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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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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4일 10시 40분 등록

1.  그대가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그대가 겪은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이 기술되겠지 ?  
      지금 까지의 나를 만들어 온 가장 중요한 경험은 어떤 것일까 ?   
     '3가지의  큰 경험' 이 무엇인지 나열해봐.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들을 다 버리려고
나의 역사 20페이지에 나온 내용은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저의 인생을 처음부터 뒤돌아 보았습니다.

지난번 호주 여행 중에 쓴 칼럼에서 ‘외국에서 사는 것에 대한 포기’를 언급했는데,
저는 이번의 테마로 자연스레 ‘포기’, 혹은 ‘내려놓음’을 정하게 되었어요.
그 테마로 저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경험이 모두 풀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포기’로 얻은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도 말씀드릴게요.


첫 번째는
부모가 마련해준 보호막에 대한 포기 또는 내려놓음 입니다.
거의 선택의 여지 없이 파괴되었기에 타의에 의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결혼 전까지, 아니 결혼해서도 부모의 세계에서 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는 부모의 재력, 명성, 그들이 물려줄 안락함을 완전히 포기했고
그 덕분에 자립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방송기자에 대한 저의 꿈을 내려놓았던 경험입니다.
이걸 두 번째 자세히 묘사하는 것에서 다루려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 저는 자유를 얻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세 번째는
항상 차곡차곡 알차게 쌓아가던 저의 커리어를 포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제 이력서엔 빈틈이 없고, 두 세 배로 압축되어 똘똘 뭉쳐져 있다고.
그랬던 제가 결혼과 출산, 육아를 당분간 저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리로 내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새 생명과 행복이라는 넘치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2.  '3 가지의 큰 경험'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자세히 묘사해봐  ( 1 - 1.5 페이지) 
    
      * 발표는 쓴 것을 읽을 꺼야.  그럼 시간을 줄일 수 있겠지.   
        읽기 싫다고 ?  그럼 외우면 되겠구나.  우리 말대신 글로 하자. 


우선, 저의 소중한 꿈이었으니
어디 가서 언급하신다거나
너무 아픈 질문은 삼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체로도 저에겐 아프니까요.


저는 방송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뉴스를 함께 보다가
‘아빠, 내가 저런 기자 하면 좋지 않을까?’하고 운을 뗀 적이 있었고
이후 기자가 되겠다고 재수까지 하던 중에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지요.
아버지에게 했던 나의 마지막 약속이었기에 꼭 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사람들과 세상을 겪으면서
저에게는 오직 빨리 출세해서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함부로 했던 나, 이렇게 훌륭하게 됐다’고
세상에 떵떵거리며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와 우리 가족을 위한 내 최고의 ‘복수’였지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방송기자가 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이런 욕망도 있었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초심자에겐 행운이 따릅니다.
저는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한 지 불과 한두 달 되었을 때
까다롭기로 소문난 한국방송 필기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남은 것은 카메라테스트와 면접.
공부에 매진하느라 카메라테스트는 준비조차 못했던 저는,
그리고 스물 넷 가장 어린 지원자였던 저는
벌벌 떨며 시험을 망쳐버리고 맙니다.
더 아쉬운 것은. 첫 기사를 읽고 난 뒤
예외적으로 저에게 ‘한 번 더 읽어 보라’는 주문이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신문사에 들어간 것도
신문기자 경력이 방송기자가 되는 데 여러 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문사에서 몰래 몰래 응시했던 방송국 시험에서는
더 이상의 행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기자 생활 초기 2~3년 간은 주말과 여유시간을 몽땅 쏟아부어 공부했는데도 말이지요.

저는 방송기자라는 내가 세운 첫 꿈이
단지 허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했듯, 방송기자가 되고 싶다는 나의 동기가 불손했기에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여러 복합적 이유와
나의 꿈을 찾아
저는 신문사를 떠났습니다.

제가 외국에 잠시 공부하러 나가있는 사이
저의 동기, 선후배들이 하나 둘씩 메이저 방송사로 옮겨갔습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어 저 사람은
한 기수 선배, 한 기수 후배, 우리 동기.. 이러면서 다 아는 기자들이 줄줄이 나오니
남편은 신기해 합니다. 너도 계속 다녔으면 저런 데로 옮겼을 텐데.. 하면서요.


하지만 저는 기억합니다.
내 마음 속에서 방송기자에 대한 꿈을 내려놓던 그 날을.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어떤 누구도 무어라 하지 않았는데
저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서럽게 복받쳐오르는 뜨거운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렇게 아프게 보내고 나서인지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방송기자로서의 삶이
더 이상 부럽지 않습니다.

 

 


3.  이 경험을 통해 그대는 그대라는 세계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었지 ? (0.5 페이지)
     (그대의 기질, 취향, 재능, 가치관, 믿음, 선호 등등.... )

이 경험을 통해 먼저
저는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성인군자처럼 살고자 했던 것이 위선임을
나도 ‘훌륭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을 배짱이 있는 사람인 줄도 동시에 알게 됐습니다.
그걸 내려놓고 다른 더 상위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것이
저만의 고유한 본질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크게 배운 것은 좌절입니다.
돌아 보니 인생에서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중에
못 이루어낸 것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빨리 되고의 차이였지요.
그랬기 때문에
무엇이든 내가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자만심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이 세상에는 정말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 깨우침 치고는 좀 늦은 편이지요?

또 최고의 복수는,
남들이 보란 듯 잘 사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나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임을 알고
괜한 욕망에 사로잡혔던 그 시간을 허탈해하기도 했지요.


제가 <피아노와 기본기> 칼럼에서 언급했듯
사람들 앞에 나서고 주목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저의 기질에 대해서도
(말 많이 하는 거 싫어하고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 사람과 방송기자는 참 상극인데 말이지요..)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는 것도
그것이 결국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꿈과 나의 소중한 가치들을 재단당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도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덜 여물었습니다.
누가 누구에 대해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견해일 뿐
나의 고유성에 티끌 하나도 더 붙이고 감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 데도 잘 되지 않는
아직은 상처 잘 받는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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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4 10:48:05 *.233.20.226
아인아, 아마 넌 잘 모를거야. 수업 중에 거울을 볼 수 없을 테니.
네 표정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네 표정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역시 사랑의 힘이 크구나. 역시 생명의 힘이 크구나, 하는 걸 느꼈어.
그리고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참으로 뿌듯했고...^^

사부님 말씀처럼 넌 너의 재능을 결코 썩히지 않을거야.
아니 더 건강히 세상 밖에 널 표현해낼거야.
나 역시 그 점에 대해서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널 믿어.

아인아. 늘 행복하기를 믿고 소망해.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말이야.
우리 모두 앞으로는 지금처럼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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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07.15 19:14:40 *.131.127.100

잃는 것이 얻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
삶이 노력과 투쟁으로 가득해서
그릇이 커졌으니 비우기도 쉽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새생명이 자라듯이  아인의 새 삶도
건강하고 멋지게 자라리라는 것을 확신한께..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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