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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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러니까 6살때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를 가장 흥분시켰던 것은 내 또래가 나를 부르는 “철이야 놀자”였다. 엄마가 나를 유혹하는 소재로 사용한 것도 친구들과 놀라면 밥을 다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잘 안 먹던 밥도 후다닥 먹어치우고 쌀가마니 속에 잔뜩 있는 내 딱지를 들고 친구들에게 뛰쳐 나갔던 것이다. 당시에 우리 동네에서는 딱지치기가 유행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디서 만들어 왔는지 다양한 종이의 딱지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최고는 달력으로 만든 딱지였다.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종이의 강도가 높아서 왠만큼 딱지치기를 해도 잘 찢어지지 않아 비슷한 달력으로 만든 딱지를 딸 때면 흥분해서 엄마에게 자랑하곤 하였다.
7살 때 “철이야 놀자”의 소재는 망까기였다.
당시에 최고의 망까기용 돌은 차돌이었는데 단 하나의 이유는 강해서 남의 돌이 내 돌을 쳤을 때나 내가 쳤을 때 쉽게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망까기의 핵심은 한쪽발로 몸의 중심을 잡고 상대의 돌을 자기의 돌로 맞추는 데 있는데 놀이를 하다보면서 내 몸도 중심감각이 생기고 그 조그만한 망을 맞추려 하다보니 집중력이 높아지는 학습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즐거운 놀이었다.
8살 때 드디어 제대로 된 놀이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짬뽕”이었다. 야구 글러브나 야구 배트없이 손으로 치고 손으로 받는 놀이였다. 그래서 공이 말랑말랑한 고무로 만들어져 있다. 왜 “짬뽕”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게임의 규칙은 야구와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짬뽕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여야 하고, 자기가 칠 순번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이 필요한 것이다. 6살이나 7살은 제 성질이 있어 짬뽕놀이에 끼면 게임 자체를 망가트리곤 한다. 9살 형들이 짬뽕게임을 하자고 하면 그것은 컸다는 것을 인정 받는 의미였다.
순수했던 그 시절 나에게 목적이나 이익관계 없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최초의 방법을 경험하게 한 것이 바로 ‘놀이’였다고 생각한다. “같이 놀고 싶다” 라는 말처럼 다정하고 솔직한 말은 없어 보인다. 그 관계함에 있어 ‘놀이’라는 것이 서로간의 입장을 이해하게 해주기도 하고, 서로간의 품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놀이’가 더욱 중요한 것은 긴장을 풀어주고 창조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그 창조적 도구로서 ‘놀이’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가장 유치할 때 가장 창조적일 수 있으며, 가장 순수해질 때 같이 놀고 싶어진다.
“놀이에는 분명히 목적이나 동기가 없다. 놀이는 성패를 따지지 않으며, 결과를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상징화되기 이전의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느낌과 정서, 직관, 쾌락을 선사하는데, 바로 그것들로부터 창조적이 통찰이 나온다. 놀이는 우리 자신만의 세계와 인격, 게임과 규칙, 장난감, 퍼즐을 만들게 하여 지식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 새로운 과학과 예술이 가능해진다”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보면 13가지의 창조적인 생각도구들 중 ‘놀이의 힘’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이런 놀이의 힘을 대체로 긍적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놀이’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기존의 관념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어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상대를 창조적이고 본능적으로 대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어 보인다. 관계에 대한 컬럼을 쓰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관계를 명명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복잡해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호한 관계를 둘러싼 관념속에서 유일하게 관계라는 어지러운 관념의 숲을 빠져나오게 해줄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 그것이 바로 ‘놀이’가 아닐까 한다.
“놀이와 인간”의 저자 카이와는 ‘놀이의 힘’을 이렇게 정의한다.
카이와는 놀이의 정신이야말로 문화 발전을 위한 창조력의 원천이며, 인간이 가진 어떠한 문화적 습관보다도 놀이만큼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서 상호간의 일체감과 해방감 그리고 즐거움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관계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
참 그럴싸 하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정의가 더 ‘놀이’를 생생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옛말에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 못 이기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가 일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고 관계를 더욱 즐겁게 맺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바로 ‘놀이’하듯이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적 정보기술(IT)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직원들은 미국 본사를 ‘캠퍼스(PLEX)라고 부릅니다. 마치 대학이나 공원처럼 일하기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캠퍼스 부근에는 수영장, 배구장, 당구장, 맛자지룸 등 각종 휴식시설이 있고, 사무실도 직원들이 원하는 대로 개인공간을 꾸밀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구글이나 MS는 쾌적하고 창조적인 환경에서 근무해야 일의 능률이 오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에게는 놀이는 하나의 생활방식이 되었습니다. 그 자체가 긴장을 풀어주어 일을 더욱 즐길 수 있게 해주며, 그 즐거움이 관계하는데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겠지요. 마치 조금 답답하면 간단하게 농구나 당구게임을 치고, 기분전환을 하여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줄 것이겠죠. 무엇보다 사는 맛이 있을 겁니다. 이런 기업들에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겁니다.
창조적 소수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도 창조적인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기업의 그것처럼 최고의 시설과 혜택을 준비하여 창조적인 소수를 얻을 수는 없겠지요. 우리에게 가능한 대안은 ‘놀이’ 즉 실생활속에서 어떻게 창조적으로 놀 수 있는가? 그런 노는 문화를 어떻게 창조해 낼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창조적 소수를 얻는 가까운 방법일 것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서로간의 재능을 나누어 창조적인 일을 도모하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업무 수행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고 싶었던 것, 또는 관심이 있어서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던 것, 아님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있는 것등을 나누는 ‘놀이’를 하면 되는 것이죠. 그 ‘놀이문화’를 만들면 그것은 조직이며, 창조적 회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볼까요?
아버지와 아들이 어느 섬에 놀러갔다고 합니다. 아들은 하룻밤 묵고 심심하다고 집에 가버리고 그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외딴 섬에 손님으로는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미대를 졸업한 그는 혼자 그 섬에 있기가 심심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고 합니다. 섬을 보니 볼것도 많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매우 큰데 비해 유원지로 여겨져 술병만 나 뒹그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아다고 합니다. “쓰러져 썩어 가는 나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없을까? ” 그림 그리는 제자 두명을 불러 장군들 얼굴이나 그려볼까? 해서 100명의 장군 케릭터를 그려 강 건너 공예품 만드는 이를 찾아 100인의 장군상을 썩은 나무에 새겼는데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이 섬에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 이 섬을 새롭게 재활용 해보자해서 만들어낸 것이 오늘날의 남이섬입니다.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자 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작업공간을 무료로 대여해주어 그들의 상상력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과 그 자신도 섬에 활기를 넣어보고자 하는 아이디어에 온통 매달려 보냈다고 합니다. 즐겁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겠죠. 이런 뜻을 잘 알았는지 사진을 찍으러 온 전문 사진가가 무료로 자신의 자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남이섬에 기증하기도 하고 섬을 찾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는 등 즐길 수 있는 무대 즉’놀이 공간’을 만들어 주었기에 자연스러운 참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는 무일푼으로 남이섬의 사장이 되었는데 오늘날의 남이섬은 한해 100만명이 넘게 오고간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 되었지요.
놀수 있는 문화를 만들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습니다. 서로 참여하고싶고 그 파장효과는 엄청날 수 있겠지요.
다음 컬럼에는 '놀이'를 통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구체적 사례를 연구해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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