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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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는 의사에서 바이러스 연구소 벤처 CEO있다가 10년 만에 그만 두고 현재 카이스트 대학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그는 한국 최초 정보보안 소프트 웨어를 개발하여 무료 배포 했으며 안철수연구소를 성장시켰다. 그는 기업의 이윤 추구보다 사회적 이익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다. IMF 후 어려운 기업환경에 처해 있을 때 외국기업의 거액 스카웃 제의 및 회사를 판매하라는 유혹을 받았지만 "내가 안철수연구소를 팔면 나는 갑부가 되지만 국민들은 앞으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백신프로그램을 외국기업에 사야 하는 손해는 거부하겠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의 본질에 충실한 원칙경영은 기업 경영의 참모습이라 하겠다. 그래선지 ‘대학생들이 뽑은 존경 받는 기업인’ 1위에도 올랐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사람들의 칭찬은 침이 마를 정도이다. ‘사람 참 좋더라, 감동적이었다, 본받아야 할 사람이다’는 걸 보면 신문기사 보다 더욱 진솔하게 소신 있고 인간적인 모습이 비춰졌다 보다. 더욱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내리게 되는 것은 그의 아버지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좋은 본보기로 더 훌륭하신 분이며 그런 분이 있었기에
그의 아버지는 부산의 판자촌 마을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고질병이 난무하던 가난한 동네에 병원을 차린 안 원장은 진료비를 시내 병원의 절반 수준으로 받으며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치료했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한다. 과연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모로 비춰지고 있으며 나한테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덜컹 걱정이 된다. 요즘에 들어 집에 있으면서 아이의 공부에 대해, 아이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기사는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 준다. 나는 과연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거리가 있는 엄마인가?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가 어떤 것을 본받기를 원하는가?
아이의 기말고사가 내일이다. 아이의 생애 최초 대형시험 치는 날이다. 이런 것도 아이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로지 엄마인 내가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 시험기간에는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집거한다는데 나도 요 며칠 그랬다. 약속을 취소하거나 안 만들기 까지는 아니지만 같이 문제를 풀고 틀린 것 재확인 했다. 평상시 꼼꼼히 공부 하도록 지도 하지 못함이 후회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아이가 더하기을 손가락 세지 않고 계산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문제를 풀려 보는 것은 공부 잘하고 싶고 욕심 많은 아이가 시험점수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욕심이 많은 아이라면 알아서 하겠지’ 하고 기다려도 봤지만 아직 어려 공부 잘하고 싶은 욕심과 실천이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를 인지하지 못한다.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것 조차도 부딪치며 터득하기를 바라며 내버려 두고 싶지만 아직은 적절한 때가 아닌듯 하다.
주변에 학원가고 선행 학습을 하고 집에서 엄마와 또 공부하고 엄마는 나름대로 아이 학습지도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까지 해야 되느냐는 질문에 “모르는 소리 하지마. 요즘 애들 공부는 엄마가 다 가르치는 거야.” 라고 핀잔을 준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연세 많으신 담임 선생님이 “아이가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인 거 아시죠?” 했던 말 만큼이나 놀랍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의 상황에서 아이 교육에 대한 어떤 소신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아이가 어떤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가. 내가 아이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아이의 잘 잘못을 대한 판단이 아이가 중심을 잡을 수 있게 일관적이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아직 소신은 커녕 이 말 들으면 여기에 솔깃, 저 말 들으면 거기에 솔깃 한다. 오쇼의 아이들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른 교육이란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한다.
오쇼는 9년 동안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그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연꽃 가득한 호수에서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교육 자체가 필요 없다고 한다. 교육은 인간이 불쌍한 어린아이들에게 저지른 가장 큰 범죄이며 아마도 이 세상의 가장 마지막 해방은 어린이의 해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교육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알 것 같다. 지금의 시험평가를 위한 교육은 이런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오쇼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 유일한 것은 마을의 한쪽 편을 흐르는 작은 강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그 강에서 강과 함께 놀았다. 하늘의 별들과 흐르는 강물, 떠오르는 태양, 그는 자연 속에서 자랐다. 그는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늘 거닐기 좋은 정원을 두었으며 자연과 함께 했다. 이렇게 심연에서 깨달은 자도 자연 속에 살고 자연에서 한 없이 고요해지는 걸 보면 자연만큼 큰 가르침을 주는 것도 없는 듯하다.
자연에서 배운 것은 지식의 교만함이 될 수 없다. 바람결에 건들건들 흔들리는 풀 잎새를 보았는가. 그 흔들림에도 마음의 풍요와 안식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영적인 부분을 떠나서 문학을, 시를, 예술을, 과학을 배울 수 있다. 긴 인생에서, 행복한 삶의 추구에서 수학 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심성이, 자주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고의 힘이 가장 중요하지 않지 않겠는가.
오쇼는 말한다. 지성을 예리하게 하라고. 예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교과과정 따위는 작은 문제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닥친 현상과 교육 속에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참으로 한심하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자연 속에 있는 듯하다. 이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훌륭한 인격자나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었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교육철학이 있었고 소신이 있었다. 아이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엄마로서 교육현실을 탓하기 이전에 부모의 교육에 대한 명확한 소신이 가장 중요함을 깨닫는다. 단기간의 성적이 아니라 긴 인생을 펼쳐갈 힘과 풍요로운 심성을 심어줄 수 있는 부모의 교육 철학 말이다. 이것 또한 치열하게 고민할 나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