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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일 11시 42분 등록

칼럼 29 - Amor fati ,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그제는 비가 내렸다. 우산 없이 가을비에 흠뻑 젖으며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손님 덕에 옥체(?)를 보존할 수 있었다. 손님들은 먼 길을 달려왔으므로 우리 얼굴도 보고 하루 밤을 쉬어 가려고 했다. 나는  양미간에 힘을 주며 매우 집중해서 니체를 읽고 있었기에,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을 불러 일으킨 핸드폰을 잠시 미워했다.

한손에는 연필을 들고 , 한손에는 청소기를 들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잠시 망설이다가 후다닥 벼락 청소를 시작했다. 역시 벼락치기의 명수답게 실력이 빵빵하므로 우리 집은 금방 깨끗해졌다. 폭탄 맞은 집 같던 거실은 폭풍후의 고요함으로 바뀌었다.

비를 가르며 먼길을 달려온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나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환대(호스피탤리티)라는 말은 옛날에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적개심(호스틸리티)으로 드러나는 것에서 변화해 나온 것이라는 해석은 의미 심장하다. 그러나 나는 성서에서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환대했던 옛날 이야기의 그 “환대”를 참 좋아한다.

어쨋든 손님이 오고 우리는 좋아하는 “대봉”을 가운데 두고 둘러 앉았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이 큰 홍시는 우리들 중 두 사람이 집중적으로 먹었다. 나도 그 두명 중의 한명이다. 나머지 세 사람은 단감은 먹지만 홍시는 아니란다. 나는 이런 행운을 또 좋아한다. 홍시를 실컷 먹은 우리는 세상사는 얘기를 조금 나누다가 니체 얘기를 시작했다.

손님 중 한명은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터라 말없이 니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 사람은 수학을 무척 좋아하고 또 잘해서 고교시절에는 교내 최고의 수학자였었다. 친구들이 일본 입시문제집에서 뽑아다가 내미는 문제들을 식음을 전폐하고 풀어대던 숫자귀신이었다. 반면 그는 국어에 약해서 사지선다의 국어문제는 자기가 보기에 정답이 두 개, 세 개, 아니 다 맞는 것 같아서 택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하소연 한 적이 있다. 어쨌든 니체를 안주삼아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청춘에도 니체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신은 죽었다> 로부터 시작해서 <비극의 탄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 사람을 보라>.... 니체와 저절로 줄긋기가 되는 작품들이지만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받아들여졌는가?

니체는 사람들이 항상 자기 바깥에 가치를 두고 그것에 복종하며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우리의 삶이 오직 죽음을 준비하는데 쓰여지는 것을 보며 그는 “신은 죽었다!” 라고 외쳤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비웃었다. 후대의 사람들도 비웃었다. 지금도 비웃음을 당한다. 심지어 화장실 벽에 씌여져 조롱을 당하고 있다. 신은 죽었다(니체). 니체 넌 죽었다(신). 너희 둘 다 죽었다(청소 아줌마).

니체는 39세가 되던 해에 요양을 하고 있던 바닷가, 춥고 비가 많이 오던 악조건 속에서 지내던 2월 어느날 황홀감을 경험한다. 그때부터 그는 미친듯이 글을 썼고 <차라투스트라>의 제 1부를 완성한다. 단 열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10년의 내공 수련을 쌓은 후 한달음에 도시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의 선물을 받을 사람은 없었다. 그는 시장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시장은 가치를 규정하는 장소이다. 시장에서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화폐와 교환할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 원래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이 시장에서 비싼 값을 받는 것이 아니라 비싼 값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고귀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왜 그것을 가치있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시장을 통해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한결같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더 많은 화폐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그들 스스로 삶의 목표를 정하지도 못하며, 진정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남들이 행복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자신들의 행복이라고 여기며 남들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자신들에게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조롱받고 비난당하면서 자기가 찾고 있는 것은 군중이 아니라 친구라고 말한다. 그는 친구들 만을 사랑하며 친구들의 사랑만 받겠다고 한다. 서로를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사랑 너머에, 사랑을 지속하면서 그 열망을 공유하는 우정이 바로 그것이다. 우정은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사랑이다. 그 선물은 기쁨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 자신이 어느 날 제 몸에서 일어난 충일함을 못이겨, 저 하늘에 뜬 태양처럼 제 것을 모든 것들에게 내놓기 위해 선물을 들고 온 자였다.

그러나 위대한 사랑은 그 자신이 사랑할 사람까지 창조한다. "벗을 원한다면 그를 위해서 그와 기꺼이 전쟁을 일으킬 각오라도 해야한다."  진정 벗을 사랑한다면 벗과의 전쟁을 통해 그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를 쓰던 당시 자신과 동류의 사람들을 일컬어 ‘삶의 친구들’ 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삶을 사랑한다면 그것과 친구가 되어라.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스스로 창조한다. 삶을 아름답게 재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니체는 삶에 대한 사랑을 “Amor fati 운명애”라고 불렀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하는 자가 있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어야 하며 많은 변신들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삶에 쓰디쓴 죽음이 허다하게 있어야 한다. 창조하는 자 스스로 다시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산모가 되어야하고 산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명쾌하게 설명했다.

“진실로 나는 백개나 되는 영혼을 가로질러 나의 길을 걸어왔으며 백개나 되는 요람과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나의 길을 걸어왔다.”

사랑은 그 대상을 아름답게 창조해 주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은 삶을 아름답게 재창조 해야 한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진정한 긍정은 과감한 실천을 요구한다. "물어 뜯어라! 네 삶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을 그대로 두지 말고 재 창조하라.” 긍정은 그렇게 말한다.

모든 비난과 두려움을 용기로 마주하여라. 차라투스트라의 용기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 그것이 생이던가. 좋다! 그렇다면 한번 더!”

니체는 정말 대단하다. 파시즘에 이용당하고 모든 제도권 철학 노동자들에게 오해받고 차라투스트라가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거의 없었다. 출판업자들은 니체를 괴롭혔고 결국 제4부는 자비로 출판해야 했고 그 발행 부수도 40부에 불과했다. 그의 고독은 그렇지 않아도 태생적으로 고독한 그를 짓눌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기다렸고 “최소한 300년을 기다리지 못한다면 내 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고 말하며 때를 기다렸다.

니체는 1960년대 프랑스의 철학자들에 의해 재해석 되기 시작했다.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엔 1961년에 발표된 하이데거의 니체, 1962년에 발간된 들뢰즈의 니체, 이어 데리다, 푸코의 니체들이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60년대 후반에 간행된 <비판적 니체 전집>의 발간도 니체이해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전집은 니체의 미간행 유고들을 꼼꼼하게 검토해서 시기 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니체 연구자와 니체주의자가 오늘도 어느 하늘아래서 차라투스트라를 읽고 있을 것이다.

나는 비록 숙제를 위해서 이 책과 접속을 다시 시작했지만 내게 닿은 인연의 끈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피해다니던 들뢰즈의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니체를 우리 시대에 맞게 이해하고 싶어서다. 노마디즘, 천의 고원..... 

나는 또 깨지고 피멍이 들어가며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위버맨쉬로 내 앞에 다가온 이 거인과 맨주먹에 연필 한자루로 인터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아, 사랑스런 내 운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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