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숙인
  • 조회 수 3966
  • 댓글 수 15
  • 추천 수 0
2009년 7월 20일 10시 22분 등록

 언젠가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삶의 고단함에 대한 푸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내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세희야,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해라"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친구의 짧은 격려가 고마워,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거리며 몇번이고 메시지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행복하다'는 품사상 형용사이다.
형용사가 무엇인가?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과 상태 또는 존재를 나타내는 품사로 '능동성'보다는 '수동성'을 품고 있는 서술어이다.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에 대해 '받아들여지는 개인의 감정표현'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를 할 때 주로 쓰인다
즉 상황은 주어졌고, 거기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형용사에 '~해라'를 갖다 붙이면 영 어색해지는 이유도 그것이다
예를 들어, '잘생겨라', '예뻐라' 라는 말을 들으면 이질적인 느낌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것은 '잘생겨져라', '예뻐져라'와 의미가 사뭇 다르다.
 
'~지다'는 청자가 어떠한 상태가 되길 바라는 화자의 염원이 담겨 있는 표현이고
'~해라'는 청자가 어떠한 액션을 취해 그러한 상태가 되라는 화자의 적극적인 의사표현이다.

그래서 형용사에 '~해라'를 붙이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인 듯 느껴지며, 마치 마법사의 주문같다.
동화 속의 요정이 나타나 밝은 빛을 온 몸으로 내뿜으며 가볍게 날아올라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며 하는 말처럼 말이다.
 
어느날 친구에게 받은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고 나는 '행복하다'가 형용사가 아닌 동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움직이고 내가 변화해서 얻을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상태라는 것이 가슴에 들어왔다.

얼마전 나는 내 방의 화장대를 치우고 책상을 들여놓았다.
아침과 저녁 몇 십분 밖에 같이 하지 못하는 화장대인데 크기가 커서, 방이 비좁아 보이고 애물단지 처럼 느껴졌다
침대와 화장대 옷장, 책꽂이로 채운 내 방은 왠지 내게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방 안에 있는 것을 싫어해서 읽을거리와 노트북을 들고 주변의 조용한 카페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공간에 오랫동안 머물며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써야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그래서 애물단지였던 화장대를 과감하게 치우고 좌식책상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스피커를 하나 사고 유무선 공유기를 놓아  내 방에서도 인터넷이 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어느 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조명을 켜고 낮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녹차를 홀짝거리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순간 행복감이 온 몸으로 흐른다. 갑자기 내 방이 이 세상 어느 공간보다 사랑스럽고 편하게 느껴진다. 
 
123.jpg

수년간 나그네의 거쳐가는 공간과 같던 내 방이, 불과 하루의 반나절도 안되는 몇시간만의 노력으로 가장 아름다운 나의 성소가 되었다.
행복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만들어지는구나.. 라는 허탈감이 들면서, 그동안 불평만 했던 내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다

조금만 더 일찍 움직였다면, 나는 수개월 전, 아니 수년 전부터 행복한 나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
아무 생각 없이 소비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 중 단 몇 시간만 투자했더라면,
나는 쇼파에서 뒹굴며 보냈던 수많은 시간을 금빛의 시간으로 바꾸는 연금술사가 될 수 있었으리라

행복을 만드는 데에는 긴 세월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큰 삶의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단지 하루의 긴 여정 중 한 발자국 아니 반 발자국 정도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작은 변화를 통해 오늘의 일상을 어제의 일상과 달리 만들어갈 수 있다면, 나는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일상의 한 발자국을 바꾸려는 데에서 시작하며,
내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5분을 더 자기 위해 침대 위에서 늑장을 부리다가 부랴부랴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을 준비하는 때가 많다.
행복이란 잠속에 스며들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5분을 맑은 공기와 상쾌한 음악, 그리고 늘어지는 듯한 기지개로 채우는 5분으로 만드는 데 있다.
침대 맡의 알람소리마저 놓쳐 피곤함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아니라 내 속의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나의 하루를 기분좋음으로 시작하는 데에 있다.

로또가 터지듯이, 요술램프의 지니가 나타나서 선물해 주듯이
행복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가?

행복이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짧은 깨달음에 오늘은 어제와 다른 특별한 날이 되고, 평범한 일상은 즐거운 축제가 될 것이다.

그대여,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해라! 온 열정을 다해 행복해라!


 

IP *.246.196.63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10:23:57 *.246.196.63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는 스승님의 글을 보고, 문득 최근에 제가 찾은 행복이 떠올라 행복에 대한 이야기로 칼럼을 써보았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10:52:01 *.96.12.130
매번 머리로만 생각하던 일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와 자극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21:27:33 *.145.58.162
저야말로 선배님께서 종종 보내시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를 보면서 하루를 여는 힘을 얻는걸요 ^^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그것을 나누는 재미가 이런건가봐요
저두 감사합니다 선배님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11:43:41 *.45.129.185
세희, 좋은 친구 두었네. 아 질투나...ㅋㅋㅋ

네가 힘써 추구하는 행복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너의 성취를 축복하고 또 너를 편안하고 휴식하게 해 주는 중요 요소일꺼야.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하게 되는 것이 또 하나의 좋은 휴식이자 보상이 되겠지? 너를 많이 행복하게 해서 많은 힘을 얻고 또 더 많은 성취를 얻어 나가기를 기원한다. 그것이 너의 성공 방정식일꺼야.

숙인 홧팅^^!!!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21:36:23 *.145.58.162
제 성공방정식이라... 멋진 말인데요 ^^

근데 저 사실 성취한 거 별루 없는데 ㅋ (반전?)
앞으로 계속 성취해나가야죠.~ 오빠두 화이팅!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9.07.20 12:20:15 *.251.224.83
오기의 글이 점점 편안하게 자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당근 읽기좋고, 읽고싶고, 진솔한 글이 되고 있다.
이건  내 글을 읽어줄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어려운 일일 터이니,
그런 상태가 되기 까지 일등공신은 누구일까?^^
아니, 일등공신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각자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 걸까?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21:42:35 *.145.58.162
그렇죠 선배님? 저두 그걸 요새 느껴요
일단 저 스스로도 글쓰는게 조금 더 편해졌어요
쓰고 싶은 것들도 많이 생기구요. 항상 노트를 침대옆에 놓구 잡니다^^
사실 이 글도.. 간밤에 행복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하믄서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노트에 이런저런 생각을 휘날려 적은 후 회사에서 정리해서 쓴거에요
서로에 대한 믿음.. .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제 내뿜어 내는 이들에게는 정신적인 뿌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흔들려도, 내가 잠시 딴 길로 가도 나를 지탱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채찍질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이제 막 글옹알이를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큰 힘이자 지지대이죠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13:51:01 *.204.150.176
어휴...우리 쎄이...참...
언냐도 쎄이의 글에서 차분한 행복을 얻고 가...
그래 쎄이야. 우리 함께 있는 힘껏 행복해지자...^^**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21:43:10 *.145.58.162
응 언니
우리 함께 행복하져요 ^^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9.07.20 21:56:18 *.148.95.177
좋은 누나 만큼이나 좋은 친구네요.
힘껏 행복하세요.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22:33:16 *.145.58.162
ㅎㅎㅎ요새 동생한테 세뇌교육 시키고 있는 중이죠
승오선배두 행복하세요! 저 책 샀어요! (최고의 댓글이죠? ㅋㅋ)
프로필 이미지
2009.07.21 06:37:33 *.230.92.240
숙인~^^

화면에 보이는 거이로는.. 새로 장만한 책상의 칼라가 화이트 워시? 아니믄.. 메이플 칼라?
글구.. 저 팜플렛의 작가는 누구?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태어났네..
쎄이가 앉아있는 모습을 라인으로 그리면 딱! 이겠다...^^

안그래도.. 칼파 언니야 헌테..
나의 공간 질서가 무너져 한계에 이르렀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우리 쎄이의 글을 읽고.. 얼릉 질서를 회복해야 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오늘 당장 행동 개시!

계속되는 쎄이의 행복 만들기 기대~기대~^^

프로필 이미지
2009.07.21 11:18:52 *.246.196.63
책상 칼라는 화이트에요 ~ 산뜻한 색을 좋아하거든요
그림은 오미경님의 '연기나는 여자' 시리즈에요. ^^
연기나는 여자 - 오미경.jpg
프로필 이미지
혁산
2009.07.21 20:20:21 *.216.130.188
화이트 책상에
실버의 조그만한 노트북에
하얀 찻잔
하얀 스피커
멋진 미술 팜를렛
아담한 거울
그리고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오른쪽에서 비춰지는 등
행복은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느끼나봐!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7.21 21:14:24 *.131.127.100

똥그란 눈이 생각나는 쎄이!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해라!!!'emoticon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