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예원
  • 조회 수 5144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9년 7월 6일 11시 12분 등록

피아노와 기본기

나는 만 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어느 날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을 보고 ‘꽂혀서’ 저걸 배우고 싶다고 졸라서 배우게 되었다는데, 물론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피아노는 먼저 배우기 시작해서 여러 필수 교재들을 ‘떼는 것’이 중요했다. 때문에 재능은 둘째치고 나는 또래 친구들을 항상 넘어서 ‘피아노를 잘 치는 애’로 여겨졌다. 부모님은 심각하게 여겨 대학교수에게 레슨까지 시켜보았는데, 나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도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감지했던 것 같다. 선생님 앞에서 일부러 손을 엉터리로 놀리고 피아노를 못 쳐서 ‘얘는 피아노 전공시킬 정도는 아니네요’ 하는 말을 듣고만 것이다. 돌아보니 나는 애초에 누구에게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는 데 편안함을 느끼는 성격이 아니다.

이후 평범한 피아노학원에 몇 년간 다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연습해서 실력을 늘리는 것보다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4학년쯤 되자 초등학생 수준에서는 더 배우고 싶은 곡도 없고, 많은 아이들에 치여 더 가르쳐줄 만한 여유가 있는 선생님도 없었다. 평생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나는 피아노를 더 치기 싫다고, 학원에 다니지 않겠다고 나름 폭탄선언을 했는데, 그 이야기에 수긍하고 피아노 선생님께 그만 보내겠다고 전화를 하던 엄마 옆에서 나는 그만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수 년 간 계속해온 것을 그만두는 허탈함이 그 나이에도 뭔가 울컥한 것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목 메는 경험은 그 날 이후 내 삶의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 책 <위대한 나의 발견★강점혁명>에서 말하는 나의 대표 테마는 <탐구심, 학습자, 사고, 성취자, 초점>이란다. 몇 달 전, 이 결과를 받아 들고는 상위 세 개 테마가 <탐구심, 학습자, 사고>인 것에 무척 절망했다. 우리 사회에서 중시하는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인데 왜 슬퍼했느냐고? 나는 이미 이 세 가지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다고 여긴 ‘학계’에서 방금 떠나왔으므로. 그리고 그 전에는 <탐구심, 학습자, 사고, 성취자>까지 모두 활용할 수 있었던 언론사에서 제발로 걸어 나왔으므로. 때때로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 그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가? 얻기 힘든 천직을 괜한 트집으로 때려 친 거 아닌가? 하는 컥컥한 목멤이 마구 밀려왔다. 이미 건너온 강을 되돌아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그 이상의 직업을 아직 찾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했고, 지금도 그 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년 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내가 처음 보는 악보를 마치 피아니스트처럼 자연스레 연주했다. 역시 어렸을 때 배운 것이 탄탄한 기본기로 작용한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아, 이건 어젯밤 꿈에서 일어난 일이다. 며칠 전 정명훈의 피아노 연주를 인상 깊게 본 탓이리라. 나는 이 꿈이 피아노만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지금 나의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록 일이 년, 길어지면 삼사 년 방황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잘 활용해 기본기를 더 다지라고. 그러면 언젠가 내 강점을 모두 활용한 ‘100% 맞춤 직업’을 내 스스로 가지고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위기 상황에서 그 빛을 발해 왔던, 그 ‘기본의 힘’을 다시 믿어 본다.

 

IP *.10.174.141

프로필 이미지
희산
2009.07.06 12:15:36 *.17.70.3

오랜 기간 거친 기후에 노출되어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응축된 나무가 건물의 동량이 되듯이....

지금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시간, 힘들어도 수련의 기간임을, 나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 쓰여지기 위함임을 느끼곤 해.

예원도 힘들겠지만 홧팅. 힘들 땐 주변을 함 둘러봐. 아마도 가5기 바로 옆에 있을 테니^^. 함께 즐기면서, 함께 견디면서....

프로필 이미지
2009.07.06 15:26:54 *.246.196.63
응 나두 그 '기본의 힘'을 믿어
그리고 아인이 반드시 멀지 않아 그 힘을 받아 스스로 빛날 거라는 것도 믿어
프로필 이미지
2009.07.07 01:59:05 *.233.20.240
내도!! 글고 나 믿는 게 또 하나 생겼어.
춘희와 짝을 이루어 보여줄 O형 여인의 진가! ㅍㅎㅎㅎ
아인이의 숨겨진 개구쟁이 모습! 상상만해도 즐거웡~~ 앞으론 더 마니 보여줭잉~~~ ^^**
프로필 이미지
2009.07.08 00:07:44 *.178.155.91
아인~
만 두살때 피아노에 꽂혀? 그거이를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다니..역~쉬 아인다워..

서른.. 그리고 새로운 인생.. 거기에다.. 말안해도 우리는 알~~쥐.^^
혼란이 진행중이라고?
아닌데.. 아닌데..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62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3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7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7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51
5201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9
5200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82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90
5198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6
519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8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801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6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9
5193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