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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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9 -그리고 특히, 우리는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 모든 사건들을 묵묵히 겪어내는 동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인류의 마지막 남은 불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호할 것이다.
문필가 들은 훌륭한 글을 남겼을 것이고,
미술가들은 걸작품을 완성 했을 것이다.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을 것이고,
음악가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다. "
자크 아탈리의 <미래의 물결>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며칠 밤을 새우며 숙제를 하던 지나간 시간들이 나만의 고유한 시간을 살았던 참 좋은 시간으로 바뀌었다.
책장을 덮고나서 “이 사람, 이미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이 얼마만인지...참 행복했다.
옛날 옛적에, 빛나는 재수생이었던 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를 읽으면서 목마른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다음 해에 대학생이 되어서 명동에 있던 카톨릭 여학생관에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은 국제 여자 카톨릭 협의회(AFI)가 운영하던 곳이고 서울에 살고 있는 여러대학의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여서 서로 다른 문화를 느끼고 흡수하고 나누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당시에 AFI 회원이면서 한국말을 아주 잘 하시던 꼴렛 누와르 선생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임을 하나 만들고 주-욱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어떻게 그 젊은 꿈들을 이루어나갈 것인지 알고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맑고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어디선가 조용히 빛나고있으면 그 빛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함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즐겨 읽던 책들의 총체적 결론이었다. 참 슈바이쳐도 애독서에 포함되었다.
그리나 우리의 대학생활은 처절했다. 유신 독재 하에 대학은 해마다 가을이 오면 문을 휴교령으로 대문을 닫아 걸었고 최루탄과 돌멩이와 소금물 주전자는 아주 친한 친구들이었다.
지금도 가을이 오면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길에 갈 곳을 몰라 홀로 서있던 날들이 기억난다. 그러나 물론 등선폭포로 강촌으로 수덕사로 친구하고 정처없이 다니기도 했고 대승기신론도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고 에리히 프롬도 읽었고 주로 친구들과 책읽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함께 모여 책읽고 토론하고 하던 선배 중 한사람은 그때 KBS 공채 1기 피디가 되어 방송국에 매여 살고 있었는데 우리를 만나면 TV를 비스듬히 누워서 본다든지, 턱을 괴고 편하게 앉아서 보면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죽을 힘을 다해서 성실하게 일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겠지만.... 우리는 그 프로가 그래도 매우 신선하고 장수하고 있었기에 그냥 조금은 그 노고를 인정하는 선에서 받아들였다.
학교 공부를 그렇게 해나갔다면 그럼 집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때, 그 시절의 명동 생활의 에피소드를 다 말하려면 여섯 달도 모자랄 것이다. 재미있는 일 하나만 말해보면 아침에 슬리퍼를 신고 세탁소를 가다가 복학한 클래스메이트를 만났다. 그냥 반갑게 인사하고 지나쳤는데 학교에 가보니 벌써 소문이 돌았다. “아, **가 말이야, 슬리퍼를 신은채 명동을 돌아다니고 있더라.....” 재미있게 꾸밀려면 뭐, "눈꼽도 안떼고 말이야...." 이런 말을 덧붙였겠지만 그는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내가 존경하는 철학교수와 마침 이름이 같아서 우리가 늘 존중하며 놀려먹었으니까....비슷하게 갚았다.
당시에 흰가운을 입고 강의실에 들어오시던 백발이 성성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분은 학생들을 위해서 슬리퍼를 신고 들어오는 학생은 조용히 내보내셨다. 그런 태도는 선생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면서.... 요즈음 같으면 두세명 만 남고 다 강의실에서 나가야 할 규준이었다. 길을 가시다가 슬리퍼나 신발을 구겨신은 모습을 보면 반드시 불러서 가르치셨다. 심리학과 교수님이셔서 학생들이 말을 잘 들었고 또 기억에 깊이 남았다.
불행한 세상 가운데에 살면서도
항상 맑고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살고 싶었지만 세상을 내 어깨에 올려놓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가기에는 내가 너무 작았던지라, 어느새 나는 스티븐 코비식으로 말하자면 덜 중요하고 또 긴급한일에 휘둘리며 살기 시작했고 점점 더 바빠지는 세월의 숙제를 하느라고 사실 오늘까지 그 “맑고 투명한”이란 말을 잊고 살고 있었다.
이번에 연구원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따라 아드리아 해변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자기자신에게 깊이 침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긴 인생을 구비 구비 돌아와 이제야 겨우 평화를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하늘도 맑고 바다도 맑고 붉은 지붕도 맑은 그곳에서 비로소 맑은 숨을 쉬며 옛 생각에 젖어들 수 있었다. 그런 여유속에 사람들의 맑은 웃음소리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아드리아 해변에서, 아마 내 영혼의 밭을 갈아 잘 준비를 하고 온 것 같다.
그러니 이제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특히 사랑했을 우리는 ,
꿈길밖에 길이 없는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앞으로도 사랑을 계속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