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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일 01시 45분 등록
 

너와 함께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수 있을까? 어머니 말대로 우리 집에서 나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하는데. 얼마나 벌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 걸까? 1년에 천 만 원 쯤 벌면 많이 버는 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재영이 엄마 말처럼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훌륭한 사람이 못되는 걸까? 그나저나 내 첫 월급은 얼마나 될까? 이제 시작인데. 월급 이야기는 3개월 후에나 하자는데 그때 가서도 ‘야! 이렇게 해가지고 돈벌어먹고 살겠어. 엉.’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하지.

  승진이가 같이 컴퓨터 배우면서 일하자고 하면 뭐라고 할까? 분명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물어볼 텐데. 밥도 주지 않는다고 하면 그 녀석 얼굴색이 붉게 변하면서 미쳤다고 할 것이 뻔하다. 아니 그것보다 지금쯤 작은아버지 밑에서 맘 잡고 일 잘하고 있으면 함께 하자고 하는 말은 꺼내지도 못할지 모르지. 내일 집에 전화나 해봐야겠다. 인열이는 디자인 학원에 잘 다니고 있을까? 좋아했으니 잘하고 있겠지. 일찌감치 대입준비를 시작한 홍일이는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이 녀석들 보고 싶다.

  내일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은 오질 않았다. 담벼락을 타고 보름달이 반쯤 눈을 가린 채 멀건이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는 듯 했다.


  “어머니. 저 현웅입니다.”

  “누구라고.”

  “현웅이라구요.”

  “어. 난 누구라고. 그래 잘 지내냐. 현웅아. 근데 요즘 통 놀러오지도 않고. 뭐하고 산 다냐 너는.”

  “뭘하긴뇨. 어머니. 저 취직해서 실습 나왔어요.”

  “너도 실습 나갔냐. 승진이도 실습나간다고 지 작은아버지한테로 가더니. 아니 이 망할 놈이 벌써 와부렀다.”

  앗! 이게 무슨 소리람. 혹시 승진이 연락처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집에 전화를 한 건데. 벌써 와부렀다니.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 그래요. 어머니. 승진이 있어요.”

  “잠깐 기다려봐. 이눔이 아직도 자빠져 자고 있나 부다.”

  ‘승진아~~. 승진아~~’ 정말로 자고 있는지 어머니가 승진이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하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했으니 별일이 없으면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다.

  

  “여보세요.”

  “야! 빽. 나다.”

  “알어 임마. 그데 왜 아침부터 전화질야. 어제 늦게 와서 피곤해 죽겠는데. 그건 그렇고 너 용하다. 내가 온건 어떻게 알고 전활 했냐.”

  “용하긴 임마. 한긴 우리 엄마도 나보고 용하다고 그러라. 내가 점쟁이 빤쓰 입고 다니잖냐. 어제 밤 꿈에 니가 보이더라.”

  “아이고 지랄.”

  “지금 나와라. 나 신촌에 있으니까. 언능 나와.”

  승진인 지금 내가 여기 취직했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 처음 이곳으로 오는 날 빽도 광주로 떠났다. 하여간 지금 상황을 알면 재미있어 할 것이다.

  “니가 지금 시간에 신촌에 왜 있냐?”

  “엉. 취직했어. 형이 점심 쏠테니까 빨리 나와라. 할 이야기도 있고.”

  “뭐 취직. 이놈 이거 두 번 용하네. 할 것도 없고 하니까 나가긴 하는데 라면으로 점심 때울 생각은 마라.”

  “당근이지. 여기 떡라면 죽여주는데 있어. 설마 내가 그냥 쌩라면으로 때우겠냐.”

  “아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래 어디로 가면 되는데.”

  “니네 집에서 학교가는 버스 타고 신촌역에서 내려. 12시에 그 버스 정류장에서 보자. 알았지. 그럼 있다가 보자.”

  

  나는 승진이가 더 물어볼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서둘러 수화기를 내려놨다. 일단 만나서 점심을 먹여놓은 다음에 취직 이야기를 꺼내야한다. 이 녀석 최대의 약점이 바로 밥사준 사라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방학 때 달력 만드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도 그곳 아저씨들이 밥을 사주고 몇 시간 더 일하자고 하면 승진이는 언제나 오케이였다. 더군다나 학교에 취업 나간거로 되어 있으니 승진이도 뭔가 다른 일을 찾아봐야 될 테고. 지나 나나 그놈이 그놈이니 서로 도우는 샘 치고 잘 해보자고 꼬시면 될 것이다.


  “누나.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오늘은 누나 혼자 점심 드셔야겠어요.”

  “뭐야. 그럼 나 혼자 도시락 먹으라고. 너 주려고 밥도 많이 싸왔는데. 근데 누구 만나러가니. 혹시 너 여자 친구 만나러가니?”

  왠 여자친구. 그런 거 있어봤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내 밥까지 신경써주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난 집에다 죽어도 도시락 싸달란 소리 못하겠다.

  “아뇨. 저 여자 친구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친구 만나러가요. 여자 친구는 무슨........”

  “어머 예는. 아니면 아니지 정색을 하고 그래. 얼굴까지 빨게 가지고는. 귀엽게.”

  아 쪽팔리다. 난 왜 여자 친구라는 단어만 나와도 이러는 걸까.

  “그래 갔다 와. 사장님 안 계신 다고 늦으면 안 된다. 알았지.”

  “알았어요.”

  경리누나 잔소리가 왠지 싫지는 않았다.


  사무실에서 신촌역까지는 10분 거리다. 나는 다만 몇 분이라도 더 벌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걸어서 15분 거리가 뛰니까 5분도 안 걸린다. 숨이 턱 끝까지 치고 올라 왔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단짝 친구인 승진이를 오랜만에 보는 기쁨과 어쩌면 이 녀석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5분을 내리 달려도 힘든 줄 몰랐다. 이제 나 혼자 컴퓨터와 씨름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다른 아이들은 똑똑해서 제 갈길 찾아갔지만, 난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승진이는 나를 이해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넘은 나와 함께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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