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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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하고 많은 테마 중에 소심에 대해서 쓰려 하는가. 왜 소심에 집착하는가. 한번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는 듯 싶다.
소심이란 일반적 정서상 그다지 장점 혹은 매력으로써 남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요소는 아니다. 단어 자체가 품고 있는 이미지 또한 부정적이라고 봐야 하는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단어들을 살펴 보면 더욱 확연해 진다. ‘쪼잔’, ‘밴댕이 속알딱지’, ‘속좁음’, ‘유약함’, ‘우유부단’, ‘답답함’ 등등. 어떤가? 이 단어들을 보는 순간 가슴 한켠이 화~악 답답해지지 않는가.
일상 속 대화에서 소심을 찾아보자. 친구간의 혹은 아는 사람간의 대화에서 쉽게 이런 말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그. 이런 소심한 놈 같으니라구... 쯧쯧쯧...”
또는
“그러니 니 속을 ‘밴댕이 속알딱지’라고 부르는거야. 제발 좀 넓게 좀 생각해 봐봐.”
이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당신 왜 그리 쪼잔해? 왜 얘들처럼 유치하게 그러는데? 원래 그렇게 당신밖에 모르고 살았던거야?”
울컥하지 않는가. 뭔가 머리 위에서 모락모락 솟아 오르는게 있지 않는가. 하지만 위의 말들은 내가 40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다 들었던 말들이다. 정말 정말 듣기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들을 수 밖에 없었고, 지금은 다시는 듣기 싫어 꽤나 그렇지 않은 척 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대범한 척, 대담한 척, 속 넓은 척, 통큰 척. 척척척 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내 자신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가면을 쓰고 살려니 얼굴에 땀이 차고, 기름기가 끼며 숨까지 막혀 온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사람’, ‘남을 배려하고 신경써 줄 줄 아는 사람’,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내세워 줄 줄 아는 사람’ 등등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많은 불만과 자책, 좌절감이 심어져 갔다.
이 치열하고 어려운 사회에서는 결국 자신만의 독특하고 참된 빛을 내기 위해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몰두하는 사람들만이 성공에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전문분야와 그 분야 내에서의 깊은 차별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에 자리를 잡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나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진정한 자신을 찾기는커녕 거짓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으로부터 약 6년전. 나는 회사에서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다소 시끌벅적하며 활기가 있었던 구매부서에서 조용하고 차분, 꼼꼼하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리부서로 옮기게 된 것이다. 사람들 자체가 달랐다. 이기적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내가 있을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양보하고 배려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금방 지쳐버렸다.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마침내 회사 출근하는 일 조차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끔찍했다. 사람들 얼굴을 마주치는 것 자체가 싫었고, 그들과 나눠야 할 의미없는 껍데기 대화들이 미웠다. 겉으로는 어떻게든 맞출 수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이렇게 라도 사회생활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내 처지가 혐오스러웠고, 아무 것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비참스러웠다.
그러던 와중 어느 출근하는 날, 지하철 안에서였다. 출근 스트레스에 쌓여 아무 생각도 못하던 중 갑자기 머릿 속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소심한 사람들의 성공법>. 이런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자기계발에 관련된 여러 가지 책들을 읽고는 읽었지만 <소심>을 주제로 한 책은 본 기억이 없었다. 나처럼 소심해서 고생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바이블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 스스로 이런 책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생하고 있으니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나를 위해 이런 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은 아무나 쓰나. 생각은 생각에 그쳤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업무 다이어리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 다시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작년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첫 책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행복>이란 키워드가 좋아 그 방면으로 쓰고자 하였으나 구체적 아이템이 나오지 않았다. 고민 중 우연히 <소심>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사부님을 비롯한 모든 연구원들이 좋은 테마라고 강력추천하였다. 결국 나는 6년전 고민했었던 <소심>이란 테마로 첫 책을 쓰기로 결정하였다.
돌아보면 운명과도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많고 많은 주제 중에 하필이면 6년전 생각했던 그 주제란 말인가.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소심>이란 주제가 지난 6년동안 내 가슴 한켠 어디에선가 계속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 그것이 현실로 튕겨져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처음 쓰는 글쓰기, 길게 호흡하고 천천히 가려 한다. 이 <소심>이란 주제가 앞으로 5년 뒤,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 나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는지는 모른다. 내가 <소심전문가>가 되어 수많은 사람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혹은 다른 분야로 전직하여 새로운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하게 된 일. 나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가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 소심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자신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체로도 난 내 자신에 대해 조금씩 정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다. 여전히 소심하지만, 웬지 다른 느낌, 긍정적이며 밝은 느낌의 새로운 소심을 만들어 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소심>에 대해 쓰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