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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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하기 2
설마 했는데. 누나가 보여준 캐드실력은 정말 선 그리고, 자르고, 붙이고가 전부였다. 그녀가 컴퓨터를 켜고 앉았다 일어난 시간은 5분을 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거 말고도 많은 것이 더 있을 것 같았는데 회사에 들어 온지 3개월이 넘었다는 누나의 캐드실력은 그냥 경리밖엔 할 수 없을 듯하다. 하긴 누구 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한자락 희망마저 보기 좋게 꺼졌다.
"잘 봐. 선은 이걸 누르고 이렇게 하면 그려져. 신기하지... 그리고 두 줄도 한꺼번에 그려진다. 이렇게 하면 되. 자르기는 이렇게 하면 되고. 끝."
"누나. 정말 그게 다예요. 일부러 그러는거죠."
"실망했니."
"그것만으로 어떻게 도면을 그려요. 도면의 생명은 치수 넣는 건데. 그건 어떻게 하는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너희를 도와줄 수 없겠다. 아주 조금은 미안하네."
"아이. 미안한게 아니라. 설마 했는데. 증말 너무하네."
누나가 미안할 것 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아쉽다. 이제 물어볼 사람이라고는 사장님 밖에 없는데 그건 정말 자신 없다. 어떻게 사장님한테 물어봐. 알려 주지 않을게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진짜 잘 모를 수도 있다. 산적보다 더 산적 같은 사장님 얼굴만 봐도 얼어버릴 지경인데 큰일이다.
어쩐 일인지 시종일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빽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누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지 고개를 약간 움직였다. 뭔 이야기를 하려는지 기대된다.
"아..~~~"
'빽. 진짜 미치겠는 건 나다. 이 씨불놈아. 이 상황에서 하품이 나오냐. 하품이'
하긴 빽의 오늘 하루야 말로 이상한 사건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겠지만 그 와중에 하품을 하는 녀석의 넉살이 부럽다 못해 두렵다. 손가락을 입속으로 확 쳐 넣고 싶다.
사자 대가리도 삼키고 남을 것 같은 작살표 하품은 빽의 상징이다. 나야 허구헌 날 보아온 터라 이상할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오늘만은 그러지 않길 나는 소망했다. 이거 처음 경험하는 사람은 얘가 지구에 온 목적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한 번도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내 소망 따윈 안중에도 없나보다.
누나도 어이가 없었는지 기도 차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난 누나를 이해할 수 있다.
'야! 빽 봤냐. 누나의 저 표정을. 얼굴에 들어간 근육에 놀라 실핏줄이 터질 것 같은 저 표정 말야 임마!'
"홍아. 배고프다."
"얌마. 쩍 찢어지는 하품도 모자라 고작 한다는 얘기가 배고프다고 그래 니 뱃속에는 뭐가 들어앉은 거냐. 곱빼기 라면에 떡도 먹었어. 그것도 모자라 만두까지. 그리고 한게 뭐 있다고 또 배가 고파. 정말 너네 별의 끼니 구조가 궁금하다. 궁금해. 나 좀 거기 데려다줘. 아니 어딘지 알려주면 내가 우주선을 만들어서라도 찾아가 볼라니까."
내가 왜 빽을 찾았을까? 앞으로의 일이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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