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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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얘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녀석은 A 형이고 등치도 좋다.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나름대로 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얘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내가 그에게 물어보는 말은 딱 한가지 뿐이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큰 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을 한다. 보통의 삶을 살 수 없는 나의 직업과 생활방식들은 그에게 불만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 가족 때문이라는 말로 변명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내 삶에 당당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다. 나는 자신을 위해서 살았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으며 내 나라와 내가 소속된 협회와 가르쳤던 선수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나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인정해주었다. 내가 살았던 날의 공과를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큰 얘는 나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큰얘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싶어한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이 여리다. 그는 지능장애아들을 도와 봉사하고 자폐아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봉사자 활동을 한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해오고 있다.
“즐겁니?”
“힐민해요!”
“왜 하는데,,”
“그냥, 하게 됐어요…봉사활동 점수 받으려고 했다가 나중에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계속하게 되었어요”
내 자식이지만 기특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나쁜 아버지다. 누군가는 코을 꿰어서라도 장래를 위해서 끌고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천만에… 사람은 원하는 것을 할 때 신이 난다. 어린 나이에 책상에 코를 쳐 박고 그렇게 오랫동안 돈과 시간을 들여서 배운 것이 사는 데 얼마나 쓸모가 있던가? 그렇게 많이 배워서 지 한 목구멍 채우느라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다. 나는 그런 자식을 바라지 않는다. 위험한 발상이라면 … 그렇다고 해 두자, 그래도 난 그렇게 하고 싶다. 삶은 어차피 모험이고 곡예 같은 것이다. “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성실함과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그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시키는데로 부모가 옳다고 말하는 데로만 살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 “
자식의 장래가 걱정도 안되냐고 말한다.
“ 당연히 걱정이 되지, 남의 자식도 목숨 걸고 가르치는데 제 자식이야 오죽하겠는가?
나도 그렇다. 내 자식은 웃는 것도 남의 자식보다 더 이쁘고 똥을 싸도 남의 자식 것보다 더 보드라운 것 같다. 내 자식이 제일 잘 난 것 같다. 그래, 실제로 나는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내 생각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다만 그런 나의 사랑을 빙자하여 아이가 나의 아쉬운 과거의 소망들을 채우는 대리 인생이 되기를 원치 않을 뿐이다.“
지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요즈음 80년을 살고, 얼마 안 있어 잘하면 사람 수명이 130이 된다는 데… 몇 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고, 자신의 현실적인 삶과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큰 얘는 내 공부에 관심이 많다. 나는 그에게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라는 책을 소개한다. 나는 그 책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네게 아버지라고 해서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
“그래도 때로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아빠는 더 많이 살았고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셨잖아요…”
“고맙다. 인정해줘서… 그래도 나는 가능한 한 너의 삶에 대해서 간섭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하고 네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알아요… 아빠가 언제나 그렇다는 거…”
사실 나는 그에게 가르치기 보다는 물어보는 경우가 더 많다. mp3 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요즈음 다운을 어떻게 받는지,,,
나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보다는 남자다운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의 엄숙함과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반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얘가 말문을 열기도 전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학문적으로는 잘 알고 있다. 스승과 아버지는 엄숙함과 자애로움을 함께 해야한다는 거…
그러나 현실에 처하면 나는 갈등한다. 내가 옳은가?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를 등에 업고 나는 말했다.
"아들아! 남자는 스스로 일어서서 강자가 되고 자기자신과 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야 한다. "
"... "
"대답해야지.."
"예~"
그런 큰얘가 다 커서, 이제는 어른의 생각과 화제들을 공유한다. 무엇이든지...
나의 생각으로, 이미 가르칠 나이는 지났다.
내가 그에게 가르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을 지킬려면 성실함과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이젠 얄팍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예전에 무서운 아버지의 엄격한 이야기가 아니고, 엉터리 스승들이 해준 그런 거짓 명분과 위선적 행동도 아니다.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한다.
숙제를 하다가 젖혀두고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처럼 ‘ 나는 지금 일이 있어서 바쁘다’ 라고 말하지 않고 그럼 오늘 숙제는 이걸로 하지 … 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지혜다. 작은 것이지만 의미있는 발상이다.
그것이 내 하루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다가오는 내일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생각이 아닌 행동이 중요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살아서 내게 오던 말들을 기억하며 머리를 쥐어짜다가도 그것들을 내려놓고, 아이를 존중하고 성실하게 대하는 것이 내게는 ‘혁명’이다.
작지만 소중하고 살아있는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