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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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할 나의 꿈>
새벽까지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수업을 가려 나가는 길에는 멈추었다.
날씨조차 무언가를 알고 있었나…?
어제 수업은 1기 문 요한 선배의 청담동 아카데미에서 진행되었다.
장소 제공도 감사했는데, 강의실로 들어선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와인을 화이트 와인부터 시작해서 순서대로 마련해 놓으신 것부터 시작해서
맞춤 떡에 마른 안주에 과일까지. 와… 선배님 정말 대단하시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린 정말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주시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런데 선배님의 자상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점심에 뒤풀이 맥주까지. 우리도 후배 기수가 생기면 살뜰히 챙겨주고, 비단 후기 기수 뿐만 아니라 선배 기수들에게도 가끔은 마음 써드리자 마음을 모아 보았다.
하지만 선배님의 자상한 배려와는 달리 우리 수업은 예전에 비해 어딘가 2% 부족했다.
어제 수업의 주제는 다름 아닌 <2019년, 나의 10대 풍광>이었다. 나처럼 꿈벗을 거친 연구원들에게는 2번째 하는 작업이었고, 연구원으로 직행한 동료들에게는 첫 번째 접하는 일이었지만, 어딘가 수업 시간 내내 우리답지 않게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이럴 우리가 아닌데…
물론 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9시 전 초저녁에 끝내야 한다는 웨버 오빠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린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만 보아도 느낄 수 있기에 수업 내내 약간은 어색함조차 흘렀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뭐 그렇게 살겠다는데, 누가 뭐라겠어?”라고 서로들 애써 웃음지었지만, 그조차도 자연스럽지 못함을 우린 시간 내내 알고 있었다.
드디어 오프 수업 이래 처음으로 12시간 내에 수업이 끝나는 쾌거(?)를 이룬 우리 5기들은 축하한다 박수를 쳤지만 마음에선 무언가 바람이 빠진 듯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부님의 주옥 같은 파이널 코멘트에서 우린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작가란 말이야. 세상을 바꾸는 자가 되어야 해. 그러려면 말이지. 꿈이 커야 해.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을 꾸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 고민해 봐야 해. 그렇게 구체적인 꿈을 꾸다 보면, 내가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는 거지. 그대들의 오늘 10대 풍광은 현실에 너무 많이 갇혀 있어. 나는 그대들이 좀 더 아름다운 10대 풍광을 그리기를 기대했어. <내가 반할 수 있는 꿈>말이야.”
아…… “내가 반할 수 있는 나의 꿈”이라…
내가 지난 9개월간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도 여전히 현실에 갇혀 의무적인 꿈밖에 그리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나의 10대 풍광은 내가 보아도 생명력이 펄펄 끓기는커녕, 어딘가 김이 빠져도 한참 빠져 있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부님 말씀. 이미 우리들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다.
“뜻이 큰 사람이란 말이야. 겨우 나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아니야. 내 주변에, 내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지. 이미 만들어진 세상 룰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 말고, 그대들이 새로운 룰을 만들고,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만, 그 기상이 그대들의 책 속에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만 누군가 그 책을 읽고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 첫 책은 특히나 말이지, 절대 세상의 관행을 따르는 책이 되어서는 안 돼. 지금까지 세상의 룰 속에 포함된 책이 되어서는 안 돼.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힘이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지. 우리가 지금까지 집중해 온 것은 말이지, 사회에 의해, 부모에 의해 혹은 교육에 의해 주입된 삶이 아닌, <내가 살고 싶은 데로 살면 안 되는 건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음이야.”
변화한다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인 걸까?
우리의 치열함이 부족했던 것일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뛰어 넘기에 너무도 높은 것일까?
우리 중 몇몇은 결국 새벽 2시까지 이리 저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로를 물고 늘어졌다.
우리는 몇 가지 해답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함이었다. 세상을 향해 당당하지 못함이었다. 사부님 말씀처럼 우리는 나의 10대 풍광을 쓰면서도 여전히 사회가 우리에게 규정지은 이름 아래 그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당연히 사회적 규범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허물어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루려는 혁명은 무엇일까?
우리가 꿈꾸는 변화의 혁명은 과연 이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런 혁명의 깃발을 드높이려 하는 것일까?
사회를 이루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다. 그리고 사회 규범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안녕과 질서 혹은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규범 지어져 내려오는 것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규범의 힘이 더해져서 이제 사회 구성원들을 역으로 통제하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구성원들의 숨통을 조이기 까지 한다. 여기 바로 혁명의 불씨가 움트기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다.
나는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 물었다. 왜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먼저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가장 소중한 그들이 바로 나의 구속이 된 것이다. 그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은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죽음이 생각날까? 그 때 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주어야 할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만 존재할 뿐, 그 사이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없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비어 있었고,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생명이 없었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살아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먼저 살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었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39쪽).
비단 아버지로서 혹은 남편으로서만의 고뇌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딸로서, 아들로서. 혹은 누군가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범위를 조금 더 확장하면 한 사회의 그리고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누구나 가슴 속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램 또한 지니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가슴 속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가장 먼저일 것이다.
인생은 결국 짧은 꿈이었다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31쪽).
세상 모든 혁명은 성공에의 보장이 없다.
혁명이란 종교의 이름으로도 사회의 제도로도 가족의 힘을 빌어서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칫 발목이 걸려 넘어질 뿐.
오직 내 가슴 속의 불꽃이 타오를 때, 그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행한 우리들의 10대 풍광 수업은 또 하나의 거대한 산이다.
그리고 우린 내년 봄 우리들만의 향기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이 가을 더 깊이 내 안으로 들어가 기어이 불씨를 살릴 것이다.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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