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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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오전반 수업이 있는 날이면 저는 수업이 끝나도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앞에서 동생을 기다렸습니다. 한살 아래 여동생을 데리러 간 것이었는데 점심도 거른 채 혹시나 늦을까 숨을 헐떡이며 뛰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제가 데리러 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만 기다리면 될 텐데도, 먼저 집으로 간 적도 있었고, 어떤 날은 저를 보고도 아는 척을 하지 않고 멀찍이 앞서서 걸어갈 때도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저에게 동생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저는 동생이 친구랑 싸웠거나 혹시나 선생님께 혼이라도 났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면서도 동생의 눈치만 살피며 뒤따라 집에까지 오곤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되었지만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저는 학교를 마치면 계속 여전히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향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우연히 어릴 적 이야기를 하던 중 동생에게 유치원 때 왜 그랬냐고 물으니, 다른 친구들은 엄마나 할머니, 그러니까 어른이 데리러 오는데 자기는 언니가 와서 무척 창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참...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엄마께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진작 말했으면 데리러 갔을 텐데, 너희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와 동생은 엄마를 바라보며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고, 저는 동생에게 그런 이유였으면 진작 말하지, 오지 말라하지 그랬냐며 웃어넘기면서도 차마 그만 오라는 말을 하지 못한 동생의 어린 마음이, 착한 마음이 이해되어 가슴 한 켠이 뭉클했습니다.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 엄마는 한 번도 저를 데리러 온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늘 집안을 쓸고 닦고, 시장을 가고, 모든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셨으며, 언제나 종종 걸음으로 어린 제가 보기에도 바빠 보였습니다. 가끔 외할머니께서 오셔서 돌봐 주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한 살, 두 살 터울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을 씻기고 먹이고 돌보기에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하거나 떼를 쓰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세세하게 신경 쓰지 못해 제가 받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잘 기억하고 봐두었다가 비슷하게라도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 기억은 없지만 책임감이 꽤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은 못 했지만 제 어린 마음에 그것이 부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에게 조금은, 아니면 은근히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언니라고, 겨우 한두 살 어린 동생들에게 제가 바라던 것을 해주고 나면 무척이나 뿌듯해 했던 기억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상을 뒤엎은 엄마와 제 여동생의 대답이 문득 추억으로 떠올라 저는 잠시 ‘대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제가 엄마에게 용기 내어 한 마디 말이라도 해 보았더라면, 투정이라도 부렸더라면, 동생과 서로 솔직하게 대화를 했더라면, 엄마와 동생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의 선심을 동생이 잘 받아들여 주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진 작에 한번 말해 보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점심을 쫄쫄 굶어가며 유치원 앞에서 동생을 기다리는 오랜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겨 가지 않으면 비를 쫄딱 맞는 일 따위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저와 동생도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나 외할머니께서 데리러 오는 호사를 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사실 알고 보면 사람 간, 관계 지음의 근본은 대화일 것입니다. 그것으로 막힌 것을 트이게 하고 가려진 것이 걷히게 되어 서로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고, 믿어 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때로는 아프지만 따끔한 충고의 말들, 그들과의 대화가 저를 외롭지 않게 해주고, 두렵지 않게 해주며,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알아주고, 좋아해 주고, 서로의 모습, 생각, 가치관 등이 다를지라도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우리는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화의 상실에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아니면 침묵을 빌미로 서로 말하지 않거나 하게 되면 그 관계는 언젠가는 깨질 것이며, 마음을 열고 대화하지 못한 것을, 진 작에 한 번쯤은 진심을 터놓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솔직한 대화를 통해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 대화의 진정성일 겁니다. 어이없는 희생이나 진심을 가린 채 만들어 낸, 겉으로만 보기 좋은 대화는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를 피곤하게 만들고 그 관계를 겉돌게만 할 뿐입니다.
이번 주 사부님의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으면서 사부님께서도 언제나 자신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해 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물어보고,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한 기록의 산물임이 느껴집니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앞두고 지난 연구원 지원 시에 제출했던 20페이지의 개인사를 50페이지의 개인사로 다시 쓰는 작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시간, 나와 진정으로 대화하는 시간이 될 듯합니다. 나의 사람들, 그들과의 솔직한 대화도 함께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승리자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화할 수 있는 용기는 사람을 얻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합니다. 나와 대화하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고, 진정성을 가지고 솔직히 대화하면 시간은 좀 걸려도 결국에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돈을 넘치도록 벌어도, 크나 큰 성공을 해도 그저 삭막하고 외로운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면 그 삶은 풍요로워지고 성공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솔직하지 못했고, 배려라는 허울 좋은 미명으로 마음을 숨겼던, 꼭 해야만 했던 대화를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프고 어리석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진작 말할 걸‘하는 후회를 남기는 망설임, 침묵 따위는 버리겠습니다. 용기 내겠습니다. 정성을 쏟아 나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아야겠습니다. 나와의 대화를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마음을 열어 진정으로 만나겠습니다. 솔직한 대화로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역시 삶의 최고의 덕목은 지혜가 아닌가 싶네. 솔직한 토로와 마음이 담긴 인내 사이의 선택.... 결론은 진정성이겠지. 진정성이 담긴 행동이라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이라면 잘 익은 와인처럼 그 향기를 서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혜향 홧팅^^.
'네가 좋아' 느~~무 노골적이시다 생각해서 잠시.. 부끄러웠는데..
참.. 승질을 부려서 좋다 하시니..
허참..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거이 참.. 드릴 말씀도 별로 읍고..
기래서 더욱.. ....불?나서 하고 싶은 말! 정말 읍써여!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여!! 좋다 말았어여!!!
우당 탕탕탕.... (? 집어던지는 소리)
쨍그랑 쨍쨍.....(? 깨지는 소리)
끼이익...끽끽..끼끼.... (상상에???...힌트 - 도망가셔도 결국엔---ㅇㅎㅎㅎㅎ)
씩씩.. 쌕쌕쌕...(ㅅㅈ 참지 몬하는 소리!!!)
(이거이는 가만 있다가 말썽 피우는 승질남녀의 전형적인 행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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