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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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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11시 17분 등록
따로 또 같이 그리는 미래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6년째입니다. ‘평면조형실습’이라고 하는 수업인데 2004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저를 계속 공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공예과에서 금속, 도자, 섬유를 전공하는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머릿속 생각을 개념화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훈련을 통해 향후 그들의 작품 활동에 필요한 조형능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개발하는 것을 목포로 하는 실습 위주의 수업입니다. 좀 쉽게 풀어서 말하면 아이디어는 어느 날 딱하고, 어느 순간에 반짝하며 떠오르는 것이 아닌 만큼 나의 주변, 모든 일상에서의 발견, 책, 자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떠오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잘 살려서 종이가 되었든, 나무합판이 되었든 그림도구의 가장 기본적인 평면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창의성 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한마디로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수업입니다.


제가 처음 이 수업을 할 때는 영화를 주제로, 그러니까 영화라는 장르가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니만큼 학생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영화 한편을 선정하여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재구성해서, 이를 또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한 학기를 꾸려왔습니다.


이 수업은 저의 스승님께서 오래전부터 해 오신 수업이라, 스승님께서 하시던 수업을 이어받은 것이라, 그러한 만큼 스승님의 뜻을 잘 받들어 학생들이 3학년이 되었을 때 이 수업이 기초가 되어 전공수업에 잘 연결되고 응용되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몫이라 생각해 몇 년간 수업내용을 달리 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비교적 잘 하고 있다는 평을 들어, 오랫동안 해왔으니 이제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생각해, 이제는 좀 편해도 되겠지 라는 나태한 생각에 빠져 아예 바꿔 볼 생각조차 안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변경연 연구원이 되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부터 지금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 책을 읽으며, 연구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프 수업을 하면서, 제 경험을 대입하고, 결국에는 글을 쓰면서 이러한 모든 것에 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과거 이야기, 현재 이야기, 앞으로의 제 미래 이야기까지 저와 관련된, 제 이야기, 제 생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거다. 학생들한테도 이 느낌을,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기회를 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지난 학기에 부분적으로나마 시도해 보았지만 준비도 그렇고 양적으로 미미하여 실행한 것이라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크로아티아 여행 전에 강의계획서를 입력해야 했었는데, 스승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조심스러워,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괜히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예전대로 해? 말아? 하면서 전에 없던 망설임이 기한을 넘기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전에 없던 행동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행 간간히, 여행 중 쉬는 틈틈이, 두고 온 일들이 생각날 때면 이 걱정이 제일 먼저 앞서면서, 시장과 거리, 그리고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걸으면서 예전에 흥분하며 잘 걷던 제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발견하면서 용기가 생긴 것인지, 왠지 한번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여행이 끝난 후 미대 통틀어 제 것만 아직 입력되지 않았다는 경고를 받고서도 달라진 강의계획서를 준비해 스승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원래 어려울 것 같은, 쉽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생각지 않게, 더 수월하게 풀릴 때가 있듯이 늦었지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고, 수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함께 풀어보자는, 열심히 준비한 만큼 잘 해보라는 스승님의 말씀에 감동받아 저는 정말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유치한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어 행복해하며 돌아왔습니다.


그 결과 이번 학기 수업내용은, 그러니까 이 공부하기 좋은 계절에 저와 만나는 학생들이 가장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그려야 할 큰 그림은 우리 변경연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려 하는데 그 첫 번째 주제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기질과 강점 찾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고 두 번째 주제는 이를 바탕으로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모두 제가 변경연 식구가 되어 경험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될 주제입니다. 물론 제게도 쉽지 않았으니, 전하는 저도, 그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수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각만으로도 어려운데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니 깊이를 따질 여유는 더더욱 없을지도 모릅니다. 욕심을 좀 버리고 제가 그동안 연구원 과정을 통해 읽어왔던 책, 글쓰기, 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잘 정리해서 활용할 생각입니다.


저에겐 얼마 전부터 생각지 않았던, 전혀 예기치 않았던,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일부 과거의 역사가 현실이 되어 되돌아옴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전의 나, 나와 관련된 과거의 여러 가지 경험들, 처음엔 그저 당황했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희미한 단 하나, 지금 제게 온 그것이 그때와는 다른, 무언가 좀 달라져서 온 것임을 느낍니다. 제게 바램이 있다면 이것이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제게 새로운 변화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미래는 자크 아탈리의 주장처럼 과거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가장 가깝게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어디까지나 현실을 기반으로 다져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과거를 통해 배운 것들을 현실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중점을 두어 실행할 생각입니다. 지금 제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를 위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는 것, 뭔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망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전에 없던 변화의 기운을 받아들여 조금씩, 조심스럽게,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가을 학기는 대학생활에 적응 하느라 정신없이 1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어 전공수업에 들어가는 그들에게는 슬슬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선생으로서, 선배로서 제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예전에 저의 스승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씀. 그저 지금은 자신에 대해 부지런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받아들여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흡수하고, 걸러내라는 것입니다. 


다음 주 개강을 코앞에 두고 마주할 학생들, 그들이 들으면 뻔하디 뻔하다 할 이 말 외에 그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 줄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보다 그들에게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 수업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을 갖도록 그 초석을 다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그래서 학생들이 그들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자신의 작업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가꾸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매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적당한 해법을 찾지 못해 안타까운 점이 있는데 바로 진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많이 알려주고, 참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데 조금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재능이 아까운데 왜 안할까하며 조금만조금만 더 하며 욕심의 끈을 놓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선생님은 안 하는 아이들은 그냥 내버려 두라하시고, 어느 선배님은 요즘 애들은 떠 먹여 줘야 하니 더 자세히 알려주고 맛난 거 사주며 잘 달래보라고도 하고, 저도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해보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험이 더 쌓이면 나아지겠지만 글쎄요. 정확한 해답이란 좀처럼 찾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다만 제가 승질을 좀 참고 참아 학생들에게 되도록이면 많은 칭찬을 해주기를 바라고 바랄뿐입니다. 욕심이 있다면 우리 사부님처럼 늘 잘 보살피고 북돋워 일깨워서, 저절로 배움을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야 할 텐데요. 아무리 답답하고 화가 나도 절대로 나무라거나 책망해서 분발함이 없게 해서는 안될 텐데요. 학생들을 아끼는 저의 진정이 경계를 넘어 그들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될 텐데요. 하지만 머리가 나쁜 저는 종종 잊어버리고 성질을 참지 못해 실수하고 마음을 다치곤 합니다. 그러나 성질 죽이고 무지 노력하겠다고 또 다짐에 다짐을 해 봅니다. 정색을 한 낯빛보다는 칭찬이, 어리석다는 야단보다는 신뢰를 담은 눈빛이 그들의 성장에 도움이 됨을 새기고 또 새기겠습니다. 


곧 얼마 남지 않은 다음 오프 수업에서 저는 10년 후의 10대 풍광을 펼쳐 보이게 됩니다. 수업을 마치면 제 미래, 그려 보았으니 학생들에게도 그들이 스스로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수업을 하면서 매번 느끼지만 제가 그들에게 배우는 것 또한 참 많습니다. 그들과 저, 이번 학기 한 배를 타게 되었으니 때로는 홀로 외로움과 싸우며, 때로는 서로 치대며, 따로 또 같이 미래를 꿈꾸며 그 꿈꾸는 미래가 현실이 되도록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볼 생각입니다. 진정성, 서로에게 이것 하나만 제대로 전달 될 수 있다면 학생들도, 저도, 따로 또 같이 꿈꾸는 미래의 그림, 제대로 그릴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 지금 저도 배우는 학생 신분이다 보니 여기저기 찔리는 데가 많습니다.

어느 영화에서 보고 들은 듯한 “너나 잘 하세요~“ 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네~, 앞으로 말씀 더 잘 듣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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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2009.08.31 12:30:25 *.12.20.78
 안하던 말도 하게 되고 안하던 생각도 하게 되는 곳이라고....연신 "변경연 참 이상한 곳이야~~" 하며 중얼 거리던 네 말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그 이상함이 한 단계를 올라가게 했구나. 신나는 한학기가 되겠는 걸.
멋진 스승이 될거야. 너에겐 직선으로 가는 진정성과 꾹심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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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8.31 20:51:53 *.176.68.156
자신을 찾아가면서, 진화하면서, 거기에 관심과 사랑으로 주변을 조금씩 개선시켜 나가고 있네.... 참 좋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힘들겠지만 그만큼 보람도 성과도 많을 것이라 생각해. 힘 내어 전진하시게.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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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02:50:28 *.40.227.17
춘희 언니~, 희산 언니~

ㅋㅋㅋ 변경연.. 글구.. 언니야들.. 이상한 거이 맞다니까여..
 사랑한다는 말.. 이케 남발?하는 이들.. 전에 본적 읍구여..ㅋㅋㅋ
 마음을 담은.. 진심어린 말 한마디.. 이케 생각하게 하는 곳.. 여그밖에 없거든여..^^

마음을 담아 모두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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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9.09.01 08:35:21 *.160.33.197

부뚜막에 올라 갔구나.  불확질렀구나.
입은 먹는데 쓰고 말은 손가락으로 하니 행동이 따르는구나.    
그놈들이 너 처럼 " 샘,  담 부터 더 말 잘들을께여' 해야 할텐데....  
말 안들으면 승질을 부려라.   참고 있다가   머리털에 불을 확 질러야 한다.  놀랍게도  무지 잘탄다. 
타타타 소리를 내며 주위가 확 밝아 질만큼 잘탄다.  불 지를 땐 머리털이 최고다.  정신 번쩍난다. 
나도 너희들 말 안들으면 쓰려고 늘 준비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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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2 01:35:25 *.140.95.168
사부님~ ^^

네~, 사부님 말씀 잘 받들어.. 아그들.. 말 안들으믄.. 화~악.. 할께여..
머리털 집중 공격.. 타타타.. 생각만 해도.. ㅎㅎㅎ

근데여.. 저.. 사부님 ㅁㄹㅌ에 화~악 까지는 몰라도.. 연기?나는 거이는.. 몇번 봤어여..
오프수업.. 졸음과의 사투..  머리를 두손으로 부여잡고 애쓰시던 사부님의 머리위로.. 연기가 솔~솔~
다가오는 오프수업.. 저희가 말 잘들어 사부님 연기? 불?  될수 있으면.. 보지 않도록.. 잘 해야할텐데여.. ㅎ

"~ 해야 할텐데...." 이거이가 주는 여운이.. 제 마음에 화~악 무찔러 들어와..
"~준비해두었다"는 협박성?경고성? 말씀도.. 제게는 그저.. 감동에 또 감동일뿐이에여.. 흑.. 흐흑..

사부님~, 제가.. 사부님.. 느~무 좋아하고.. 무쟈게 사랑하고.. 무지막지하게 존경하는 거.. 아실까여.. ^^
(변경연.. 좀.. 이상해여.. 부끄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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