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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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결혼과 신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큰 사건을 통해 인생의 다른 면도 더불어 배우게 되는 것이 순리인가 보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전직 대통령이 운명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삼우제를 치른 지금까지도 나는 죽음을 수용하는 단계 중 ‘부정’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고인이 죽지 않고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 같아서 믿을 수 없는 거다. 이순신에 대한 자료조사 중에도 그의 죽음이 자살이었을 가능성에 논란이 있다는 대목에 눈길이 더 갔다. 그렇게 내게 죽음은 대수롭지 않은척 해온 것이지만 가장 깊은 아픔을 건드리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몇 개월 간 내가 지독한 무기력증을 앓아 왔다는 자각이 드디어 들었다. 그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죽음, 멀리는 아버지의 상실에 큰 원인을 두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지난해 말 결혼 날짜를 잡고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아버지 고향에 내려갔다. 큰아버지는 한국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유일한 형제였다. 그곳에 가서야 그로부터 넉 달 전, 미국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에게 연락해도 받지 않았다면서. 황망했다. 그 때 나는 프랑스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 들어 있었던가? 미국에 언제 들어가야 할 지 몰라서 우리 자매의 미국비자 기간은 항상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지난 100여 일, 나는 무얼 하며 살았나 싶었다. 아픔에 대한 나의 촉수가 유달리 예민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너무 잔인했다.
그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기존의 나답지 않은 모습에 스스로 흠칫 놀라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간 지나치게 솟아올랐던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이제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이 꽤 흘러 이렇게 또렷이 느껴지지만, 그 동안 나는 제대로 글을 쓸 수도, 무얼 할 수도 없는 정말 이상한 시간을 지내 왔다. 학교를 슬그머니 그만 나가며 논문 쓰기를 접은 것도, 결혼준비나 저작을 핑계로 직장을 알아보지 않은 것도 모두 이 무기력증 때문은 아니었던가. 글을 쓴 것도 오직 강제된 경우였는데, 논문에는 내 목소리가 한 줄도 나오지 않았고, (이젠 다 지워졌지만) 여기 올린 칼럼과 독후감도 나답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을 좋아했던 내가 인간관계를 거의 정리하다시피 하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다시 세상을 미워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인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분노와 무거운 우울감, 뭔가 답답한 마음이 계속 풀리지 않던 원인을 이제 찾아낸 것 같다.
반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은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고,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고 말하기 너무 섣부르다. 해외 경제학저널인가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도 불행도 곧 정상궤도(항상심)로 돌아오려는 회귀 성향을 가지며, 충격이 크더라도 길어야 2년이라고 하는데, 결혼이라는 행복 사건과 섞여 좀 더 빨리 제대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렇게 돌아온 내가 그 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