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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6일 02시 42분 등록

 

 

그는 노인이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삶은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는 삶들 가운데 하나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고령으로 깊숙이 들어간 삶, 그리고 우리에게는 마치 수 천년 전에 이미 흘러가버린 것 같은 그런 삶이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아마도 어린 시절이 있었으리라. 가난하고, 어둡고, 무언가를 추구하며,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시절이 있었으리라. 지나가버린 모든 시간들, 기다림과 외로움의 시간들, 의심의 시간들과 궁핍의 긴 시간들을 여전히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 노인은 고독이라는 어두움을 사랑했다.

모든 태양은 심연의 어둠속에서 떠오르듯이 그는 어둠속에서 성장하였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삶으로부터 풍요와 충만함이 생성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어떤 만남을 갖게 된다. 그것은 그의 어둠속에서 핀 욕망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미래에 위대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의미하는 만남, 그렇게 친근하고 감동적이며,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예언 하나를 담고 있는 어떤 만남을 가졌다. “ 바라보아라 신을 그리고 모든 것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너는 위대한 사물들의 은총을 얻을 것이다.” 어쩌면 그 첫만남은 내면의 감정과의 첫 장면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의 길을 떠났다.

죽어가는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그의 감정의 동요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어린아이 눈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처음엔 호기심이 생겼다. 살아있는 또는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어떤 필요가 되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단지 호기심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며 신경이 닿는 감촉을 기억할 뿐이다. 처음 그 느낌 그 신선함에 매료되어 온갖 모든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름 없는 무수히 많은 것들에 그는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것들은 그에게 생명이 되었다. 그는 무수히 많은 돌 속에서 바다의 사연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이름없는 무수한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에게 보이는 모든 사물이 생명체였으며, 그 살아있는 존재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는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돌속에서도 바람, , 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바다의 언어들을 돌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돌을 바다가 보내 온 편지로 기억하였다. 그렇게 그는 사물의 심연 속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는 몽상가만은 아니였다. 만약 그가 몽상가였다면 그는 아름답고 깊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꿈, 아무도 보지 못했던 꿈을 이 사회속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의 조각의 언어는 육체였다.

이 육체,사람들은 육체를 빛으로 치장하고 여명으로 가득 채웠으며, 온갖 사랑스러움과 황홀로 애워싸고 꽃잎을 만지듯 육체를 어루만졌으며, 파도에 몸을 맡기듯 육체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러나 육체의 원래 주인은 조각이였다. 무형의 형체속에서 그는 유형의 의미를 발견해 내었다. 그것은 그의 언어가 아니고 자연이 품은 원래의 골격이였다. 그런 육체를 그는 끄집어 내고 싶었다. 그는 그렇게 무형의 형체의 본래의 의미를 그의 손을 통해 구현해 내었다. 그렇게 그는 세상과 관계를 가졌다. 그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는 자기 예술이 기본요소를, 말하자면 자기의 세계를 이루게 될 세포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면이었다. 그것을 차이를 말한다. 다양한 수없이 많은 면들의 집합이 육체의 표면에 존재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예술은 위대한 표면위에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이루고 있는 작은 양심들 그 면으로 이룩되었다. 그 수없이 많은 차이와 사연들을 모아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내었다. 그에겐 하나하나의 차이가 모두 소중하였다. 그의 내면에는 오만이라는 것은 없었다. 오직 빛과 진실 그것에 비쳐지는 작은 면들의 집합체만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들이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렸다. 오직 무수히 많은 살아 있는 면들만이, 삶만이 존재할 뿐이었으며, 스스로가 발견한 표현수단은 바로 이러한 삶을 향하여 진행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삶의 면면을 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그 조합을 통해 예술은 탄생하는 것이다.

 

그 노인은 로댕이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자 싶은 것은 로댕이 죽은 사물에서 새 생명을 끄집어 내듯이 우리는 우리들에게 의미가 되어 주어야 하며, 새로운 생명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면들의 연속이 결국 예술품이 될 수 있듯이 수없이 다른 차이점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작품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 관계라는 의미를 해석해 보고 싶다. 서로 다른 삶, 서로 다른 차이속에서 단 하나의 생명력있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삶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살이 있음의 이유! 살아가야 할 진정한 이유! 그것을 일깨워주는 손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가의 손이며, 창조적 소수를 얻는 자의 손일 것이다.

 

그는 극히 사소한 곳에서 삶을 포착했고, 그것을 관찰하며 추격하였다. 그는 변화가 일어나는 곳, 삶이 머뭇거리고 있는 곳에서 삶을 기다렸으며, 삶이 달려갈 때는 뒤따라가 잡았으며,삶이 어떤 자리에서나 똑같이 위대하고, 똑같이 강력하고 매력적인 것임을 알았다. 육체의 어떤 부분도 무의미하거나 하찮지 않았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릴케의 로댕 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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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10.26 02:48:25 *.206.74.51
그대 아무래도 새로 탄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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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별이
2009.10.26 02:52:25 *.206.74.51
"수없이 다른 차이점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작품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 명언이다.

요즘 그대 글을 읽다 보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는 글의 위력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참으로 대단해^^

그나저나 오늘은 3시도 안되서 일어났넹!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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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별이
2009.10.26 03:09:13 *.206.74.51
요새 우리 명석 선배님 말쌈처럼 새벽장에서 자주 보는 듯~ ㅋㅋㅋ
그럼 계속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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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0.26 02:57:07 *.126.231.227
잠 안와서 밤샘했어요.^^
이제 막 숙제하고 있는 중이라~ 고생좀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새벽에 뵈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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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10.26 04:47:29 *.108.48.236
오늘은 나도 새벽장에 왔네^^
근데 오늘 혁산의 글을 보니,
창조적 소수는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일깨우는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글 같이 새롭고 낯설고
시어가 바다처럼 넘실대는 글이 놀라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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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0.28 04:52:36 *.126.231.227
자신이 누리고 있는 공간에 동시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이와 함께하고 싶고 함께한다는 생각이 드는 그 관계가 바로 그 창조적 소수와 맺는 관계가 아닐까..라는 말씀 대단하신데요~
존재하지 않는 이가 융이 말하는 그림자라면 그것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는 말인데
그 의미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군요? 놀랍습니다.
그렇게 보면 창조적 소수는 영혼의 울림에 귀기울여 모인 진실한 사람들인 것이죠.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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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10.26 10:28:57 *.122.216.98
변경연 여기 칼럼난은 창조적 소수를 얻는 공간이 되는군.
'릴케의 로댕을 읽고 있는데 릴케의 문체가 너무나도 멋져
여러번 읽으며 인용문구를 응용하여'


내 삶에서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고 싶은 멋진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몇번 있는데,
그때 나는 뜨겁게  그사람에게 다가가고자 열망했던 것 같아.
책을 읽다가 좋은구절을 그 사람에게 읽어주고 싶고,
빨갛게 변한 나뭇잎을 잘 간직했다가 편지 봉투속에 넣어 보냈지.
릴케의 시를 읽다가 릴케처럼 편지를 보내고,
데미안을 읽을 때는 나는 싱클레어가 되고, 데미안을 그리워했지. 내가 보낸 편지 속에는 나와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혼재했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공간에 동시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이와 함께하고 싶고 함께한다는 생각이 드는 그 관계가 바로 그 창조적 소수와 맺는 관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

혁산의 칼럼에서 좀 멀리 와 버렸는데,
자신의 삶을 이렇게 글로 풀어서 전해지는 것을 보고 관계가 생각나서 다른 소리 좀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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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0.26 05:09:26 *.126.231.227
릴케의 로댕을 읽고 있는데 릴케의 문체가 너무나도 멋져
여러번 읽으며 인용문구를 응용하여
습작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조적인 소수를 얻음에 있어
너무 평이한 관계를 제가 거론하고 있는 듯 하여
좀 더 극적인 시적 언어의 은유적인 표현이
창조적인 관점에서의 관계의 온도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자유롭게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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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10.26 12:18:30 *.12.21.60
이 사람이야 말로 비이성적이구나.ㅎㅎ
철. 너도 로댕의 손을 가졌다.  컬럼을 읽는 동안 손길이 스치는 줄 알았다. 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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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0.28 04:59:12 *.126.231.227
내가 로댕이 될려면
지금부터 하루에 16시간동안 20년을
인체의 구조와 뼈마디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수련해야 하고
무엇보다 홀로 작업실에서 배고픔과 고독을 견뎌내야 하는데~ 그렇게 20년을 보냈다 해도
사물의 심성을 자기화하여 표현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나 안할래요. 자신도 없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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