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조회 수 3967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09년 9월 2일 10시 13분 등록

영희야. 이번 휴가는 참 뜻 깊구나. 중학교 1학년인 아들아이와 둘이서만 삼박 사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다. 여행을 더 편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웬만한 것은 모두 차에서 해결을 했다. 아이에게 아빠와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거든. 차에서 자고, 물이 있는 곳에서 물놀이를 하며 밥을 지어먹었지. 늘 바빠 아빠와 서먹하기도 했던 아이가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것을 보니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한 살 아래였던, 총명했던 너는 혹시 기억하고 있을까? 아주 가끔씩 먹을 것을 사들고 집에 오시던 아버지. 나는 이상하게 엄마는 기억이 나는데, 아빠 얼굴은 아슴아슴하다. 네가 여섯 살, 내가 일곱 살 때 그렇게 헤어진 후로, 36년이라는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기억하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 이번 여행길에서도 네 또래의 여성을 만나면, 혹시 나와 닮지는 않았는지, 이름이 영희는 아닌지 물어 보았다.

우리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의 시설에 맡겨져 자란 나는 우리가 살던 집에 더 일찍 가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열두 살 때부터 꿈을 가졌던, 경찰 공무원이 되고자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독서실에서 코피를 쏟으며 준비를 하던 어느날. 나는 그 동네를 지나던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엇엔가 이끌린 듯 그 언덕의 꼭대기, 까만 나무 판잣집을 밀고 들어섰다. 너와 내가 엄마와 살았던 그 집, 달랑 방한 칸에 쪽마루와 부엌이 있던 그 집에서 어떻게 다섯 식구가 살았을까 놀라울만큼 작은 집이었다. 그 집 마당을 서성이고 있자 집주인 아저씨가 나오셨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 주셨어. 생각해보니 아저씨는 내가 그 고장의 시설에 들어가 살고 있을 때 나를 보러 그곳에 오셔서 먹을 것을 사주고 가신 적도 있었다. 나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집주인 이었을 뿐인 아저씨도 나를 보러 왔었는데 왜 그들은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것일까 의문이었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너외에 한 살 된 여동생이 더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와 그 동생은 바다가 있는 도시의 시설로 보내졌다고 했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나를 그 집에 방치해 두고 떠난 것일까? 일곱 살의 사내아이는 클만큼 컸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날 아저씨는 생선좌판을 놓고 장사하던, 시장의 엄마를 알던 지인들에게 나를 데려 가셨다. 그곳에서 엄마를 더 큰 도시에서 만났다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이 이른대로 찾아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나는 스물 한 살이었다. 이미 분명한 삶의 지표가 서 있었다. 부모와 같이 살아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나이였을 텐데 스스로를 돌보면서 나는 누구보다 일찍 철이 들어 있었다. 엄마를 찾고 싶다는 마음 보다는 엄마 없이 살 수 있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지게 된 우리 가정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그러나 한참 후에 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실수 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수소문을 해서 어머니를 만났다면, 적어도 너희들 소식은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진 것이다. 너는, 또 막내 동생 영미는 어디서 자랐을까. 이름은 그대로 인지도 몹시 궁금하다.

나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으니 그대로이고 성도 같은 김씨인데 다만, [春川] 춘천 김씨이다. 취직을 하려고,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갔더니, 호적에 아무도 없고 달랑 나 하나더구나. 시설에서 만들어 준 거였지. 세월이 흘러 첫 아이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려하니 동사무소 창구직원이 고개를 갸우둥하며 그런 본도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호적에 있지 않느냐고 대꾸를 했지만, 춘천 김씨는 우리 가족뿐이니 그런 반응은 당연 한 것이었다.

내 생일은 8월15일 광복절이다. 잊지 말고 생일상을 챙겨 먹으라는 어느분의 배려로 그렇게 호적에 올려졌고, 그분 바람대로 올해 생일에도 아이들의 선물과 아내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었다. 영희야. 우리는 왜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았을까? 참 궁금한 것도 많았고, 원망도 많았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영희야. 나는 너를 찾는 것이 오빠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2008년 4월 KBS의 그 사람이 보고 싶다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살던 집도 KBS 직원들과 다시 찾아 가보았다. 이젠 재개발로 묶여 아무도 살지 않지만 그 집은 아직 거기에 있더구나. 여러 과정을 거쳐 그 프로가 방송된 지 일 년이 지났는데 혹여 기대하고, 많이 기다렸는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우리가 헤어진 지 36년 전이지만, 나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이름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너는 네 이름을 잊은 거고, 어머니와도 연락이 닿지 않고 살아 온 것일까?.

어릴때, 오빠는 다음에 너를 만나면 너를 지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었다. 우리가 어린 아이여서, 힘이 없어서 그렇게 헤어지게 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오빠는 넉넉하진 않지만 대한민국의 경찰이고, 사람들과 늘 함께 하는 삶을 살려고 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가지 생각 밖에 없었다. 내가 발디딘 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일을 하려하고, 그냥 경찰관이 아니라 훌륭한 경찰관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마음이 해이해질 때는 1호봉의 꿈을 키우며 경찰관이 되려고, 공장에 다니며, 주경야독을 했던 시절을 떠 올린다.

영희야. 너에게는 오빠가 사랑하는 한결 같은 새언니도 있고, 고모라고 불러 줄 조카들도 둘이나 있다. 만약에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또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면, 다 함께 어울려 살지는 못해도 적어도 우리의 뿌리를 알 수는 있겠지. 그때까지 영희야, 건강히 부디 살아있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생이 끝나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서로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꼭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영희, 영미, 늘 너희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오빠가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오빠로부터.

IP *.61.100.2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61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3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7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6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50
5201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9
5200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81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90
5198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6
519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8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799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6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9
5193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