약과?”

맞아, 약과. 하루는 한국인 친구 하나가 부족한 게 없냐고 물어서 제가 서양식처럼 후식으로 먹는 단 과자가 먹고 싶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걸 잊지 않고 가져다 준거에요. 그게 정말 맛있었어요.”

 

이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의신이의 마음도 조금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에릭은 파리에 새로 개봉된 한국 영화 이야기, 파리의 한국 슈퍼마켓, 파리에서 먹을 수 있는 불고기에 대해서 끝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셋은 그런 재미난 이야기 끝에 작은 골목 길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문 앞에서 에릭이 말했습니다.

이 곳이 바로 책에 나와 있던 식당이에요. 그런데, 한 가지 물어 봐도 돼나요? 제가 같이 점심 먹어도 될까요? 별로 실례가 안 된다면 말이지요.”

신의와 의신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답을 했습니다.

물론이에요. 같이 점심 먹어요. 에릭.”

그리하여 신의와 의신이와 에릭은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맛난 점심을 먹고 에릭은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잘 대해 주었던 한국 사람들 대신 신의와 의신이에게 점심을 사게 해달라고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로뎅 갤러리로 돌아오는 길에 에릭은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신의와 의신이가 로뎅 갤러리를 한 두 시간 둘러보고 나면 자신도 산책할 시간이 되는데, 이 때쯤 신의와 의신이를 데리고 파리의 곳곳을 보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화 번호를 적어 건네 주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신의와 의신이는 갤러리를 다 둘러 보았고 신의가 에릭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에릭, 의신이와 나는 벌써 갤러리를 다 둘러 보았어요.”

, 전화 기다리고 있었어요. 거기 로뎅 갤러리 앞에 꼼짝 말고 기다려요. 그럼 제가 데리러 갈께요. 이번에는 제가 맛있는 크레페 집에 데려갈께요.”

 

전화를 끊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에릭은 신의와 의신이를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신의와 의

신이 자신에게 전화 준 것이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에릭은 신의와 의신이를 데리고 젊음

의 거리 생 제르맹의 향했습니다.

 

가던 길에 에릭은 잘 생긴 남자를 하나 만나서 반갑게 어깨를 툭 치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 둘은

서로 프랑스 말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중간 중간꼬레라는 단어가 섞여 있는 걸로 봐서 에릭

에 신의와 의신이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임에 분명했습니다.

 

그 둘의 대화가 끝나자 에릭은 신의와 의신이에게 말했습니다.

제 동생이에요. 우리는 가까운 곳에 살지만 따로 살아요. 그런데 제 동생은 키가 아주 크지요.

저랑 달라서 잘 생겼지요. 지난 번에 저 동생이랑 함께태극기라는 한국 영화를 봤어요.”

우와, 그 영화 보았군요. 에릭

내 동생도 그 영화 재미나게 봤어요. 제가 한국에 다녀온 후 파리에서 개봉하는 한국 영화는 죄

다 보는 편이에요.”

에릭은 진짜 한국을 좋아하시는 군요.”

그냥 그 때부터에요. 한국을 다녀온 이후부터, 한국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꼬마 아가씨들도 동생들이 있나요?”

저는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 동생이 둘이에요

저는 언니가 하나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이번에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노부인을 만나 에릭이 인사를 했습니다. 서로 양쪽 볼을 부비고 나서 입맞춤을 하는 프랑스식 인사는 신의와 의신이에게는 매우 신기한 인사법이었습니다. 노부인이 어딘가를 향해 바삐 지나갔을 때 에릭이 다시 신의와 의신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고모님이세요. 고모님도 이 동네에 사셔요.”

우와, 에릭의 고모님인데 정말 젊어 보이세요. 아주 깔끔하고 젊어 보이시는데요.”

맞아요. 저희 고모님이야 말로 진정 파리지앵 멋쟁이시지요. 저 나이가 되시도록 꼬박 화장을 하시고 절대로 몸매 관리 하시는 분이세요.”

에릭, 에릭의 식구들은 모두 이 동네 사시는 거예요?”

그렇다고 생각되는데요. 나와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고모님 모두 파리지앵이에요. 모두 다 이 동네에 살지요. 각자 따로따로

 

날이 어둑해지고 거리에는 가로등이 밝혀졌습니다. 에릭은 신의와 의신을 멋진 카페로 안내했습니다.

꼬마 아가씨들, 우리는 여기서 차를 한 잔 할거에요. 이 카페는 제가 20년 동안 줄곧 다니는 단골집입니다.”

우와, 20년 단골이란 게 정말인가요? 에릭?”

그럼요. 여긴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요. 20년 전 이 생제르맹 거리에는 카페가 몇 개 없었는데 이 카페가 그 몇 개 없는 카페 중 하나였어요. 여기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요. 이 카페와 함께 저는 나이가 들어 갔어요. 대학 때는 친구들을 만났고, 때로는 애인을 만났고, 혼자 와서 맥주를 한 잔 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굉장히 보기 힘든 유명인을 만나기도 했어요. 지난 번 한국 영화를 보러 시내에 나왔을 땐 누이동생이랑도 들렸었어요. 그런데 잠깐 꼬마 아가씨들. (목소리를 낮추어서) 여기는 밥을 먹기엔 좀 비싼 곳이에요. 딱 와인 한 잔씩만 하고 일어나서 멋진 야경을 보러 가요.”

 

에릭은 신의와 의신에게 각각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한 잔씩 시켜 주고 자신은 맥주를 한 잔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둘에게 또박또박 함께 지나온 길들에 대한 유래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때 신의가 말했습니다.

에릭, 당신은 정말 훌륭한 여행 가이드군요. 제가 거기서 길을 잃어 버린 것이 파리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되어 버렸군요. 의신이랑 저랑 둘만 돌아 다녔다면 절대 알 수 없는 파리의 비밀들을 당신이 말해 주었으니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런 뜻으로 이 맥주는 저희가 사는 거예요.”

그게 좋으시다면 그렇게 하세요. 대신 저는 여러분들에게 파리에서 제일 오래된 끄레뻬 식당에 데려갈께요. 진짜 끄레뻬를 제가 잔뜩 먹게 해 줄께요.”

 

그 때, 멀리서 사관 생도 옷을 입을 잘생긴 청년이 에릭에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에릭은

제 학생이에요. 이번 학기 제 수업을 듣고 있어요.” 라고 둘에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와인을 한 잔씩 마시고 알딸딸해진 정신으로 일행은 30분쯤 걸어서 몽빠르스나스 타워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에릭, 근데요. 평소에도 이렇게 많이 걸어 다니시나요?”

그럼요. 파리는 아주 걷기에 좋은 도시니까 되도록 걸으면서 다니고 있어요. , 조금만 참으면 아주 맛난 끄레페를 맛 볼 수 있어요. 브르따뉴 지방이라는 곳에서 유명한 음식인데요. , 거기 한국의 전주 비빕밥 처럼 프랑스 브르따뉴의 끄레뻬가 그런 음식이에요.”

이거 만들기 쉬워 보이는데 한국 가서 가게 하나 차릴까 봐요

그래도 괜찮겠네요. 꼬마 아가씨.”

 

에릭의 배려로 신의와 의신이는 풀코스로 끄레뻬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에릭에 의하면 짭짤한 끄레뻬는 메인으로 단 끄레뻬는 디저트로 그리고 꼭 애플 사이더라는 시금털털한 술과 함께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의와 의신은 다양한 종류의 끄레뻬들을 보며 연신 놀랐고 에릭은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습니다.

 

신의와 의신이 맛있는 끄레뻬를 다 먹었을 때 에릭은 둘을 마지막 관광 코스인 몽빠르스나스 타워로 인도했습니다. 눈 앞에 까맣고 맑은 겨울 밤 속의 파리의 야경이 펼쳐졌습니다. 에릭은 역사적인 이야기도 간간히 곁들여서 파리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에릭은 신의와 의신에서 다음 다음 날인 토요일에 자신의 집에 초대를 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간단한 요리를 먹으면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고 했습니다.

 

지하철에 올라탄 신의와 의신은 아직도 꿈 속에 있는 듯 했습니다. 그들은 오늘 하루에 일어났던 일이 믿기지 않는 듯한 눈빛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다 신의가 물었습니다.

의신아, 토요일에 우리 초대 받은 거 같이 갈 거지?”

, 그러고 싶은데 우리가 에릭을 이렇게 쉽게 믿어도 되는 걸까?”

그런데 난 좀 이상해. 그 에릭 아저씨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 해 보인단 말이야.”

무슨 꿍꿍이? 글쎄, 나도 혼자라면 그런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테지만, 난 모두 진심인 것 같아.”

글쎄, 초대는 생각을 해 봐야겠어.”

어디가 이상한 건데? 난 별로 못 느꼈지만 그런 게 있으면 말을 좀 해봐.”

파리처럼 이렇게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단지 한국인들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에게 잘 해 주었다는 것은 좀 수상한 것 같아. 무언가 숨기는 게 있지 않겠어?”

글쎄, 나는 전혀 못 느꼈지만, 우리 같은 가난한 배낭 여행객에게 그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란 게 없쟎아.”

아니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의신이의 마음 속에선 이상한 의문들이 뒤섞여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일 날 파리시내 한복판을 어슬렁 거리던 에릭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습니다. 물론 비번이라고 에릭이 직접 밝히긴 했지만, 키도 작고 왜소해 보이는 에릭이 군인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지어내기 마련입니다. 애초부터 그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동양인 여자 아이 두 명을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신의와 함께 지도를 읽으면서 어딘가를 헤매이고 있는 행동들을 보았을 것이고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란 봉투에 식료품을 담은 것처럼 들고 어딘가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미끼를 던지기 위해서 점심에 먼저 돈을 썼을 것입니다. 점심에 돈을 썼으니 우리가 그에게 호의를 보일 것이라는 것쯤은 상식일 것입니다. 그런 꾀임에 신의가 넘어 갔던 것입니다. 신의는 별로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에릭에게는 많은 도움을 주었겠지요. 한국어는 어떻게 알았느냐구요? 파리처럼 거대한 관광 도시에서 한국어 정도를 모를 리는 없지 않을까요? 그는 아마 오랜 동안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해 놓고 이런 범죄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매우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썼을 겁니다. 한국의 음식과 한국의 풍습에 대해 그리고 정이 많은 한국인들의 특성에 대해 그가 수집하지 못할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길을 가다 만난 동생과 고모는 어떻게 되는 거냐구요? 그것도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아마도 에릭은 거대한 조직들과 연결이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동생과 고모는 아마 자연스러운 시나리오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셋이 걷던 그 시간에 정확하게 나와서 우리와 마주쳐 주던 그들의 모습은 정말 영리한 장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에릭을 다시 한 번 믿을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까요. 이쯤 되면, 카페에서 인사하던 사관학교 생도는 더욱 더 정교한 시나리오의 짜임새였다는 것을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아니, 그렇다면 혹시, 신의도 그 시나리오의 일부일까요? 진짜 그런 걸까요? 그렇담, 지금부터는 신의에게도 생각이 들키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정교한 시나리오에서 빠져 나갈 수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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