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 조회 수 3845
- 댓글 수 11
- 추천 수 0
비가 잦은 요즘, 새벽에 비오는 소리에 잠이 깨는 수가 많다. 며칠 전 새벽에는 그야말로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강우량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날 오후에 산책을 나갔다. 나의 산책로는 집 근처의 수원화성, 수원 시내를 감싸고 있는 성벽과 잘 생긴 소나무로 가득 찬 숲이 좋아서 거의 매일 들리곤 한다.
그 날은 익숙한 산책길이 흠뻑 젖어 평소와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비에 젖어 더욱 울창해 보이는 숲과 검은 나무둥치들이 밀림을 연상시켰다. 화성열차가 다니는 넓은 도로에 빗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경사진 도로를 달려가는 빗물이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냈다. 산수화에서 산이 겹쳐 선 모습 같기도 하고, 지도의 등고선 같기도 한 포물선은 아름다웠다.
큰 길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시냇물이 지천이었다. 조촐한 계곡마다 하얀 시냇물이 포말을 일으키며 힘차게 흐르고 있었고, 돌담 틈에서도 샘물이 솟듯 물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땅 속에 쥐구멍처럼 뚫린 곳에서는 동그랗게 수막을 형성하며 물이 흘러넘치고, 즐겨 다니던 계단 위로는 다단계^^ 폭포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시냇물 구경을 하며 걸었다. 저마다 모양도 달랐지만 특히 물소리가 매혹적이었다. 물의 양과 장애물, 그리고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소리가 모두 달랐다. 상큼하고 영롱한 물소리를 들으며 한참동안 서 있었지만 아무리 들어도 도저히 글로 옮겨 적을 수가 없었다. 물소리는 들리는 순간 사라졌다. 아주 로맨틱한 순간에 잠에서 깨어난 꿈같았다.
길모퉁이를 도니 신천지가 열렸다. 잠자리. 어디서 왔는지 수십 마리의 잠자리가 비행쇼를 벌이고 있었다. 높은 곳에는 바람이 세게 부는지 커다란 나무 꼭대기가 크게 일렁이자 먹구름이 빠르게 흩어졌다.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가다 말고 바람에 떠밀려 갔다. 잉잉, 쏴아, 후드득...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났다. 순간 나는 음악을 들은 것 같았다. 아니 음악을 느꼈다. 감각이 발달한 청각장애자가 음악을 느끼는 기분이 딱 이럴 것 같았다.
아, 인생은 아름다워. 마음이 무언가로 가득 차 오르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넓은 집, 해외여행, 고급와인이 없어도 지금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것들이 다 충족된다 해도 지금 누리고 있는 충만감이 없이는 말짱 도루묵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 순간을 음미하며 한참동안 그 자리에 못박혀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살아있으라고 말한다. 살아볼수록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좀 더 일을 열심히 할 걸, 그래서 돈을 좀 더 모을 걸’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좀 더 애틋하게 아껴주고 사랑하지 못한 것, 좀 더 인생을 즐기며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절절한 회한을 남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분명해지지 않는가.
짧은 시간에 전체를 꿰뚫는 힘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보통 사람도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서운하게 하면, 나는 누군가를 소홀하게 대한 적이 없었는지 나의 경험을 톺아보면 된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예전 일을 떠올려 보면 된다. 5년 전, 10년 전의 고민 중에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어떤 어려움도 끝까지 지속되는 것은 없다. 지금 겪는 고난은 언젠가 내가 허비한 시간의 결과이기도 하다. 나의 어제가 오늘을 만들었듯이, 나의 오늘이 내일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충분하다.
장애물은 위기가 아니라 이정표라는 말도 있다. 이 문제가 내게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깨달으면 스트레스에 쩔어 있지 않아도 된다. 실패에서 배우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으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실패한 경험을 오랫동안 곱씹지 않게 된다. 상대방이 꼭 내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상 일이 꼭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있는 대로 바라보라. 그러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으면 된다. 매 순간을 음미하고 향유하고 구가하면 된다. 삶을 가졌으면 다 가진 것이다. 그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라.
인생은 이대로도 굉장해요, 당신은 재미가 없나 보군요. 인생은 슬픈 것입니다. 세속성-상실하고 상실하고 상실하는 것으로 인한 슬픔의 원인-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 ‘신화의 힘’에서 --

안기래도 선배님 글.. 언제 올라오려나???.. 기다렸어여..
왜냐구여? 댓글 달려구여..ㅋㅋㅋㅋㅋ
썬배님이 쑥스럽다 하시니.. 제가 더 쑥스러워지려고 해....여....ㄲㄲㄲ
거그다 망설이기까지 하시다니여.. 제가 더 망설여져여.. ㅋㅋㅋ
아유~, 부끄러워하시기는여..^^
용기내어? 올리신 글이라 그런지.. 이케 말씀드려도 괘한을지 모르겠으나..
글이.. 부드러워여.. 고개를 살짝 숙이고 걷다가..
하늘 한 번 바라보고.. 주위 한번 둘러보고.. 멀리 보고.. 가까이 보고..
무쟈게 여유있고..편안한 느낌이랄까여..^^
저도 걷는거이 무쟈게 좋아하는데.. 몬 걸은지가 하도..오래 돼야서 조께 승질날라 그래여..ㅎㅎㅎ
살면서.. 긍정의 힘.. 이거이가 지금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아주고..
또.. 변화시키는 훌륭한 힘이 되어주는 거이도 같아여..
근데여...선배님... 다단계 폭포란? 바로? ㅋㅋㅋ ^O^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092 | 마흔을 넘어 [10] | 書元 이승호 | 2009.07.19 | 3639 |
4091 | [16] <넌 누구니? 2탄> [13] | 수희향 | 2009.07.20 | 3412 |
4090 | 마흔 세살의 미래의 나 [18] | 혁산 | 2009.07.20 | 3514 |
4089 | 작은 지혜, 작은 혁명 [14] | 백산 | 2009.07.20 | 3859 |
4088 | [15] 두 눈에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얼까? [9] | 정야 | 2009.07.20 | 3293 |
4087 | 대화 - 진작 말할 걸... [12] | 혜향 | 2009.07.20 | 4012 |
4086 |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해라 ![]() | 숙인 | 2009.07.20 | 4575 |
4085 | 나, 연구원 하면서 이렇게 바뀌었다 [7] | 예원 | 2009.07.20 | 3162 |
4084 | 나의 초상 [8] | 효인 | 2009.07.20 | 3292 |
4083 | 칼럼 15 - 최고의 나를 꺼내라 [20] | 범해 좌경숙 | 2009.07.20 | 4314 |
4082 | 이상한 반 아이들 - 할 수 있을까? 2 [4] | 현웅 | 2009.07.21 | 3351 |
» | 인생은 이대로도 굉장하다 [11] | 한명석 | 2009.07.22 | 3845 |
4080 | 문(門)소리 [7] | 백산 | 2009.07.22 | 4353 |
4079 | 알고보면 누구나 다 소심하다 [3] | 양재우 | 2009.07.23 | 5252 |
4078 | 미스토리로 두 마리 토끼 잡기 [6] | 한명석 | 2009.07.30 | 3737 |
4077 | 이상한 반 아이들 - 질긴 놈 [1] | 현웅 | 2009.07.31 | 3186 |
4076 | 발칸으로... [4] | 백산 | 2009.08.01 | 3471 |
4075 | 소통의 엔트로피 -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숙인 | 2009.08.02 | 3426 |
4074 | 자연으로... [1] | 희산 | 2009.08.02 | 3307 |
4073 | 자기조직, 엔트로피, 네겐트로피 그리고 산일구조 [2] [1] | 백산 | 2009.08.02 | 78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