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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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영
경영학과의 첫 만남은 대학 진학 때부터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남들과 다름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누구 밑에 속해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내 스스로 경영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외우는 것 일색인 여타 사회과목들과 달리 정치경제 시간에 접하는 경제학의 곡선들과 이론들은 이해하면 바로 외워졌고, 무척 재미있었기에 경제학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학문인 경영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자네는 왜 이 전공을 선택했나?’라는 면접관 교수님의 질문에 ‘제가 우리나라를 IMF 체제에서 구해내겠습니다’라는 당돌한 답변을 했던 나는 그러나 합격 통보를 받고도 그 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수능에서 약한 과목을 망쳐 낮춰간 학교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는데,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도록 해준 그 결정은 어쩌면 지금껏 내가 한 결정 중에서 가장 잘한 결정일지도 모르겠다.
1년 재수를 거쳐 내가 진학하게 된 곳은 모 여자대학. 불과 10여 년 전이지만 요즘과 달리 경영학과나 언론정보학과보다 영어영문학과가 가장 인기 있었다. 당시 나는 영어의 맛에 푹 빠져 있기도 했고, 영문과 출신으로 언론사에 취직한 사람도 많다고 하기에 영문과에 진학했다. 당장 실용적인 지식에 대한 목마름은 틈틈이 다른 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보충했고, 영어학과 문학을 전공하며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인생을 통틀어 밤새도록 재미있게 공부하고 우등생으로 대접받은 것이 그 때가 처음이니, 그 후의 나의 삶에도 그 체험은 굉장한 바탕이 되어 준 시간이다. 방학 때는 국립중앙도서관 논문관에 찾아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학위논문을 썼는지를 찾아보고 놀았는데 (정말 몇 년 전만 해도 인터넷으로 논문 검색을 할 수 없었던 것을 나조차 믿기 어렵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학문으로서의 무엇을 이토록 갈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무척 감사하다. 대학시절 경험이 없었더라면 대학원에 진학하지도, 어떤 어려운 공부에 도전할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 관심분야가 너절하게 널려 있었던 터라 무언가 하나를 콕 집어 그곳에 평생을 바쳐야 하는 대학원 진학을 잠시 미루었다. 사회를 넓게 볼 수 있다는 직업을 통해 내가 정말 추구할 가치를 찾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결국 3년차에 나는 제대로 공부하겠다며 일반대학원 경영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이 시대의 학문’이 되어버린 경영학에 멋도 모르고 발을 풍덩 담근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 들어가 결국 해내겠다던 공부를 나는 제대로 마치지도 못한다. 내가 하겠다는 공부가 기존 경영학에 반기를 드는 ‘이단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리 해멀의 <경영의 미래>를 읽으면서 기존 경영학을 고수하려는 교수님들의 편견과 맞서 싸우려면 내가 능력과 용기를 더 갖춰야 했음을 시인해야 했다. 계속 공격을 당하면서 초기의 열정(35%)과 추진력(20%)이 형편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경영의 미래, 73페이지) 가치를 창조하는 데 기여하는 55%나 결핍된 나는 창의성(25%)과 지성(15%), 근면(5%)을 갖추었더라도 결코 50% 이상을 넘을 수 없었다.
“몇 년 전을 돌이켜보면, 이른바 경영대학원은 학과기능을 물리적으로 분리했다. 마케팅, 경제, 재무, 전략, 인적자원에 관련한 학과는 강의실이 따로 주어졌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대학원은 학제간의 협력을 증진하려 애썼다. (경영의 미래, 204페이지)”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경영학에 대한 실망도 나를 대학원에서 빠져 나오게 했다. 게리 해멀은 몇년 전까지 경영학 내 각 학문의 분파가 나뉘어 있고, 이를 통섭하려는 노력도 부질없었다고 했지만, 한국의 현실은 지금이 현재진행형 같았다. MBA 프로그램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반대학원에서는 같은 ‘경영학과’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신기할 만큼 재무, 회계, 생산관리, 마케팅, MIS, 전략과 매니지먼트(인사조직, 국제경영) 등의 분야는 동떨어져 있었다. 쓰는 방법론도, 관심분야도 서로 다른 채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너무 없었고 너도나도 각 세부 전공 분야가 최고라는 자부심에 빠져 있었다. 과연 이것이 경영학인가? 서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다른 부분을 더듬으며 이게 경영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 풍토를 보며 나는 회의에 빠졌던 것 같다. 게다가 이 게리 해멀 같은 독특한 사상가를 만나지도 못했으니, 나는 편견과 맞설 힘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 사람을 알게 되니, 어찌나 반갑고 또 고마운지. 머리 좋고 능력 있는 누군가는 100년 묵은 경영학의 유령의 망령을 깨부수는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계에서 약간 벗어나 그런 일을 해주고 있는 그가 있어 참 다행이다.
재수 시절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극한 상황에 다다랐을 때 무거운 책임감을 진 장녀인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장사를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친척들은 ‘너는 장사를 하면 다 퍼 줘서 망할 사람’이라며 제발 대학에 가라고 뜯어말렸다. 지금 나는 다시 생각한다. 장사는, 사업은, 경영은 약고 계산적이고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사람만이 잘 하는 것인가? 내가 공부하고자 했던 기업들은 착해빠져서 소비자를 감동시키고, 그래서 공동체와 더불어 함께 잘 되는 이상적인 기업이었다. 그 사람들의 편견이, 나를 지금까지 이렇게 혼란스럽게 했구나. 더 이상 경영학은 쳐다보지 않겠다고 등 돌리고 나온 것이 올해 초였다. 하지만 나처럼 경영학의 기존 편견을 잘 알고, 실망을 크게 느낀 사람일수록 게리 해멀이 말하는 경영의 미래를 함께 탐색하는 사명을 더 크게 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주에 알게 됐다. 경영학은 멀리 있지 않다. 나도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개인 브랜드, 1인 기업으로 곧 나설 수 있고, 언젠가는 내 사업체를 운영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경영의 혁신에서 멀리 있지 않다. 게리 해멀이 이 책 <경영의 미래>에서 촉구하는 경영의 획기적인 혁신 방안과 전략을 나 스스로 고민하고 정리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나 같은 몽상가에게 이런 사명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이 책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웃긴 제목 때문에 읽지 않았던 게리 해멀의 전작 ‘꿀벌과 게릴라’를 펼쳐들 생각이다. 근로자 개인에게 주는 이야기였다고 하니 무척 기대된다. 피터 드러커가 발견했고, 게리 해멀 역시 극찬했던 경영학의 현자 메리 파커 폴렛의 책도 찾아볼 것이다. 여성으로서 기업에서 일한 적도 없는 그녀가 어떻게 그런 통찰을 가질 수 있었는지 연구해봐야지. 자크 아탈리가 관여하고 게리 해멀이 언급한 그라민은행과 유누스 총재에 관한 두 권의 책도 당장 읽어보아야겠다. 행동을 촉구하는 이 책이야말로, 나에게 필요했던 그 한 권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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