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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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삶의 고단함에 대한 푸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내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세희야,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해라"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친구의 짧은 격려가 고마워,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거리며 몇번이고 메시지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행복하다'는 품사상 형용사이다.
형용사가 무엇인가?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과 상태 또는 존재를 나타내는 품사로 '능동성'보다는 '수동성'을 품고 있는 서술어이다.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에 대해 '받아들여지는 개인의 감정표현'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를 할 때 주로 쓰인다
즉 상황은 주어졌고, 거기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형용사에 '~해라'를 갖다 붙이면 영 어색해지는 이유도 그것이다
예를 들어, '잘생겨라', '예뻐라' 라는 말을 들으면 이질적인 느낌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것은 '잘생겨져라', '예뻐져라'와 의미가 사뭇 다르다.
'~지다'는 청자가 어떠한 상태가 되길 바라는 화자의 염원이 담겨 있는 표현이고
'~해라'는 청자가 어떠한 액션을 취해 그러한 상태가 되라는 화자의 적극적인 의사표현이다.
그래서 형용사에 '~해라'를 붙이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인 듯 느껴지며, 마치 마법사의 주문같다.
동화 속의 요정이 나타나 밝은 빛을 온 몸으로 내뿜으며 가볍게 날아올라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며 하는 말처럼 말이다.
어느날 친구에게 받은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고 나는 '행복하다'가 형용사가 아닌 동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움직이고 내가 변화해서 얻을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상태라는 것이 가슴에 들어왔다.
얼마전 나는 내 방의 화장대를 치우고 책상을 들여놓았다.
아침과 저녁 몇 십분 밖에 같이 하지 못하는 화장대인데 크기가 커서, 방이 비좁아 보이고 애물단지 처럼 느껴졌다
침대와 화장대 옷장, 책꽂이로 채운 내 방은 왠지 내게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방 안에 있는 것을 싫어해서 읽을거리와 노트북을 들고 주변의 조용한 카페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공간에 오랫동안 머물며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써야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그래서 애물단지였던 화장대를 과감하게 치우고 좌식책상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스피커를 하나 사고 유무선 공유기를 놓아 내 방에서도 인터넷이 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어느 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조명을 켜고 낮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녹차를 홀짝거리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순간 행복감이 온 몸으로 흐른다. 갑자기 내 방이 이 세상 어느 공간보다 사랑스럽고 편하게 느껴진다.
수년간 나그네의 거쳐가는 공간과 같던 내 방이, 불과 하루의 반나절도 안되는 몇시간만의 노력으로 가장 아름다운 나의 성소가 되었다.
행복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만들어지는구나.. 라는 허탈감이 들면서, 그동안 불평만 했던 내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다
조금만 더 일찍 움직였다면, 나는 수개월 전, 아니 수년 전부터 행복한 나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
아무 생각 없이 소비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 중 단 몇 시간만 투자했더라면,
나는 쇼파에서 뒹굴며 보냈던 수많은 시간을 금빛의 시간으로 바꾸는 연금술사가 될 수 있었으리라
행복을 만드는 데에는 긴 세월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큰 삶의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단지 하루의 긴 여정 중 한 발자국 아니 반 발자국 정도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작은 변화를 통해 오늘의 일상을 어제의 일상과 달리 만들어갈 수 있다면, 나는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일상의 한 발자국을 바꾸려는 데에서 시작하며,
내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5분을 더 자기 위해 침대 위에서 늑장을 부리다가 부랴부랴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을 준비하는 때가 많다.
행복이란 잠속에 스며들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5분을 맑은 공기와 상쾌한 음악, 그리고 늘어지는 듯한 기지개로 채우는 5분으로 만드는 데 있다.
침대 맡의 알람소리마저 놓쳐 피곤함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아니라 내 속의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나의 하루를 기분좋음으로 시작하는 데에 있다.
로또가 터지듯이, 요술램프의 지니가 나타나서 선물해 주듯이
행복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가?
행복이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짧은 깨달음에 오늘은 어제와 다른 특별한 날이 되고, 평범한 일상은 즐거운 축제가 될 것이다.
그대여,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해라! 온 열정을 다해 행복해라!
일단 저 스스로도 글쓰는게 조금 더 편해졌어요
쓰고 싶은 것들도 많이 생기구요. 항상 노트를 침대옆에 놓구 잡니다^^
사실 이 글도.. 간밤에 행복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하믄서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노트에 이런저런 생각을 휘날려 적은 후 회사에서 정리해서 쓴거에요
서로에 대한 믿음.. .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제 내뿜어 내는 이들에게는 정신적인 뿌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흔들려도, 내가 잠시 딴 길로 가도 나를 지탱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채찍질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이제 막 글옹알이를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큰 힘이자 지지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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