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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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사부님
사부님은 유치해지셨습니다. 분명 당신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호랑이 프로젝트 첫 번째 모임 때의 일화 하나를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변경연 홈피 활성화>라는 주제를 두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누군가 댓글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사부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셨습니다. 그 때, 이전부터 댓글의 중요성을 피력(!)한 것으로 보이는 (그러나 사부님께 거절당한 ^^) 3기 연구원이 웃으면서 사부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부님, 제가 예전에 댓글 쓰기 운동 하자고 말씀 드렸더니 그 땐 ‘야, 꼭 그런 치졸한 방법을 써야겠냐?’고 말씀하셨잖아요.” 사부님도 방그레 웃으시며 대답하셨지요. “내가 그랬냐? 그 때 내가 덜 유치해서 그리 말했나 보다.”
사부님의 유치함은 고상한 이상을 추구하는 당신만의 방법론이었습니다. 성과로 향하는 과정을 한껏 즐기시는 당신의 행복론이고, 인간살이의 현실에 대하여 초월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 당신의 인간관이라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여유를 만끽할 줄 아는 감수성이라 느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유치함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듯 했습니다. ‘유치’라는 단어는 그렇게 제게 퍽 매력적이고 깊은 의미를 담은 개념으로 다가왔지요.
이런 사부님의 유치함은 제게는 익숙치 않은 것이었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의 유치함은 5기들에게는 익숙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유쾌해졌고 기뻤습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고상함을 함께 지녔기 때문이고, 고상함과 유치함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계셨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유치한 말과 고상한 말투가 만날 때마다, 그 유치한 말들이 고상한 철학 위에 서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범접하기 어려운 고상함이 유치함의 옷을 입고 나의 마음 속에 다가올 때마다 저는 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런 사부님의 유치함은 3기 연구원 이후 사부님 곁에 자주 있지 못했던 저에게만 낯선 모습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2년 전의 사부님은 유치함보다는 고상함 쪽에 계셨습니다. 고상함은 쉽게 다가서기 힘들게 하는 면이 있는데, 사부님의 고상함은 달랐습니다. 당신께서 지니신 ‘생각의 깊이’와 ‘욕망을 건드리는 특유의 글쓰기’는 저를 매료하였고, 사부님이 지니신 고상함을 추구하게 만드셨습니다. 사부님의 고상한 가르침 중 하나는 ‘유혹’에 관한 것이었지요. 다들 아시지요? 나무는 수동적이지만 향기를 내어 곤충을 끌어들여 번식에 성공한다는 말씀, 그러니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찾아가는 영업보다는 끌어들이는 유혹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말씀 말입니다. 내향적인 이들에게 샘물 같은 청량한 표지였습니다. 제게도 깨달음을 준 말씀입니다. 2007년 1월 회사를 나와 1인 기업 강사로 지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DM 메일을 발송하거나 컨설팅 업체에 나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의 말씀에 깨달음 얻은 뒤로는 그저 나의 전문성 강화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지내왔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정확하다고 신뢰했기에 퍽 즐거운 발걸음이었습니다.
호랑이 프로젝트가 공지되었을 때, 저는 호랑이의 이빨과 발톱을 더욱 날카롭게 하는 프로젝트인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 모임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들어보니, 호랑이 프로젝트는 자신을 알리는 법에 대한 연구를 한다더군요. 처음 저의 반응은 그것이 왜 필요한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이 아닌가, 그리고 이 생각은 다름 아닌 사부님께 배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호랑이 프로젝트는 어흥, 하고 크게 울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방법은 연구하는 팀인데, 그것이 제게는 퍽 어색하고 두렵고 왠지 모르게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말하자면, 저급한 마케팅 방식이라는 생각이었지요. 유치하기도 하구요. ^^
호랑이 프로젝트 1차 미팅을 한 후, 저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부님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고상함에 유치함을 곁들임으로 보다 편안하고 현실적이고 사람다운 길을 걷고 계셨습니다. 그렇다고 이전의 품위와 고상함에 손상을 주지도 않는 그 절묘한 경계에서 뛰놀고 계셨습니다. 지나친 고상함에는 사람답지 않은 허영과 위선이 깃들기 쉬운데, 사부님께는 그런 것들의 정반대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솔함과 편안함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이제 사부님의 유치함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 생각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흥분된 마음으로 1차 미팅을 보냈었지요.
저는 정말 신이 났습니다. 사부님의 고상한 제안을 따르다가 이제 다른 가르침이 없나, 하여 곁에 섰더니 새로운 가르침을 던져 주신 것입니다. 아니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를 배우면 그것을 가지고 한참을 혼자 놉니다. 사교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홀로 노는 일이 참 신납니다. 사부님께서 던져 주신 장난감들은 아주 쓸만한 것이어서 갖고 놀기에 아주 좋은 것들입니다. 유치함이라는 장난감도 그럴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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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기 연구원 이희석입니다.
저는 2007년에 3기 연구원으로서 사부님,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공부하고 어울렸습니다. 연구원 수료 후에도 몇몇 연구원 선후배님들과 연락하고 종종 만나며 지냈습니다. 본업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변경연에서 추진하는 저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변경연을 위한 일에 손 걷고 뛰어든 적은 없었네요. 이런 (다소 불필요한 듯 보이는) 말까지 하는 까닭은, 제가 경계에 선 연구원이었음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연구원으로서 부지런히 연구하거나 글을 올려 연구소에 도움을 준 적도 없지만, 연구소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어중간한 경계에 서 있었던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경계에 서 있는 연구원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일차적으로 그 분들에게 전하는 글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