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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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명색이 해외여행을 가는데 여행 전날까지 개인사 작성 관계로 끙끙 거리고 있다가 이제사 완료를 지었다. 어쨌든 기한내 마쳐 싸부님에게 이메일로 내용을 보내고 나니 기분이 좋다. 나의 과거의 체계적 돌아봄. 그 아픈 과거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나를 부둥켜 안아야 한다는것. 내가 안아주지 않으면 누가 안아주리.
여행을 가기전 개인사 완료를 지으라는 것은 과거의 역사의 정리 및 털어 버리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미지에로의 여행의 행보를 가볍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지. 이제 집에가서 갈준비를 하여야겠다.
☛ Day 1일차 (8/6)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자그레브로
12시30분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향하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저녁 11시가 되어간다. 난 솔직히 비행기로 이렇게 오래가야 가는지를 몰랐다. 장장 10시간을 날아가 거기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야 된다니. 촌놈이 머리털나고 이렇게 비행기를 오래 타보니 샥신도 쑤시고 잠도 안오고. 에구에구. 그나마 마음에 드는건 점심, 간식, 저녁을 기내에서 해결을 다한다는것. 여하튼 세상 참넓다. 나의 마음도 이세상처럼 넓었으면 좋겠다.
비행기 기내에서 내내 크로아티아 관련 자료와 책을 보았다. 그래도 여행을 가는데 사전 지식은 있어야 되질 않겠는가.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맙소사 이제 20분후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 현지 시각 20시 45분. 다시 우리는 자그레브로 가기위해 크로아티아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갈아타기 전까지 2시간 이상의 시간이 남아 프랑크푸르트 공항안을 돌아 다녔다. 태어나서 이렇게 유럽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보는 것은 처음인것 같다. 공항은 인천 공항에 비해 생각보다 규모가 작으며 굉장히 소박한것 같다. 독일인들의 민족성이 그대로 나타나져 있다고 할까? 단순, 소탈. 화려한 인천공항과는 달리 대조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여행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이웃과의 만남의 조우. 우리앞에 8박9일의 여정은 어떤 멋진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곳 현지시간으로 저녁 8시45분 현재 공항을 이룩했다. 작은 비행기, 무뚝뚝한 항공 승무원, 그리고 샌드위치 하나가 승객들엑 지급이 되었다. 배급을 주듯이. 하지만 먹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잘먹는게 최고니까.
이제 우리의 목적지인 크로아티아가 가까이 다가온다.
☛ 2일차 (8/7)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그리고 프로포즈 퍼포먼스
2일차 여정.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새벽에 몇 번이나 잠을 깼다. 시차가 적응이 되질않아서인지 그러다 결국은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기상. 6시~7시 자그레브 개인 산책을 나갔다.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로써 인구 500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박물관을 자랑하는 도시이자 동유럽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래서인지 고풍스러운 옛건물이 곳곳에 눈에 띄였고 예전 서울의 전차의 모습, 사람들의 출근길의 모습이 인상적 이었다.
토스트 조식 후 오전에 자유관광. 자그레브 구시가와 프란치쓰꼬 성당, 마르꼬 성당, 예쁜 노천까체 골목,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자그레브에서 가장 유명한 시장인 꽃과 과일 등을 판매하는 도이치 시장, 높은데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의 빨간 지붕집. 우와~
현재시간 12시10분. 우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세상은 참 넓은것 같다. 동양에서만 존재한다고 여겨왔던 비경이 이곳 서양에서도 존재하다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유럽인들이 죽기전 꼭 가봐야할 비경으로 손꼽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도착해서의 첫이미지는 관람을 위해 줄줄이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작년 중국 천안문을 방문하던 때가 떠오른다. 사람 사는곳은 어디든지 다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열리고 세상이 열릴때 플리트비체가 있었다. 정말 내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보일정도의 맑고 푸른 호수, 숭어떼들. 그리고 그들의 조화. 하늘 아름다움이 가슴에 박혔다. 정말 좋은 광경. 보나씨도 감동에 젖은 모습. 플리트비체 감탄사의 연발. 이름그대로 참 좋았다.
플리트비체를 뒤로하고 이제 우리는 자다르로 향하고 있다. 차장밖의 들녘, 태양, 이어지는 낙조, 바다, 평야, 하늘 너무 멋있다. 세상이 맑다는게 정말 이런 것이구나 라는걸 다시한번 느낀다. 행복한 2일차 현재시간 20시20분. 자다르 시내로 들어서고 있는것 같다.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우리들은 각자의 18번을 마이크를 쥐고 뽐내었다. 저마다 한가닥씩 하는 솜씨들. 보나씨의 순서가 다가오자 그녀는 오늘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특유의 아름다운 자태(?)로 동요로써 생일 노래를 불러준다. 아이 부끄러워라~
석식을 하고 5기 연구원은 저녁 10시경 모여 연구원 첫수업을 진행 하였다. 앞선 선배님들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연구원 분들은 참대단하것 같다. 이곳 이역만리 타향에까지 와서 불타는 향학열로 늦은밤 연구원 수업에 모두가 몰입을 하다니.
개인의 사랑 이야기의 테마로써 나는 홍영이 형님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를 하였다. 나의 첫사랑인 현재의 마눌님인 보나씨와의 ‘LOVE STORY’를 적어온대로 담담하게 읽어 나가던중, 보나씨가 중후반에 참석을 하자 갑자기 감정에 북받쳐 목이 메이고 울음이 나올려고 한다. 부끄러워서 쪽팔려서 참아 보았으나 목밑까지 차오른 울음은 못내 삭이지를 못하고 그만 세상 밖으로 터져 나왔다. 연애때의 느낌 그대로 눈물이 솟아 나온것 같다. 그덕분에 동기 연구원들의 연출아래 13년 결혼생활이 되어가도록 정식으로 해보지 못한 프로포즈 퍼포먼스를 하였다. 참내 내생일날 이게 무슨 뜻밖에 일인지.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을 8월 7일.
☛ 3일차 (8/8) 자다르 시내관광, 그림과 글에 대한 단상 그리고 사람들
오전 자다르 시내관광. 자다르는 중부 달마치아 항구도시로 이름있는 곳이다. 입구에서 우리들을 먼저 반기는 것은 로만포름이다. 이 로만포름은 크로아티아 아드리아 연안에서 건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소에 포함되는 곳이다. 사각형의 장소로써 무엇보다 이곳에서 예전에는 여러 집회와 대화의 장인 토론들이 자유롭게 이루어졌으리라.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속에 그들은 무한한 창조적 날개를 달고 날아 올랐을 것이고.
중세초기 크로아티아 기념물로 자다르를 상징하는 성도나트 교회를 방문하고 이어 종탑에 올라갔다. 종탑에는 몇 개의 종들이 매달려 있었는데 중세시대 가톨릭이 부흥시 매시간 종치기가 세상의 울림을 여기서 알렸으리라.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믿는 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충족키 위해 종이 울린다.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장치인 자동으로 맞춰진 시간에.
전망좋은 종탑 아래에는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다르 빨간 지붕의 집들이 태양을 시샘하듯 저마다 붉은 빛깔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아름다운 자다르.
점심식사로 멋진 조망을 자랑하는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함께 씨푸드 만찬을 즐기던중 보나씨가 분위기에 젖어 이렇게 한마디를 한다.
‘세상은 그 하나 하나가 그림같애!’
이런 말에 내가 가만히 있을소냐. 이런 답변을 하였다.
‘人生은 그 그림에 어떻게 등장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카! 참 평화로운 여정~
만찬을 즐기는 와중에도 5.5기인 진현주는 연신 풍경과 인물을 찍기위해 카메라 셔터를 찰칵찰칵 눌러대고 있다. 현주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지 이제 4주 정도가 되어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실습의 개념으로 사진을 무척 많이 찍고있다. 사진은 많이 찍을수록 실력이 늘것이다. 찍는 와중에 본인이 앞으로 찍고싶은 관심 및 대상을 자연히 발견하게 될것이고. 글쓰기와 사진찍기는 닮은점이 있는것 같다. 글도 많이 써야한다. 많이 쓰는 와중에 글솜씨도 늘고 본인의 관심사와 주제가 설정이 될것이니까.
이제 버스는 스플릿으로 향하고 있다. 여행 3일차. 참좋다. 노천까페에 앉아 한가롭게 차를 마시는 유럽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여정내 느껴진다. 더불어 사람들과의 대화, 문화의 이해,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되고.
우리는 스플릿에 도착하여 수페타르행 카페리호에 승선 하였다. 카페리호에 타고있는 내내 배안의 사람들을 눈여겨 보았다. 개인의 관심사이기도 하겠지만 여행을 올적에도 풍경보다는 사람들의 모습과 행위 등을 나는 오히려 관심있게 살펴본다. 그들의 사는 모습들을 가슴 한구석 담고 싶다고 해야할까? 그래서인지 내가 사진찍는 대상도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피사체로 선정한다. 크로아티아의 행복한 얼굴빛의 사람들 참좋다.
☛ 4일차 (8/9) 볼 해변 수영, 스플릿 시내 관광
어제 준비된 수업이후 방에서 와인을 벗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든시간이 새벽 4시경.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오늘도 샌드위치에 쨈을 발라 아침을 먹는다. 크로아티아에 온지 나흘이 되어가지만 한국 음식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이곳 음식을 조금은 즐긴다고 해야할까? 유럽이 체질인가~
버스를 타고 볼로 이동한다. 이곳은 스포츠의 천국으로써 유럽에서 유명한 비치중 하나이다. 해변에 와서 무엇보다 감격스러운 점은 세상에 내가 보나씨와 함께 그것도 아드리아 해변에서 비치 파라솔을 배경삼아 수영을 하러온 점이다. 결혼이후 처음이라고나 할까? 그런만큼 오늘 이곳 아드리아 해변에서의 오전 여정은 무척이나 특별하다. 그래서인지 찍기 싫어하는 사진도 찍는등 나름 추억을 남길려고 여러 포즈를 취해본다. 아싸~
강렬한 태양, 우리나라보다 염분의 농도가 강한 바닷물, 수영, 텀블링, 놀이기구 등. 참으로 호사스러운 휴가일정을 보내고 있다.
현재시간 14시15분. 다시 수페타르로 가서 스플릿행 카페리호를 타야한다. 스플릿에 도착. 스플릿은 유럽에서 해가 가장 잘내려 쬐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래서인지 크로아티아 정부에서는 문화 관광 중심부 계획 도시로 육성을 하고있다. 시내관광에 나서자 우리를 반긴 것은 디오클레시안 궁전이다. 이곳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으로 주주식 peristyle 건축양식의 대표 건물이다. 이곳저곳을 거니노라니 당시의 찬란했던 고대 로마인들의 흔적과 그들의 삶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세월의 무상함속에 이제 이들이 반기는 것은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다.
마지막으로 스플릿의 상징인 그레고리우스닌 동상을 들렸다. 이동상을 무엇보다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성인의 당시의 행위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왼쪽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이다. 역시나 엄지 발가락은 태양빛에 반사되는 노을만큼 반짝거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성인에게 소원을 빌었을까? 나도 조그마하게 소원을 빌어본다. 대한민국의 남북통일과 크로아티아 나라의 행복을 위해서.
☛ 5일차 (8/10) 쉬베니크 시내 관광, 크르크섬 버스 일주
쉬베니크로 이동. 현재시간 오전 9시 50분. 이제 이곳 여정도 얼마남지 않았다. 처음 출발할 때에는 8박9일의 여정이 무척 길다고 느껴졌었는데. 그래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자신의 묘비문 앞에 이렇게 써놓았다고 했던가. ‘내 어영부영하다가 이렇게 될줄 알았지’라고.
내전의 상처와 여러 굴곡의 구비가 있었던 곳이지만 현재의 이곳 유럽은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참좋은것 같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가? 여유, 평화로움, 재충전, 언어의 중요성, 삶의 질, 내적 성찰, 내안의 자유, 동료애...
이동하는 버스 차장 밖으로 동유럽의 풍경이 지나간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것 같다. 처음에는 우와하고 감탄사를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더니 이제는 웬만한 해변과 건물들을 보아도 별로 놀라워 하지 않으니. 익숙해졌다고 할까.
1시간 정도 쉬베니크 자유관광에 나섰다. 이곳 특유의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다녔다. 여러곳의 알록달록한 상점들, 이방인들속에 나는 서둘렀다. 보고자 하는 곳을 아직 못찼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도착. 성야고보 성당. 200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명한 곳이지만 무엇보다 74개의 달마치니아 사람머리 조각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우리의 인생사를 표현하듯 각기의 다른 표정과 모습들. 만약에 앞으로 다시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인고의 세월을 가슴에 안고 우리를 넉넉한 가슴으로 반기는 각각의 문화유산들. 우리는 그들 앞에서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봄과 함께 현재의 나의 모습을 사진기에 아로 새기며 미래의 모습을 노래한다.
크로아티아란 나라를 내가 바라본 하나의 시각으로 규정 내리면 골목 문화와 노천까페 문화가 잘버무려진 하나의 수채화 정경 같다고 할까? 그들의 여유로움에서 그들의 차한잔에서 유럽인들의 삶의 한단면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물론 그속에 우리가 아직 느끼지 못한 그들의 굽이굽이 삶의 표징들이 담겨 있겠지만.
관광을 마치고 이제는 약 4시간 가까이 버스로써 크로크 섬으로 이동을 한다. 크로크 섬은 포도주와 올리브 등이 생산되는 여름철 관광지의 한곳이다. 이동중 우리는 이번 점심때 별식을 먹기로 계획을 세웠다. 별식이란 다름아닌 사전 준비를 해온 한국 음식들의 보따리를 풀어서 한낮의 만찬을 즐기는 것이었다. 적당한 곳에 버스를 세우고 장소를 물색하던중 시골 고즈넉한 풍경이 느껴지는 작은 레스토랑을 발견 하였다. 다행히 사장 내외분의 양해아래 식탁이 펼쳐져있는 앞마당에서 이번 여정중 처음으로 한국식의 음식들을 맛보았다. 햇반, 컵라면, 김치, 통조림, 김등 가지고간 음식이 어느새 동이났다. 우리들이 먹는 음식이 흥미로웠는지 레스토랑 사장분이 요청을 해왔다. 햇반과 컵라면의 이방인의 음식을 받아든 그들은 조심스럽게 선반위에 올려 놓는다. 우리 다음에 한국의 어떤 분들이 인연이 되어 이곳을 우연히 방문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에는 이곳 레스토랑 안주인(마리아란 본명을 가지고 있는)분이 이렇게 얘기했겠지. ‘0월 0일 어느날 멀리 꼬레아라는 동네에서 몰려온 떼거리들의 점심 만찬을 우리도 함께 즐겼노라고.’
크로아티아분들의 환대와 마음씨 좋은 향기를 간직하며 다시 크로크섬으로 이동중에 나는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게 되었다. 솔직히 마눌님이 계신 자리에서 근엄하고 진중한 모드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희망하는 나의 개인적인 바램이 있었기에 사회는 조금 부담이 되었었다. 하지만 나하나의 쪽팔림으로 만인이 행복할수 있다면 이한몸 불살르리라. 아우~
이제 다리를 지나고 나니 바다가 보인다. 예정된 목적지인 오파티아에 도착이 되고있다. 이곳은 베네딕도회 사원을 중심으로 발전이 시작된 도시로써 신의 축복을 받은 자연환경으로 알려져 동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휴양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입구에 들어서자 이제까지 크로아티아의 도시를 보아왔던 모습과는 다른 풍경들이 사뭇 우리들을 반긴다. 화련한 야경의 모습,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는 여러 호텔들과 까페들의 모습. 하지만 우리는 아쉽게도 이곳 밤의 풍경을 즐기지 못한다. 왜냐구? 밤만되면 펼쳐지는 5기 연구원들의 아리바인 나이트가 시작되기에. 우리의 울분(?)을 하늘도 아는지 새벽내 천둥번개에다 비바람이 몰아친다.
☛ 6일차 (8/11) 슬로베니아 입성
밤의 연구원 수업이 마치고 나서 잠자리에든 시간이 새벽 3시경. 그리고 6시 기상. 어제의 궃은 날씨를 뒤로하고 우리의 여정을 축복해 주는듯 오늘 아침은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다. 우리의 강행군은 계속된다.
톨민으로 이동. 현재시간 오전 9시30분.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국경지대라고 해서 나는 솔직히 우리나라의 군사분계선 규모(?)를 생각 했었는데, 막상 자그마한 톨게이트 규모의 형태를 보니 조금은 실망감이 든다. 개인별 여권 검사를 하고 드디어 슬로베니아로 입성. 크로아티아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산과 풍경이 왠지 우리나라의 시골 전원 풍경같은 이미지라서 더욱 친근감이 든다고 할까. 이동중 코바리드로 지역의 전쟁기념관을 잠시 들렀다. 알다시피 이곳은 유럽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상혼이 아직 남아있는 곳이다. 아직도 성당이며 건물 곳곳에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으니. 그런 아픔의 흔적을 역사적인 기념관으로 생성시켜 전쟁의 아픔을 각인 시키는 이곳에 들어서니 6.25사변을 겪은 우리나라가 생각난다.
나폴레온 브릿지를 지나 드디어 오늘 여정의 백미인 슬로베니아 유일의 국립공원인 트리글라브 내셔널 파크에 들어섰다. 해발 2864m의 위용속에 굽이굽이 깍아지른 협곡을 아슬아슬하게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에 우리는 저마다의 감탄사를 연발한다. 말로 형용할수 없는 신의 대자연의 작품이 우리를 압도하는 가운데 우리는 느낀다. ‘자연앞에 우린 하나의 한점이라고.’ 그리고 그앞에서 우리는 가지고 있던 묵혀둔 사변적인 생각들을 훌훌 털어내어 날려 보낸다. 멀리멀리~
산의 정상에서 우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멋진 하모니의 연출과 함께 기타반주에 맞춰 합창을 하였다. 계곡 굽이굽이 퍼지는 우리의 노랫가락속에 어느덧 자연은 빨간 노을로써 화답을 해온다. 아참 이곳에서는 요델송을 불렀어야 했는데. 요우리~ 요우리~
숙소인 블레드에 도착해서 여장을 푼다음 연구원들의 마지막 수업을 진행 하였다. 솔직히 주제인 개인별 사랑 이야기를 발표하고 질문과 코멘트가 이어질때 과연 이런 이야기가 어떤 의미성이 있을까 생각을 하였었다. 하지만 마지막 'Key question' 시간시 싸부님께서 ‘사랑을 통한 성장’을 말씀 하셨을때 그제서야 어느정도 이번 수업의 의미에 대해 공감이 가게 되었다. 남녀간의 사랑을 통한 정신적, 육제적 성숙. 그리고 나눔. 진정한 사랑의 경험은 성숙됨의 표징의 하나가 아닐까 여겨진다.
☛ 7일차 (8/12) 블레드 호수 그리고 류블랴나에 울려퍼진 우리의 목소리
오전 블레드 호수를 플레티나 전통 나무배를 타고 관광을 하였다. 유럽에 잘알려진 호반 휴양지답게 물빛에 어리는 성의 전경들이 일품 이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은 한 사내에게로 집중이 되었다. 그 사내는 다름아닌 배의 키잡이 우리말로 하면은 뱃사공 이었다. 훤칠한 키에다 떡벌어진 어깨며 구리빛 몸매.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지다. 우리는 그의 발달된 상체의 벗은 나신을 보고싶어 연호를 외쳤다. ‘벗어봐, 벗어봐.’
그의 배를 젓는 솜씨는 예술 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또하나 감동시킨 것은 그의 직업관이었다. 이 뱃사공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업의 연계로 이어지는 것이란다. 그는 말하였다. 나의 아들도 본인이 원하면 이 일을 물려주겠노라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속에 어쩌면 금전적인 것과는 거리가 조금은 멀어 보이는 이일에 자긍심을 가진 그사내. 그리고 그 자긍심을 또다른 대에까지 전승 할려고 하는 장인정신. 나는 내가 하고있는 일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까?
오전 11시30분. 우리는 예정에 없던 사비치 호수로 들렸다. 산정상에는 폭포의 힘찬 물살이 거세게 내려오고 있었는데 사뭇 우리나라에서 느끼지 못한 색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뭐랄까? 신성한 산의 정령의 기운이랄까?
이제 우리는 8박9일의 마지막 여정지인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로 입성을 한다. 슬로베니아어로 ‘사랑스러운’을 뜻하는 류블랴나는 그 애칭에 걸맞게 사랑스럽고 소담스러운 도시였다. 시내의 명소인 플레츠니크 건축가의 ‘세 쌍의 다리(Triple Bridge)'와 연계된 시청사 앞 광장. 우리나라의 인위적인 광장의 모습과는 다르게 주변의 오래된 건축물과 역사의 궤적을 같이하며 자연스럽게 열린 공간으로의 역할로써 한몫을 다하는 광장.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그들의 표정과 웃음, 자유로움에서 슬로베니아의 미래를 보는듯 했다. 또하나 문화의 도시답게 광장 하늘에 줄을 연결해 이젤을 매달아 놓은것이 특이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그림 등의 예술 작품을 손쉽게 시민들에게 감상 하게끔한 시의 배려와 아이디어가 참신해 보인다. 현대의 문명으로만 가득한 우리나라의 도시에 비해 참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젤을 보는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비가오면 그림이 다젖을텐데 아깝지 않나?
드디어 이곳 광장에서의 풍경이 앞으로도 나의 가슴에 각인이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곳 시청사 앞 광장에서 우리 연구원들의 공연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도사님으로 변장한 싸부님을 비롯하여 각양각색의 분장을한 연구원들은 동상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긴장된 모습속에 우리는 기타반주에 맞추어 이동하는 버스내내 연습을 하여 갈고닦은 노래와 율동, 섹시한 춤솜씨 등을 유감없이 류블레냐 시민들에게 선사 하였다. 개똥벌레, 사랑으로 등의 노래가 우리의 목소리를 통하여 그들에게 전해지는 순간, 비록 의미는 모를지언정 화답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올때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모습을 확인할수 있었다. ‘헬로 슬로베니아’의 퍼포먼스를 끝으로 저마다 땀으로 범벅이된 얼굴을 손으로 훔치는 순간 싸부님께서 던지시는 한마디 말씀. ‘내년에 또해야지.’ 깨갱~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픈 배를 움켜잡고 다리 밑의 화장실을 발견한 순간 반가운 마음에 냉큼 뛰어 들었더니 입구에 할아버지가 제지를 한다. 이유인즉슨 유료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이곳 유럽은 외부 화장실이 유료인 곳이 많다. 그래서인지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어쩌나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큰일났다. 배는 아파오고 우리나라처럼 급하면 신문지 깔고 해결을 할수도 없으니. 그때 나타난 나의 구세주 성우형님이 눈에 ‘띄었다. 덕택에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작은 것과 큰것을 보는 공간이 나누어져 있었다. 급한 그순간에도 각기의 요금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것저것 가릴겨를이 없었다. 겨우 볼일을 끝내고 나오는 순간 나는 외쳤다. ’무료 화장실이 많은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라고.
저녁에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우리는 광장 부근쪽 까페촌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길게만 느껴지던 일정이 벌서 이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하고 있다. 부딪치는 흑맥주 잔의 쨍그랑 소리와 함께 넘쳐나는 하얀 거품이 우리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것 같다. 류블레냐의 하늘의 별과 함께 우리 사랑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 8일차 (8/13) 프란세스코 성당 미사참례 그리고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아침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깨었다. 서둘러 세면을 하고 보나씨와 함께 광장쪽으로 향했다. 바쁜 일정이지만 그래도 유럽에까지 왔는데 성당에 들려 아침 9시 미사참례를 하고 싶어서였다. 광장을 지키고 있는 프란세스코 성당. 바로크양식의 외관도 고풍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성당안의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오는 성화와 화려한 천정의 그림, 제대, 조각들이 저절로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당시의 가톨릭의 진정한 힘이었구나라는 것을 뚜렷이 느낄수 있었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와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부님의 말씀은 알아들을수 없었지만 우리는 참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가톨릭의 본고장 유럽에서 그것도 부부가 함께 미사를 참례할수 있다니. 아무 탈이없이 여정을 마치게되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미사를 끝낸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마당에 펼쳐진 노천 시장쪽을 들렸다. 이곳에서도 꽃을 파는 상인이 눈에 뜨인다. 유럽이라는 나라는 어딜가나 도시가 꽃으로 장식이 되어있다. 꽃내음의 향기속에 하나둘 상점들이 아침 문을 연다. 공예품, 한아름의 과일 상인등. 이런 시장에 오면 진정한 그네들의 삶의 모습과 표정들을 발견할수 있다. 그리고 그안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에너지를 느낄수 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짐을 꾸리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구나. 오기전 여행 가방의 짐을 챙길 때가 생각이 난다. 왠지모를 기대감과 설레임 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무언가를 채워가는 느낌이 든다.
류블레나 공항 도착. 우리는 함께 여정을 하였던 버스기사 슈탕코를 아쉽게 뒤로하고 오전 11시45분발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다. 두둥실 맑고 파란 하늘속에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 첫날 올때가 생각이 난다. 10시간의 비행시간을 시작하였던 곳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다시 우리는 이곳에 왔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전철을 타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시내 관광에 나섰다. 크로아티아와는 다르게 이곳 독일식 건물들은 투박하고 단순하며 조금은 딱딱한 남성적인 분위기가 묻어 나온다. 모든 문학도들의 동경의 대상중 하나인 괴테 하우스(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공원 등을 산책하며 짧게나마 독일의 분위기를 만끽하였다.
현지 시간으로 저녁 7시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다. 한국인 승객들이 무척 눈에 많이 띄인다. 이렇게 해외로 세계로 여행 또는 업무, 유학 등의 목적으로 나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우리나라의 눈부신 미래가 보이는것 같다. 좁은 마음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좁은 한정된 시야 보다는 넓은 시각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욱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이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이마음이 오래 가기를 기도해 본다.
☛ 9일차 (8/14) 하늘을 날자
한국시간 오전 9시 10분경. 나는 비행기 기내에서 글을 쓰고 있다. 참 많은 곳을 보고 다녔고 많은 것을 품에 안은것 같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프로포즈 퍼포먼스, 슬로베니아의 협곡의 절경, 아드리아 해변에서의 수영 그리고 밤마다 이어졌던 우리 5기 연구원들의 나의 사랑 이야기 등.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의 문화와 건축물 및 사람들은 어떤지 등을 이번 여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체험할수 있었다. 사전에 제러미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 책을 통해 느꼈던 유럽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공감할수도 있었고.
여정지 곳곳에서 보여졌던 그들의 노천까페, 골목길, 광장의 문화. 그들은 이런 문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을 한다. 그래서인지 그네들의 문화의 파워, 인식의 파워, 브랜드의 파워와 경쟁력의 원천의 줄기가 이런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여겨진다. 경제개발이란 명목아래 옛날의 건축과 양식, 문화를 뒤엎고 고층 빌딩과 아파트의 숲을 이룬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선조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받고 발전시켜 나갔다. 오래된 건축물과 양식을 계승해 그안에 shop들을 구성 하였다. 꾸불꾸불 이어진 골목길에서 나와 같은 이방인들은 숨바꼭질을 하듯이 그들의 삶과 문화와 정신들을 찾아 다녔다. 보물찾기를 하듯이 자신들에게는 볼수 없는 그무언가를 찾아 다녔고 발견을 해내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수 있는 포럼과 같은 광장에서 생각을 나누고 사유하고 의견을 발표하고 공유 하였다. 그들의 수평적 사고방식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우리들은 어떤가. 선조들의 넉넉한 마음과 여유와 우리의 문화는 퇴색이 되어간다. 그로인한 결과물인 경쟁적이며 수직적인 사고방식이 대신 선물로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그런 그들의 열려져 있는 공간으로부터의 자연스런 인프라 형성과 맨파워. 이것이 21세기 등장할 유럽인들의 소프트이며 힘인 것이다. 나는 열려져 있는가 아니면 닫혀져 있는가? 크로아티아란 나라, 슬로베니아란 나라의 방문을 통해 열린 시각으로의 나감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의 필요성이 이번 연구원 해외수업의 가장큰 소득이라 할수 있으리라.
사람은 밖을 경험해야 한다. 세상을 나가봐야 한다. 세상에 대한 넒음을 경험하고 그것을 느끼고 포용해야 한다. 세계인, 세계의식.
한국시간 현재 오전 11시5분. 도착 예정시간 12시20분. 얼마남지 않았다. 돌아가면 다시 예전의 일상사의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익주 연구원 과제인 앨핀 토플러의 책읽기, 군산과 영남권의 출장, 쌓여진 업무와 지시사항 등이 나를 반길 것이다. 그런가운데서도 8박9일간의 연구원 해외수업 여행이 잊혀지지 않고 지금 이시간 글을 쓰는 현재의 마음처럼 생활속에 녹아 내리면 좋겠다.
이승호. 열린 세상으로 날아가자. 당신의 열린 마음과 시각으로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