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춘희
  • 조회 수 3409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9년 8월 28일 12시 37분 등록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 해외연수 여행기>

 

배추벌레, 나비를 꿈꾸다.

 

프롤로그

여행은 내가 둘이 되는 시간이다. 익숙한 국내에서의 여행도 그럴진대 물 설과 낯선 이국으로의 여행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하다를 뛰어 넘어 나 자신 조차도 객관적인 나를 옆에 데리고 다니게 된다. 나와 다르게 느끼는, 또 다른 나를 보게 된다. 나도 모르는 나다  그게 가장 원초적인 나일까?

여행은 아무리 큰 무리를 지어 움직여도 혼자일 수 있다. 사실은 그게 혼자가 아니다. 내 옆에는 항상 또 다른 내가 동행하고 있기에. 나와의 대화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부모와의 대화 시간만큼이나, 아니 더 부족한 것이 나와의 대화시간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여행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나는 언제나 한결 같은 사람이고자 노력했다. 어른들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여자는 조신해야 하며 말처럼 뛰어다니면 안되고 목젖이 드러나게 웃어도 안되며..등등 제도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를 보게 된다. 매우 낯설지만, 스스로 깜짝 깜짝 놀라지만 몸은 너무나 친숙하다. 이게 내가 아닌데 하면서도 마냥 즐거워한다.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전용성 소질 아닐까?

 

나는 작년에 연구원 연수 여행에 따라 갔었다. 그 때의 여행에서 발견한 나는, 솔선수범하여 챙겨 먹이고 사람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챙기는 나였다. 나에게는 힘든 일이 전혀 아니었다. 누가 뭘 원하는지, 이 타임에는 뭘 해주면 좋을지 그냥 느껴졌다고 하는 게 옳겠다.

이번 여행에서도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나는 패션에, 디자인과 패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선이 굵고 남성다운 기질이 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눈과 카메라는 길거리의 여자들을 쫓고 장식과 액세서리에 쏠렸다. 동생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감각이 나에게도 있다니

이때까지의 나는 패션잡지는 한 장도 넘겨보지 않았으며 복장은 늘 스탠다드한 기본 정장이었고 흐트러짐 없이 딱 떨어지는 스타일이었다. 그게 만들어진 나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나의 발견이다. 이런 것이 여행이 준 예기치 못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행은 자연스럽게 나의 타고난 소질, 성향을 가르쳐 주니 얼마나 좋은가.

 

연구원인 만큼 나에게는 이번 여행에 목적이 있었다. ‘변화하고자 하나 가로막았던 가슴 아픈 일들, 쓰고자 했으나 쓸 수 없었던 이별에 대해 털어버리고 싶었다. 연구원 과제와 수업을 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니 날려버리는 의식만 남은 상태였는지라 종지부를 찍고 타국의 바람에 날리고 오고 싶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족을 만나고 나의 안식처로 돌아간다는 기쁨만큼이나 가벼웠다. 목적을 이루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만큼 아프고 힘들었다. 그런 만큼 이번 여행의 여행기는 쉽게 쓸 수가 없었다. 가슴에 담아 곰 삭이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나의 인생에 큰 의미가 되는 아주 큰일을 해냈음이 분명하다. 사람은 왜 정신적으로 큰 일을 해내거나 당하면 침묵하다 나중에 풀어내지 않던가.

 

지금 생각하면 꿈결 같은 8 9. 호기심을 자극했던 풍경과 사람들, 더 떨어질 곳이 없을 만큼 곤두박질쳤던 나의 마음,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열렬했던 스승님과 동기들과의 애정을 고스란히 엮어 추억하고자 한다.

 

8 6첫째날, 떠나는 날

 

공항버스에서

공항으로 가는 강변북로를 달린다. 한강의 잔잔한 물결이 시원하다. 날씨는 흐림. 어제의 그 쨍쨍함은 오늘의 흐림을 불러오기 위한 준비였다 보다.

아침시간이라서 한강변의 공원은 한가해 뵌다. ! 드디어 간다. 진짜! 진짜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여행의 준비는 일주일 전부터 기분을 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인데 이렇게 공항 가는 버스 안에서 만끽한다.

이번 여행은 준비를 하지 못했다. ‘출발 전날(85)까지 개인사 50페이지를 제출할 것!’ 물론 미리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이 과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나는 기록적이게도 8 5 23시 52 스승님의 댁으로 달려가 대문에 과제를 밀어 넣었다. 그렇게 임박하게 제출하였으니 그 내용은 알만하지 않겠는가. 내용이야 어떠하든 오직 시간 내 제출하였다는 기쁨 하나만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돌아와 새벽까지 여행가방을 꾸렸다.

 

개인사 50페이지. 연구원 응시 때 제출한 20페이지는 버리고 다시 써내려 가고 싶었다. 자신의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들었지만 이번 개인사 쓰기를 계기로 지나간 과거에 대한 화난, 아팠던, 기억을 가슴속 깊이 꼭꼭 숨겨져 있는 것까지 일깨워, 끄집어 내어 털어버리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글은 쓰여지지 않고 생각만 많았다. 그런 저런 단편들 속에서 떠오르는 그 무엇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여 책장을 뒤지고….모아 둔 일기를 열어보고울고또 울고….

 

고향의 가을을 잘 표현한 옛 일기를 옮겨 적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 울었다. 그것은 가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힘들다고 몸부림치는 나의 괴로움과 외로움이었다. 많이 울었다. 펑펑 울었다. 그 새벽에 펑펑 울며 글 쓰는 이, 몇이나 될까. 가슴속 응어리는 눈물로 승화되나 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말로 그냥 묻어 두려 하면 큰 코 다친다. 적어도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또 다시 변화의 길목에서 앞을 가로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과거라 하니 거창한 사건으로 여겨지겠지만 아주 사소한 마음의 짐일지라도 그것이 나도 모르게 나를 지배한다면)를 잘 뛰어 넘는다는 것, 제대로 된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아주 큰 고통이 따른다. 나는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는 이 근원적인 고통에 몇 일을, 몇 주를 가슴을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나는 큰 변화를 꿈꾸지 않았다. 한 발자국을 더 내딛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한 발을 더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 이유를 알았을 때 나는 절규했다. 가슴한쪽을 드러내야 했다. 이것이 진실한 변화의 과정이라는 걸 알았다. 변화가 이렇게 힘든것이라면 앞으로 사람들에게 변화는 생각하지 말라고 말릴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맞다. 개인사를 쓴다는 것은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알게 되고 인식하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되고 이해 못했던 가족을 알게 되고 그것을 의미를 알게 되고….알게 된다. 그러하기에 진통 속에서 바른 인식을 잡고 묻어 둘 수 있게 된다.

과거는 생매장 하면 반드시 살아난다. 아주 자주, 나도 모르게 살아나 나를 공격한다.

 

크로아티아, 발칸반도에 이러한 나의 지나간 시간을 날려보내고 싶었기에 힘들고 기운 빠지는 일이었지만 나의 과거와 싸웠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다 보면 그 곳쯤에 가면 지쳐 떨어지겠지 싶었다. 며칠 밤을 싸운 나의 과거와 함께 나는 공항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육지와 영종도을 잇는 대교를 건너고 있다. 바다의 풍경이 보인다. 뻘과 배, 그리고 섬. 펼쳐졌다 접혀졌다 하며 나에게 보여주고 뒤로 물러난다. 공항이 가까워지나 보다. 나는 또 눈물이 난다. 그 새벽 그 눈물이다. 아니다. 나도 모르게 의지하려고 했던 스승님을 향한 눈물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에는 그쳐야 할 터인데. 민망하게 스승님을 만나면 눈물이 더 쏟아질 것 같다. 가지 말까? 늦게 나타날까? 손수건은 꺼내기 쉬운 곳에 넣어 두었던가?

 

공항에서

약속 시간. 오전 10. 10분이 지났다. 나의 걸음은 느리작 느리작 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내 눈엔 스승님만 공항 건물을 바치고 있는 기둥만큼이나 크게 보였다. 머리를 단정히 정리하신 모습이 한층 젊어 보였다. 다행히 눈물은 나지 않았고 반가웠다. 지난 수업이 후 휘몰아친 마음의 소용돌이에서 스승님의 글에 의지했던 만큼 인사와 악수만 할 수 없어서 허깅으로 마음을 달랬다.  

 

나는 스승님의 크고 깊은 내공 때문인지, 과묵하시기 때문이지, 원래 어른을 어려워하는 자세 때문인지 스승님이 너무나 어렵다. 이때에도 마음은, 평상시 편한 사람들에게 하는 스타일로 볼 때는  선생님, 넘 보고 싶었어요~” 하며 몇 배 귀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도 남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때까지 스승님과 둘이 찍은 사진도 없다. 항상 스승님의 일정 반경 밖에서 서성였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가 선생님께 편하게 다가가기 이기도 했다. 

 

우리의 일행은 26명이다. 목적지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래브이다. 인천공항에서 프랑크 루프트를 경유하여 갈 예정이다. 12시30 아시아나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프랑크푸르크까지 9시간 비행.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몇 번의 화장실을 다녀왔다. 시계 바늘을 7시간 뒤로 돌렸다. 여행을 할 때는 숫자가 1에서 12까지 다 적히고 60분의 칸이 쳐진, 초침 바늘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계가 좋은 듯하다. 정확하게 7시간을 뒤로 돌리니 비행예상시간 화면 시간과 맞았다. 여행이 갖은 사람들은 바로 생각이 되겠지만 나는 7시간이 뒤로 가는 시계바늘을 보며 그쪽 나라 사람들은 그럼 지금 뭘 하고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해 봤다. 유럽은 우리나라 보다 7시간 늦게 시간이 간다면 아직 날이 밝지 않았고 새벽이라는 걸 머리를 한참 굴려서야 알았다.

 

비행기가 상공에 날기 익숙해 질 무렵 우리도 비행기안이 익숙해졌다. 자리를 옮겨가며 두런두런 모여 여행의 기대에 대해 얘기했다. 모두들 그제서야 실감이 나는 듯했다. 몇 번의 번개 모임으로 여행기 출간 기획에 대한 얘기를 하다 머리가 아픈지 이내 관심 주제가 여행 중 수업에 테마 사랑이야기로 옮겨갔다. 모두 가슴속에 어떤 사랑을 품고 있을까? 누구부터 하면 분위기가 살까? 가장 스릴 있는 사랑은 누가 있을까? 스승님의 한 시간을 넘기면 1분에 와인 한 병, 10분을 넘기면 자력귀환의 규칙은 너무 가혹해. 그걸 슬기롭게 넘기는 방법은 뭘까?

 

사랑이야기. 어감이 살지 않는다. Love Story! 영화도 있었기 때문일까? 그래. 러브 스토리라 하니 느낌이 팍팍 온다. 러브스토리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고 사람들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있을까? 이것도 나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남의 사랑이야기. 더 스릴이라면 카더라식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라면 더욱더.

 

모두들 먼저 발표하진 않겠다는 분위기다. 그렇다. 사랑. 남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지만 내 이야기를 하려면 침묵하게 된다. 여행에서의 오프 수업 과제라서 보다 개인사를 쓰면서 사랑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르고 싶었다. 그러나 쓰여지지 않았다. 남의 얘기하듯 즐겁게 얘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 당시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정리하고 또 정리했던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정리가 아니었나 보다. 생각하다 지쳐 마음 한 켠에 그냥 두었기 때문 일게다.

 

나보고 먼저 발표하라는 분위기다. 내 얘기가 재미있을 거라나.ㅋㅋ 갑자기 발표의 과제가 걱정되었다. 무엇을 발표할지, 어떻게 발표 할지 정리조차 못하고 살아오면서 찾아온 사랑들을 꺼내 펼쳐 놓았다가 급히 주머니에 꾸겨 넣고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

 

자리로 돌아와 프린트해온 과제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개인사의 중 꽃이 될 나의 사랑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 길이 관계 없다. 발표 룰은 지켜라.

- 형식도 관계없다. 그대들이 가장 멋진 방식으로 이야기 해라.

- 그러나 시 한 편은 반드시 지어 낭독하도록 해라.

- 분장해라. 그대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라.

사랑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사랑으로 할 것인가!

 

나의 첫사랑. 나에겐 이별이 지독히 아팠던 사랑이었는데……무슨 말부터 할까?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쑥스러운 설레임이 큰 풋사랑.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은 아직도 따뜻한데

사랑내 이야기가 되면 심각해진다. 무엇으로 정할까? 눈을 감았다. 어떻게 풀어 나갈지,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라기 보다 저절로 눈이 감겨졌다. 

 

9시간 비행의 옆자리엔 1기 선배로 사진담당으로 스카우트되다시피 참가한 신재동씨가 앉았다. 재동씨는 울 그이와 성향이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난 편하다. 울 그이에 대해서도 얘기해 줬다.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재동씨의 새로 이사한 집과 정이 있는 이웃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마당에 향나무가 있는, 창문으로 그 나무가 보이는 집으로 이사했단다. 마당이 있는 집, 나무가 있고, 창문으로 그 나무가 보이는 집. 내가 꿈꾸는 집인데….

가 보고 싶다라고 저절로 발이 튀어 나와 가 초대를 받은 상태이다. 이사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아내의 둘째 출산을 알고 곰국을 끓여줬다는 옆집 아주머니. 내가 아는 그의 아내 선이씨와 재동씨 부부, 누구든 이 부부를 보면은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저절로 들게하는 고운 사람들이다.

 

누구와 여행하느냐가 중요하다 했던가. 재동씨가 옆에 있어서, 같이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습게도 난 9시간 내내 얘기를 나누면서 내가 누나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려 물어보니, 아뿔싸, 오빠다! 한 살 많은. 급 자세를 가다듬으며 설명에 돌입했다. “제가요~ 나이가 두 개라 누나처럼 굴었나 봐요. 버릇이 되어서히히나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나이의 불편함이 이 비행기 안까지 따라 오다니.

 

재동씨와 얘기하느라 한잠 안 잤다는 말에 말 많은 내가 재동씨를 괴롭혔다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재동씨도 많은 말을 했다. 굳이 숫자로 나타내 본다면 6:5 정도로 내가 조금 더 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믿음이 가는 기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내 방송도 정확히 알아듣는 건 이것이 마지막이리라.

기내 손님 여러분, 앞으로  35분 후 도착예정, 날씨 맑음, 영상 29, 섭씨 84~ ”

와앗! 이제 35분 후면 도착이란다.

지난해 뉴질랜드까지 열 시간 탔을 때는 다리가 저려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거뜬하다. 적응이 된 건가?

야호! 여기가 말만 듣던 독일이란 말이지? 꿈에 그리던 유럽!

처음 와 보는 유럽여행이 잠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닷! 맘껏 즐기자. 벌써 세포가 살아났다. 엉덩이가 들석들석 했다. 마음은 벌써 작은 창문으로 빠져나가 비행기와 나란히 바람을 가누며 날아가는 듯했다. 들뜬 마음을 담아 이번 여행에 임하는 나의 자세를 적어 보았다.

1.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라

2.       오로시 누리게 하라

3.       육감을 깨어있게 하라

 


유럽이닷!


사진 010.jpg   
<
그림은 만국공통어, 딸들을 닮은 아이들>

여기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짐은 목적지 까지 바로 갈수 있어서 몸만 내렸다. 공항은 크지 않았고 다양한 외국인들이 많았으며 등치들은 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집의 꽃바람과 햇살 또래의 아이들이다. 공항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작은아이다. 아이들은 글씨보다 그림을 먼저 익힌다. 익히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하는 것 같다. 그림이야 말로 만국공통언어가 아닐까? 보아하니 우리딸 보다는 좀 못 그린다.ㅋ

 

자그레브행 비행기는 20 45분에 있었다. 3시간 45분을 우린 공항 안에서 보내야 했다. 티켓 박스가 한 시간 전에 열기 때문에 티켓을 받을 수 없어서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진 252.jpg
<
어렵게 양주를 사다>

집결시간과 장소를 공지 받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공항 안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정작 보딩패스가 없어 물건을 살 수 없었다. 긴 시간을 무엇이라도 먹으며 보내려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한국사람이 있으면 부탁해보기로 했다. 아니면 문화가 비슷한 일본사람이라도. 한참을 보던 끝에 한국 대학을 만났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날이라고 했다. 성우 오빠와 좌샘은 다가가 사정을 이야기 하고 양주 한병만 계산해 주기를 청했다. 파마머리에 미소가 없던 청년은 끝까지 거부 했으나 미소가 아름답던 청년은 고민 끝에 들어 주었다. 역시 인상 좋은 사람이 마음도 좋다. 난 그 청년에게 노인네처럼 복 받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우린 맛도 멜랑꼴랑한 벨리(Baileys)라는 양주를 나눠 마시며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그 양주는 커피 + 커피 카라멜 + 위스키 맛이 오묘하게 썩여 양주 같지 않은 술이었다. 화정품 뚜껑을 잔으로 하여 돌려가며 마셨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니 모두 책을 꺼냈다. 책 읽고 공부하는 변경연 가족다운 모습이었다.

 

이내 졸리기 시작했다. 목 넘김에서 살짝 느껴질 뿐 커피 같은 벨리 양주를 홀짝 홀짝 마셔서 인지 더 졸렸다. 사실 신체가 입력하고 있는 시간으로 본다면 자야 마땅한 시간이었다.

7시간 차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에 있던 우리는 오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7시간 더 긴 31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였다. 9시간을 날아갔음에도 프랑크푸르트의 시간은 오후 5였다. 한국시간으로 하면 저녁 7시경이니 공항에 자그레브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졸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신하품을 하며 대기실 의자에 앉자 말자 눈이 감겼다.

유럽여행에 익숙한 백산님은 지금 잠들면 정작 잠자야 할 시간에 잠 못 잔다고, 그러면 여행 내내 피곤하다고 졸리더라도 참아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 이런걸 두고 시차적응문제라고 하는 구나. 외국 갔다 온 사람들이 시차적응이 안 되어서 어쩌구 저쩌구 할 때 무슨 얘긴가 하며 부러워했었는데 이게 그거구나 싶어 피식 웃었다. 모두들 모여 까르르 웃으며 사진 찍기 놀이를 하며 잠을 쫓았다.

 

! 드이어 도착

프랑크푸르트에서 20 45에 크로아티아 행 비행기를 타고 22시10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하였다. 자브래브에서의 입국은 수월했다. 가이드 한숙님이 무슨 조치를 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국확인서도 쓰지 않고 여권과 항공표만 보여 주고 통과했다. 49인승 버스가 멋진 기사를 대동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은 한적했다. 그 한적함이 사람이 없고 주차장이 비어있음이 아니라 잘 자란 나무들이 가득한 공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그레브 약간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10시 45이다. 긴 하루였다.

이번 여행에 룸메이트는 면접여행에서 부뚜막으로 낙점되고 불확, 공감이라고 부르는 혜향이다. 우린 방을 배정받고 드디어 다리를 뻗어 잘 수 있음에 들떠 올라갔다. 사실 나는 혜향이와 며칠 밤을 함께 한다는 설레임이 더 컸다.

 

사진 267.jpg
<
크로아티아의 첫날 밤, 호텔 내부>

호텔은 오래되어 보였다.  체리색상의 나무 마감재가 세월에 절어 월넛 색상에 가까웠고 항아리 모양 전등이 정겨웠다. 아무런 무늬 없는 풀을 먹인듯한 하얀 침대 시트가 더욱 과거의 시간으로 보내진 듯했다.

 

이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영화에서 본 서양의 옛날 모습, 목 부분에까지 단정하게 단추가 채워지고 하얀 레이스의 카라가 깔끔함을 더하고 무채색의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은 양 침대에 걸 터 앉아 보았다.


뒤로 벌러덩 누우면 그냥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냥 자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룸메이트와의 첫날밤이다. 지저분한 모습을 보일 수야 없지. 억지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IP *.11.176.196

프로필 이미지
2009.08.28 12:51:52 *.249.57.210
여기서 끝이라니 지대로 시작했구나. 반갑다. 너다운 너의 모습 다시 보게 되어.
너에 대한 애정의 깊이 만큼이나 네게 하고 픈 말이 많지만
우리 좀 아껴두자.

네가 이 글을 마칠 수 있을 때까지도 좋고
너의 첫 책이 나오는 환희의 순간까지도 좋고.
네가 좋아하는 하얀 눈이 오는 날까지도 좋고.

그저 그때까지는 널 안아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춘희야. 이 언니는 그저 널 사랑한다.
배추벌레 네 모습도 사랑스럽다고... ^^**
프로필 이미지
춘희
2009.08.28 14:38:21 *.12.20.78
언냐, 언제나 예쁘다(사실이긴 하지만 ㅎㅎ), 사랑한다 말해줘서, 언제나 응원해줘서 고마워.(ㅠㅠ눈물 날만큼...)
이렇게라도 쓰면 될 걸 뭐가 그리 쓰기 힘들었는지.... 
나비가 될 나를 위해 여행기를 끝까지 쓰려고 해.  언니~ 따랑행~~~**
프로필 이미지
2009.08.28 23:25:25 *.145.58.162
와... 완전 감탄사만 나온거 있죠? 언제 이걸 다 정리하셨대!!
읽다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
감탄 제대로 하구 갑니당~ 담편두 완전 기대기대
프로필 이미지
춘희
2009.08.29 00:26:34 *.12.20.78
에구...그러네.ㅋㅋ  급하게  쓴게 티가 나는 구먼.^^ 
내용 차분히 수정하지 못했는데...문맥은 맞는지 어쩐지...걱정. 걱정...^^ 그러려니하고 대충 읽어주길...ㅋ
암튼 뒷심 발휘해서 마지막까지 써야 할터인데...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72 노마디즘 휴대폰의 변천사 [2] 書元 이승호 2009.08.30 3606
1171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여행기 - 자연을 중심으로 [1] 희산 2009.08.30 4763
1170 2009년 연구원 여정기 [5] [3] 書元 이승호 2009.08.29 3525
1169 [크로아티아 여행기] 배추벌레, 나비를 꿈꾸다.3 file [4] 춘희 2009.08.28 4803
1168 [크로아티아 여행기] 배추벌레, 나비를 꿈꾸다.2 file [1] 춘희 2009.08.28 8187
» [크로아티아 여행기] 배추벌레, 나비를 꿈꾸다.1 file [4] 춘희 2009.08.28 3409
1166 크로아티아 여행기 - 생활의 발견, 나의 발견 [8] 혜향 2009.08.28 3899
1165 칼럼 18 - 해외수업 - 1차 자료 (역사) [9] 범해 좌경숙 2009.08.28 3927
1164 Croatian Rhapsody (2) - 루블라냐 file [6] 숙인 2009.08.28 4935
1163 Croatian Rhapsody (1) - 오파티야, 쉬베니크, 스플리트 [2] 숙인 2009.08.28 3701
1162 [상처받은 땅 발칸을 다녀와서...] [8] 먼별이 2009.08.28 3141
1161 내 이름은 행복 지킴이 [2] 2009.08.26 3429
1160 내가 만난 크로아티아 사람들 [2] 단경(소은) 2009.08.25 4302
1159 칼럼 17 - 새로운 언어 [1] 범해 좌경숙 2009.08.24 2982
1158 [18] < 타임머신 2탄> [2] 먼별이 2009.08.24 3006
1157 부자인 집, 가난한 집, 미래의 집 [1] 혜향 2009.08.24 4054
1156 미래학자의 인류애 예원 2009.08.24 3116
1155 나무늘보의 꿈 [2] 書元 이승호 2009.08.24 4898
1154 나에게 부의 미래란~ 혁산 2009.08.24 3079
1153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 - 패턴인식과 선택 숙인 2009.08.23 4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