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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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의 저자 아기 다다시는 한 사람이 아니라 남매의 필명이다. 40대 후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출신의 누나 기바야시 유코다와, 네 살 아래 잡지 편집기자 출신의 동생 기바야시 신이 그들이다. ‘신의 물방울’은 우리 나라에서 150만 부가 팔렸다. 그들의 만화에 등장한 와인은 순식간에 동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파워는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에서도 먹혔다. 2007년 가을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캐릭터를 프랑스산 햇와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병에 붙여 내놓자 애초 목표한 84만 병이 바로 매진된 것이다. 당사자들도 예상치 못한 인기였다.
한 블로그에서 그들의 와인셀러 아파트를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아파트 전체가 적정온도로 맞추어 졌으며, 지진이 일어나도 끄떡없는 ‘와인 전용 아파트’를 두 채나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나라에도 자매가 같이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시나리오 작가 중에는 ‘홍자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두 팀이 있다. ‘쾌걸 춘향’, ‘환상의 커플’을 썼으며 막 ‘미남이시네요’를 시작한 홍정은, 홍미란 자매와, 청소년드라마 ‘반올림’과 ‘베토벤 바이러스’를 쓴 홍진아, 홍자람 자매가 그들이다.
자매나 남매가 마치 한 사람처럼 마음을 맞춰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참 좋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 마음 속에 ‘혼자’가 아닌 ‘둘’, 혼자 뚝 떨어져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이 더 우월하다는 전제가 있는가 보다. ‘바보’를 뜻하는 영어 단어 idiot의 어원이 ‘혼자 지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내게는 공통의 관심사로 맺어져 무언가를 공동으로 창조해내는 사이에 대한 환타지가 있다.
형제가 아닌 부부인 경우에는 그 부러움이 더욱 커진다. 원로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가 생각난다. 그들이 만든 노래는 아름답고도 의미심장한 가사와, 그 가사에 딱 어울리는 곡조로 해서 완벽한 시너지효과를 이루었다. ‘진정 난 몰랐네’, ‘킬리만자로의 표범’, ‘사랑의 미로’, ‘그 겨울의 찻집’과 ‘타타타’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그들은 정말 주옥같은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아내가 가사를 써 놓으면 남편이 곡을 붙이는데 어쩌면 그 곡이 아내의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한 것이어서 번번이 놀랐다고 양인자 씨는 말한다.
이선미, 김기호 씨 같은 부부 시나리오 작가도 있다. 그들은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지만 ‘발리에서 생긴 일’을 쓸 때의 일화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작업을 할 때 컴퓨터를 한 대 사용한다고 했다. 한 사람이 글을 쓰다 자리를 비키면 다른 사람이 거기에 이어서 글을 써 내려 갔다고 하니 이심전심을 넘어 일심동체가 아니고는 나올 수 없는 집필방식이라고 하겠다. 평소에 스토리 전개에 대한 숱한 토론이 받쳐주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한 가지 장면에 30가지 옵션이 있을 정도였다니 말이다.
나는 그들 같은 부부가 인생 최고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부부나 부모라는 사회적인 역할 외에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공유하고 의미 있는 창조물을 공동생산해낼 수 있는 남녀는 그야말로 영육을 넘나드는 최고의 소통을 맛본 사람들이 아닐까. 더구나 함께 만든 창조물이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기까지 했으니, 그들은 하늘이 내린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부가 되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도 그 절반은 추구할 수 있으리라. 사랑 못지않은 우정으로 깊이 연결되었으며,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요, 서로를 밝혀주는 횃불이요, 서로를 세워주는 정신적 지주로 만나 지속적인 성장을 자극하고, 공동의 관심사가 있어 지적 문화적 성과물을 공동생산할 수 있는 사이!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