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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3일 11시 33분 등록

 

30 평생 한 번도 자각하지 못했던 ‘나는 동아시아인’이라는 걸 해외에 나가서야 뼈저리게 깨달은 이후,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동아시아 문화권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음을 지난 칼럼들을 통해 고백한 바 있다.

 

신기했던 것은, 서양문화에 더 일찍 노출된 싱가포르, 홍콩에 사는 중국계 아이들도 내가 자신들보다 고작 몇 살 더 먹었으며 (자신들과 달리) 사회생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부담을 느끼고 윗사람 대하듯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춰 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서로 이름만 딸랑 부르는 사이에 굳이 저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니, 그건 바로 ‘유교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전형적인 행동 양식에서 하나도 비켜감이 없었다.

 

4~5년 전인가? 스스로 정한 ‘고전 읽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논어>를 읽었다. 장마다 무릎을 쳤지만, 뭐 놀랍도록 새로운 것은 없었다. 그만큼 나는 철저한 유교문화권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순자>도 마찬가지였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전혀 막힘 없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익숙한 문화여서이리라.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을 새기며 나가다 보니, 내가 중요시해온 어질고 선한 사람이 되기, 어떤 상황에서도 예를 갖추기, 학문을 중요시하고 성인군자같은 도덕성을 지니기 등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유교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문화적 토양의 침투가 이렇게 깊었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자각하지 못한 동안 그곳에서 빠져 나오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도 심히 부끄러워졌다. 이래서 학문은 완성이 없고, 배움은 계속되어나가야 하는 것이구나. (이 가르침 역시 유교의 단골 소재이지 않은가. 대체 어찌 벗어날 수가 없다.)

 

또 이건, ‘고전판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실에서 답답했던 마음을 <논어>에서 풀어주었던 것처럼, <순자>에서도 ‘성인(군자)는 이래야 하는데, 세상이 따라주지 못하는 구나’하며 사람의 마음을 달래 주는 묘한 면이 있다. 이러니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선비들의 교과서가 되고 사상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유가의 정통인 <맹자>도 읽고, 노장사상도 읽어나가면서 보아야겠지만, 당장 내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혹 유교사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재점검하는 것. 특히 내가 첫 책을 쓰려고 하는 결혼, 부부간의 관계와 관련한 부분은 유가에서도 중요시하는 부분이며, 서양 문화가 깊이 들어왔다고 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유가의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혼합되어 있는 문화 가운데 어떤 것이 유가의 가르침에서 현대적으로 더 해석될 필요가 있는지,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수용해야 하는지를 가려내는 눈이 필요하다. 나조차 젖어 있는 문화이기에,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의 장단점을 잘 추려 새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 용기를 바라 본다.

 

IP *.71.9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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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16:44:18 *.250.117.172
그 날 우리 수업 끝나고 커피 마시며 사부님께서 <순자>에 대한 말씀을 하셨던 거 같은데... 그치...?
그 이후 사자 프로젝트 하면서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하셨는데, 어쩐지 그 날 이후로 연결될 수 있는 대화인 것 같아서 적어볼께.

"공자는 말이야. 어느 시대에서든지 "고품격 처세술"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어. 그에 비해 노/장자는 세상에서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 때 내가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지."

난 이 말씀을 듣고 무릎을 쳤거든.
그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의 한 평생 삶이 어찌보면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것과 동시에 거기에서 탈피하여 꿈이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의 순환 속에서 빚어지는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서 결국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회환에 몸부림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자연히 따라서 떠오르더라구.

어려운 문제겠지. 동서고금 모든 철학자들과 현자들이 매달렸던 문제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 와중에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양 사상"이라는 문화 말이야. 이건 어쩌면 <공자의 논어>에 더 치우쳐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야.
진한 시대를 거치며 통치 이념을 자리잡은 유가 사상이 그대로 우리나라에도 전수되면서, 우리에겐 공자와 노장자라는 빛나는 양대 산맥이 있지만, 정작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는 뿌리깊은 사상은 거의 유가사상에 치우쳐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말이야...

현실을 굳이 감옥으로 비유하자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가두고 있는 감옥이 어떤 감옥인지 잘 알아야 하겠지만, 거기에는 결코 감옥 열쇠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통치 이념인데 열쇠를 품고 있을리 없잖아..

만약 너의 책에 유교사상까지를 그 철학으로 내포할거라면, 노장자 사상이던 니체든 또 다른 무엇이던 반대 급부에 있는 사상 하나쯤은 비교검토하면서 "이 시대의 결혼이란 현실"이란 너무 제도적으로만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까지 짚어보는 건 어떨까...? 넘 방대해지나...?

ㅋㅋ 네가 유교사상을 배경으로 검토해본다고 말하니 퍼득 떠올라서 마구 야그를 풀다보니 엄청도 길다. 예원아 대충 걸러서 들엉~~~ 이 언냐 수다가 쫌 심해~~~ ㅎㅎㅎ

무튼, 네 책 말이야. 시기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너라면 밀도 깊은 좋은 책 만들것 같아.
결혼을 하고, 이제 곧 엄마가 되는 우리 예원이. 계속해서 멋진 모습 기대할께.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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