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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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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4일 21시 12분 등록

시드니에 살 때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가끔 여름이면 해질 무렵 바닷가로 놀러 가서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넘실대는 파도를 구경하고는 했다. 시드니는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굳이 유명한 해변가가 아니더라도 바닷가는 어디라도 무척이나 아름답고, 그런 만큼 그 곳에서의 시간들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하나가 바다 낚시 중에 사고를 당한 한인 교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말을 이어 받았다. “참 안 됐어. 여기까지 와서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엉겁결에 한 질문이었다.

 

뭐가?”

 

여기까지 와서 죽은 게 안 됐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이어지는 질문에, 친구는 왜 뚱딴지 같은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여기서 죽는 거 아니야? 사고로 죽은 건 안됐지만, 여기까지 와서 죽어서 안됐다는 표현은 말이 안되잖아.” 내 설명이었다.

 

아하. 그런 뜻이었어? 난 또 뭐라고. 그러게. 내가 왜 말을 그렇게 했을까? 몰라. 모르겠어. 뭐 이렇게 좋은 나라에 와서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그런 뜻이었겠지. 대충 넘어가.”

 

아마 친구는 정말이지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그렇지가 못했다. 그 즈음 나는 심한 향수병에 걸려 있었기에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끝도 보이지 않는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바다가 더 이상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 오히려 진한 청색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 바다들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내가 이 나라에서 죽으면 어쩌지…?’

 

여름이 갈 무렵. 바닷가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린 이후로, 갑자기 죽음이란 단어가 나를 엄습해 왔다. 그 곳에서 죽으면…? 생을 마치면…? 무엇보다 너무 쓸쓸할 것 같았다. 어쩐지 너무도 크고 넓은 남태평양 바다에 버려져서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흘러갈 것 같았다.

 

갑자기 작고 아름다운 산들과 바다조차 품 안에 들어올 듯한 우리나라가 너무도 그리워졌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왜 그렇게도 간절히 한국을 그리워하는지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한국을 향한 향수병이 처음 걸리기 시작한 것은 아마 대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모든 친구들이 졸업과 함께 이 나라, 저 나라로 흩어지며 다시 외톨이가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 곳에서 몇 년을 지내면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거의 연락이 되지 않고, 연락을 해도 대화가 겉도는 걸 경험한 나로서는 대학교에서 사귄 몇몇의 친구들을 의지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 전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 삶에서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물론 헤어질 때는 다들 꼭 연락하고 지내자라고 말하지만, 국적도 전부 다른 우리는 더 쉽게 멀어지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고 있었다.

 

역시나 대학원 졸업 무렵, 우리는 또 다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계획이나 또 다른 곳으로 좀 더 공부를 하러 갈 계획들에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짐에 대해선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시드니라는 곳은 수많은 유학생들이 오고 가고, 또 많은 이민자들이 흘러 들어오지만, 그런 만큼 언제 누구랑 헤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곳이다. 그 곳의 역사가 그러하고, 그 곳의 땅 기운이 그러해서, 그 누구도 헤어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기에는 오고 가는 삶이 너무 척박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닷가에서 어느 이름 모를 교포의 허망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여서일까..? 어느 날 문득, ‘헤어진 내 친구들은 일 년에 몇 번이나 나를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금도 기억의 파편이 점점 희미해지는데, 그들은 내가 죽으면 얼마 동안이나 날 기억해 줄까…?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삶이 휑하게 느껴졌다.

 

그랬다. 내가 시드니에서 맺고 있는 관계들은 모두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관계들뿐이었다. 오늘은 친구라 부르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내일은 이미 훌쩍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관계들은 너무나 약하고 불투명해서 꽃을 피우기는커녕, 뿌리조차 내릴 수가 없었다. 내 향수병의 실체는 다름아닌 뿌리를 깊이 내리고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관계에의 열망, 관계에의 목마름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에게 있어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아마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대단한 업적을 꼽을 지도 모르겠고, 또 누군가는 타인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이타적 삶을 최고라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게 삶의 의미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내 작은 사랑으로도 기쁜 누군가와 삶을 나눌 때, 그 때 난 살아 있는 존재의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수 십 년 전에 죽은 유명한 음악가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영웅들. 혹은 일생을 남의 위해 희생한테레사 수녀님.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의미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회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네들의 삶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산 사람들보다 더 의미 있게 이어져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평범한 민초들의 삶은 언제 빛이 날 수 있을까…?

 

다름 아닌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별이 될 때, 그 때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 생각한다.

 

관계, 내 안의 우주와 상대방의 우주가 만나서 소통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통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가슴 속에 따뜻한 별이 되어 존재할 때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더 이상 이름없는 민초들이 아니다. 그 때 우리 모두는 고유한 이름을 지닌, 누군가의 삶에 의미가 되는 아주 소중한 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내 삶의 의미>이다.

 

그래서 욕심이 난다. 단절되는 관계 속에서 삶의 허망함을 처절하게 경험해 보아서인지, 이제 다시 한 사람, 두 사람 사랑하는 이들이 생기면서, 두 번 다시 그들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울컥한다.

 

내 삶의 이유는, 나의 존재 이유는 내 안에서만 정의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이유는, 나의 존재 이유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빛이 난다.

그리고 그 관계의 깊이와 밀도에 따라 내 삶도 그 의미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늘 방황하며 헤메였습니다.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제가 안착할 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제 앞에 스스로를 나무라 일컫는 스승이 나타나셨습니다.

왜 이제서야 나타냤나고 원망스레 묻고 싶은 제 마음을 아시는지

스승은 제자가 준비된 그 때 나타나신다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의 나무는 뿌리가 깊고

그 깊은 뿌리로 주위에 한 그루, 두 그루 숲을 이루어가고 계셨습니다.

 

편합니다..

아득히 평화로움이 밀려옵니다..

이젠 이 곳, 이 나무에, 이 숲 속에 둥지를 틀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무니까요..

 

누군가, 그대가 살아 있음을 감사히 여기는 단 한 사람이 지구 위에 존재한다면

누군가, 그대가 미소지으면 함께 행복해하는 단 한 사람이 지구 위에 존재한다면

누군가, 그대가 울고 싶을 때 살며시 어깨를 빌려줄 단 한 사람이 지구 위에 존재한다면

당신은 충분히 존재할 이유가 있습니다.

 

관계란 우리의 존재 이유를 찾아주는 마법의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하나의 생명체로서 기억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억되어질 때, 그 때 비로서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제 저와 동료들은 스승님과 함께 이 관계라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마법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아름다운, 꿈결 같은 저희들의 제국을 지켜나갈 지 조용히 탐구해보겠습니다..

 

혹여라도 이 가을 쓸쓸함을 느끼시는지요

혹시라도 이 가을 허무의 언저리에서 멤돌고 계시는지요

그러시다면, 낙엽의 바스락거림이 그대의 삶마저 건조하게 만들기 전에

저희와 함께 이 여행에 동참하시는 건 어떠실런지요..

 

여기 이 곳에

겨울이 와도 춥지 않도록

마른 나무 가득 모아 따듯한 불길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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