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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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은 몸으로 하는 체스다.
기호와 개념의 언어는
태어나서 배운 것이지만
몸짓은 백 만년 동안 진화한
인간 본연의 언어다.
그러니, 보라!
생각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를 보라
그리고
소리없는 목소리를 들으라!
“헤이, 헤이, 헤이~ “
그가 선수를 불러 세웠다.
“머리는 마스크를 쓰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는 장식품이 아니란 말야... 관찰을 할 수 있는 도구라고 … 그것이 너의 검을 움직이게 하는 거야,! 팔의 근육이 검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란 말야… 팔의 근육은 네 머리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가 계속 이어서 말했다.
“장기를 둔다고 쳐… 우리는 장기 알을 옮길 줄 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판을 읽고, 상대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대응할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무엇을 옮기고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알 수 있단 말야… 지금 우리는 장기 알을 옮기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거라고…기술이 아니라 전술을 훈련하고 있는거야.”
그가 선수들을 보면서 말했다.
“전술이란 무작정 검을 들고 설쳐댄다고 해서 느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전술적인 훈련을 할 때는 아주 예민해졌다. 그리고 수많은 예들을 들어서 설명하고 선수들이 깨달을 때까지 반복했다. 전술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먼저 이해하고 그리고 깨달아서 자동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응용 즉 진정한 이해가 이루어져 생각 없이 조절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한다고 치자. 기술은 가위, 바위, 보 라는 손의 모양이다. 그리고 무엇을 낼 것인가는 전술이다. 무엇을 낼 것인지는 선택이다. 선택의 배후에는 항상 목적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 내야 돼, 상대가 무엇이라는 동작을 '왜'하는지를 알아야 된다. 그래야만 적절한 대응을 할 수가 있다. 동작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 동작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알았나?”
일상을 사는 우리의 의식활동은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순차적인 시간이 요구된다. 즉 ‘생각하는 나’가 있고 ‘행동하는 나’가 있다. 그러나 펜싱경기에서는 그런 의식활동은 전혀 쓸모가 없다. 지각하고 언어로 바꾸어 말하는데도 0.6초가 걸리는데 1/30 초~1/35초 사이에 벌어지고 150밀리 세컨의 시간차 밖에 없는 펜싱경기에서는 생각은 오히려 행동을 저해한다.그래서 생각을 하면 시간이 걸리게 되고 항상 실제로 필요한 타이밍에 행동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을 하면 항상 생각에 쫓기게 된다. 동작을 보지 않고 의도를 보고 있어야 하고 그것도 생각없는 생각으로 보아야 한다.
상대가 왜 그렇게 하는지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결정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연습이 아니다. 단지 선택과 행동으로 직접 이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한 훈련이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 이 전의 느낌이고 그 느낌이 직접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곧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공이 온다. 움직여!’ 가 아니라 공이… 넘어오는 것을 느낄 때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이 움직이고… 몸이 공을 받으면서 생각이 ‘받고’ 가 된다.’ 알았나.? 우리는 ‘그것을 반박자 빠르게’ 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그 것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다. 판 전체를 읽고 상대의 능력을 읽고 상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시시각각이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반응이다. 학문에서는 그것을 직접지각(direct perception)이라고 한다. 계단을 오를 때 계단 높이를 보고 판단하고 발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계단을 보는 순간 이미 알고 오르는 것이다.
생각은 하나의 눈, 하나의 손(행동)만을 가졌지만 몸은 천개의 눈 천개의 손(행동)을 가지고 있다. 생각은 주의가 집중되고 있는 것 하나에만 집중되어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만 몸은 열려있는 세계의 모든 것에 대응한다. 전술은 바로 그 하나에서 모든 것으로 주의를 열어 젖히는 것이다. 그것을 개방적 주의집중이라고 한다. 곧 생각을 멈추되 의식은 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는 훈련을 할 때는 감각의 구분과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 설명을 하고 의도와 기술이 일치하는 반복훈련을 시키지만 연습경기에 들어가면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단서들을 제공할 뿐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설명은 하지 않는다
경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략적인 의도들이 시스템을 형성하고 흐름을 이룬다. 때때로 경기가 불리해진 선수들은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 경기를 중지하고 신발끈을 고쳐 맨다. 그 때 선수들이 신발 끈을 모두 풀고 다시 한 매틉씩 조여들어가 마지막으로 끈을 묶고 일어선다. 그 때 선수는 어떤 결정을 하고 일어서는데 경기의 흐름 전체와 신발끈을 고쳐 매는 선수의 전체적인 흐름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를 알수 있다.
선수의 행동은 생각과 연결되어 있어서 생각의 변화에 행동도 함께 움직인다. 밥을 먹어도 긴장해서 주의가 산만한 선수들은 숟가질이나 젓가락질이 산만하고 망설인다. 생각이 빨라지면 숟가락질이나 젓가락질도 빨라진다. 여유가 있는 선수들은 정상적인 식사속도 보다 느긋하다. 선수의 평소의 습관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억하고 있으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운동화 끈을 풀어서 다시 매는 선수는 “(아… 뭘하지)”하고 있을 때는 신발끈을 묶는 움직임이 머뭇머뭇 끊어졌다 이어졌다 한다. 그러다 선수가 “(좋아.. 그거야!)”라는 결정이 이루어지면 신발 끈을 묶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발끈을 묶는 태도가 단호하면 비장한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일상처럼 묶으면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런 예처럼 선수의 경기 외의 행동 곳 곳에는 선수의 마음의 흐름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선수가 사용하던 기술적인 움직임과 전술적인 판단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숨겨져 있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시합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보다가
"쟤는 공격할거야,!” 라고 그가 옆에 선수들을 보면서 예측을 하자 마치 지시라도 내린듯이 시합중의 선수가 공격해 들어갔다.
옆에 있던 선수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얼굴에 쓰여 있어!”
“네~에?”
“그건 농담이고… 사람은 의도를 품으면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훌륭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다. 얼마나 정교하게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있느냐의 차이다. 그러니 관찰력을 키우고 경험을 통해서 확신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너희의 직관을 만드는 것이다.”
“네~에~”
“그래서 펜싱은 몸으로 하는 체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