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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4일 18시 06분 등록
  “승호야.”

  “왜?”

  “재윤이가 시험치기 위해 한국에 나가있어야 하는데 그기간동안 너희 집에 있어도 되겠니?”

  “당연하지.”


  올해 6월 중순경부터 우리집에 새식구가 한사람 늘어났다. 조카인 김재윤. 자형 회사 업무로 인도네시아에 가족과 함께 3년을 가있었는데, 현재 고3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시험을 치루기 위해 잠시 함께 거주하게된 것이다.

  처음 누님에게서 이같은 전화를 받았을 때는 ‘별걸가지고 전화를 다거네. 조카인데 당연히 우리집에 있어도 되지.’라는 아주 가벼운(?) 생각으로 쾌히 OK를 했었다. 거기다가 조카의 생활비를 부쳐 준다는 말에 ‘무슨 소리 하노. 개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됐다.’라는 말로 금전까지 사양했다.

  3년만에 보는 조카는 몰라보게 외적인 모습이 변화되어 있었다. 키도 나보다 크고 여드름이 덕지덕지난 얼굴에 고3이어서인지 말도 별로없다. 가볍게 생각 하였지만 결코 가볍지많은 않은 이같은 동거동락(同居同樂)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승호씨. 이번에 생활비가 많이 나왔는데.”

  “왜?” 

  “재윤이가 조금 많이 먹네.”

  “쪼맨한(?) 애가 먹긴 얼마나 먹는다고, 명세표 줘봐라.”

  “허걱!”

  조카는 고기를 무척 많이 좋아하였다. 거기다 돼지고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비싼 쇠고기에 오리고기며 한주에 한번씩 통닭에다 과일, 간식까지... 그러다보니 우리 부부의 2주간의 부식비보다 조카가 혼자 먹는 한주간의 내역이 더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우리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저푸른 초원과 멸치가 뛰어노는 음식을 주메뉴로 삼는데 비해, 조카는 우리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음메~ 하는 고기음식을 오늘도 즐기고 있다.   

  ‘우와 무지하게 먹는구나.’

  한참 먹을 나이이고 거기다 머리를 많이쓰는 시기이기에 오죽 하겠나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조금씩 속이 쓰려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누님이 생활비 준다고 할때 받을걸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간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남자 조카가 몇 달간 함께 있다보니 아무래도 마눌님 입장에서는 내색은 하지않지만, 조금은 불편한 입장이 늘어나는것 같다. 올해 푹푹찌는 한여름의 계절에도 집안에서 옷도 시원하게 입지 못하고, 벗어 재끼는 속옷 빨래가 산을 이루고 있지만 고3인 상황인지라 오히려 눈치를 보아야하니.

  ‘아무리 조카지만 외숙모 도와줄겸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도 개고, 빨래를 하면 본인 속옷도 널고 그렇게 해주면 안되겠니.’

  ‘본인 먹은것은 개수구에 담구어 놓고 설걷이도 하고 좀그러지.’

  ‘야행성이면 다냐. 밤늦게까지 온사방에 형광등은 다켜놓고...’

  이런 마음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입이 근질근질해졌다. 거기다 엎친데덮친격으로 조카가 타지에서 공부하는게 안되어 보였는지 9월에는 누나까지 나와서 한달남짓을 함께 생활하게 되었으니.


  보다못한 나는 드디어 0월0일 날을 잡아 조카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재윤아 공부하는 것은 잘되어가니?”

  “괜찮아요”

  “삼촌 집에서 생활하는게 불편하지는 않니? (침을 꼴딱 삼키면서)”

  “......”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해주는 밥을 먹다가 외숙모가 해주는 밥을 먹다보면 조금 입맛에 맞지 않는게 있겠지.”

  “......”

  “거기다가 혼자 방쓰다가 함께 공간을 사용하니 너도 여러 제약성이 있을꺼고.”

  “......”

  “네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외숙모도 직장생활하는 바쁜 와중에도 그래도 너한테 많이 맞춰줄려고 노력을 한단다. 부족한게 있고 너나름대로도 불편한게 있겠지만. 그래도 있는 동안만이라도 편하게 있었으면 한다. 삼촌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조카랑 있어보겠니. 알았제.”

  “예.”


  다음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오자 마눌님이 구석으로 나를 호출한다.

  “승호씨. 재윤이에게 뭐라 그랬어?”

  “왜?”

  “아니, 안하던 행동을 해서.”

  “어떤 행동?”

  “이불도 개지않던 애가 이불도 개고, 외숙모 힘들다고 설걷이도 도와줄려고 그러고...”

  “그래!”

  우회적으로 말을 하였는데 역시 나를 닮아서(?) 그런지 머리는 똑똑한 모양이다. 무언가 느끼는 것도 있는 모양이고. 고3인 신분이지만 다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윤아.”

  “네.”

  “휴식도 취할겸 음식물 버리러 가는데 잠시 같이 안갈래.”

  “네.”

  물쓰레기를 조카랑 나랑 하나씩 정답게 들고 가는도중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재윤아.”

  “네.”

  “너도 앞으로 장가가면 와이프한테 잘해주거래이.”

  “어떻게요?”

  “나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집안일도 거들고 이렇게 음식물 버리는 것도 도와주고. 원래 여자들은 작은것에 감동하거든. 그리고 이렇게 가끔씩이라도 도와주면 메리트도 있고.”

  “어떤 메리트요?”

  “밥상이 달라지기도 하지.”

  “아하!!!”


  지방 출장가는 일정이 목요일과 겹치다 보면 나는 조카에게 전화를 건다.

  “재윤아.”

  “네. 삼촌.”

  “오늘 재활용 버리는 날인데 알제?”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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