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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4일 18시 09분 등록

우리 팀을 살려주세요. 1

아침 사무실 공기가 가을 날씨답지 않다. 3개월째 야근과 철야가 반복되고 있다. 보름이면 끝나지 싶었던 일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제 무엇을 어디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막막하다. 팀원들의 사기는 끝 모를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다. 오기로 버티고 있다고 봐야할 이 광경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어제 저녁 김대리와의 짧은 대화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팀장님! 잠간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요."

"어. 김대리.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잠간만 기다려줘.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생겨서 말야."

"팀장님! 잠간이면 되는데요."

"알았어. 회의실에 먼저 가있어. 바로 갈게."

나는 20분이 지나서야 회의실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얼마 전 납품된 제품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핏대를 세우는 S사 용차장의 개 거품을 20분 동안 꾹 참고 마셔야 했다.

"임팀장님! 이거 어떻게 같이 일하겠습니꺼? 이번 제품은 해외로 나가는 거라고 제가 누차 이야기 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현장에서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물건 다 가져가랍니더. 우리쪽 사람들 사장님한테 죄다 불려가 가 아주 박살났습니다. 해달라는데로 다 해줬잖아요!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 예! 말좀 해보세요."

"네. 죄송합니다."

"아니. 임팀장님. 죄송한게 아니고예. 저 그런얘기 듣고 싶어서 전화한거 아닙니다. 답을 주셔야지죠. 어떻게 할껀데예. 그걸 말해주셔야죠. 제가 뭐 동네 북입니꺼? 아. 나 아주 미치겠습니더. 좀 살려주이소."

"근데. 용차장님. 그 문제라는 것이 어떤거죠."

"아! 아주 돌아삘겠네. 도이사님한테 못들으셨어요."

또 뒷목이 뻐근해 온다.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지고 있다. 전화기에 손을 대고 말하는지 아까보다 멀리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용차장의 음성이 확실한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아! 이거. 지위체계도 없고.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노. 내가 누구하고 얘길해야 하는기야.'

"임팀장님. 도이사님한테 물어보이소. 예. 어제 뭔 일이 있었는지 도이사님한테 물어보란 말입니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요. 임팀장님. 이거 너무한거 아닙니꺼. 약속한 납기를 한번이라도 지키기는 고사하고 두 달이 넘어 납품한게 문제라도 없어야 하는거 아닙니꺼. 어디 무서버서 일 같이 하겠십니꺼."

"그건. 고객의 승인이 늦어서 그런......."

내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용차장이 말을 잘랐다.

"또 그 소립니꺼. 핑계 좀 대지 마이소 핑계. 승인도는 도대체 언제 제출하셨는데요."

"네.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좀. 똑바로 좀 하세요."

'뚝.........' 소리가 '뚜뚜뚜........' 소리로 바꿨는지도 모른체 나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전화기를 내려놨다. 아직도 귓가엔 '똑바로 좀 하세요'란 말이 메아리치고 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면 소리라도 고래고래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이번엔 또 무슨 문제란 말인가? 가뜩이나 까칠한 사람들인데 전화목소리로 봐서 심각함의 정도가 보통은 아닐 것이다. 당장 도이사님을 찾아 상황을 파악하고 싶지만 난 그분께 먼저 말을 꺼내기 싫다. 좀 기다리면 부르겠지. '아참. 김대리에게 기다리라고 해 놓고.......'

"김대리 미안. 전화 통화가 좀 길어졌다."

반쯤 열린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애써 태연한 척 했다.

"괜찮아요. 팀장님. 오늘은 또 무슨 난리래요."

"어. 용차장"

"또 일 좀 똑바로 하래요."

"너.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니 핸펀은 도청기도 되는거야."

"그 양반 마지막 인사가 그거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농담도 하는 김대리가 고맙고 미안하다.

"어. 그건 그렇고 김대리가 왠 일로 날 다 보자고 한거냐. 겁난다. 야. 좋지 않은 이야기 할꺼면 미리 알려줘라 도망가게."

"팀장님."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김대리 안색이 변했다. 하긴 김대리가 따로 보자며 회의실에서 혼자 30분 이상을 기다릴 정도면 뭔가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왠지 불안하다. 일단 김대리 말을 끊지 않고 들어봐야겠다.

"......."

"팀장님. 애들이 많이 힘들어해요. 우리 팀 올 여름에 휴가는 고사하고 몇 달 째 이러고 있잖아요. 이젠 회사 계속 다녀도 되는거냐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와요. 너무 앞이 안보여요. 저도 앉아서 뭘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하루 종일 현장에 불려 다니고, 납품된 제품에 문제 발생했다고 난리고, 승인도면 언제 줄꺼냐며 지랄하고, 거기에 영업부에서는 견적도면 달라고 시간 마다 찾아와요. 오늘도 팀장님 잠간 자리 비운 사이에 영업부 문이사님 오셔서 쌩난리 치고 갔어요. 이래서 영업 해먹겠냐며 밤을 새우든지 어떻게 해서든 내일까지 견적도면 내놓으래요."

김대리의 흥분한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러나 내 심장박동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김대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한참을 생각하는 듯했다.

"팀장님 애들도 애들이지만 제가 더 못 견디겠어요."

IP *.216.1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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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2009.09.05 00:58:29 *.12.20.78
현웅. 잘 지내지?  '우리 팀을 살려주세요.' 보니 무지 반갑다.ㅎㅎ 이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던 그곳에서 발표하던 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열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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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9.09.08 12:49:26 *.216.131.31
친구. 그대 모습이 새록새록 움트고 있음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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