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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3일 12시 02분 등록

칼럼 32 - 페르세포네의 겨울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옛날에는 만물이 계절의 구분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성장의 여신이며 곡물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풀밭에서 꽃을 꺽고 있다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의 눈에 들게 되었다. 신들이 으례 도덕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 하데스도 바로 땅 밑에서 솟아올라 그녀를 신부로 삼아 어둠의 왕국으로 갔다.

 

땅 위에서는 데메테르가 딸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여신은 슬퍼하면서 곡물이 자라는 것을 돌보지 않았고, 초록색 들판은 누렇게 변하다가 결국 말라붙어 버렸다. 공기는 차가워졌고 낮은 짧아졌다. 이상한 변화에 놀란 사람들은 겨울이 다가오자 최대한 곡물을 모으려고 뛰어다녔다.

 

마침내 데메테르는 딸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게 되었고 곧 땅을 관장하는 신 제우스에게 가서 하데스에게 딸을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올림푸스 산꼭대기에 살고 있는 제우스는 그녀의 아버지이자 모든 신들의 왕이었다. 그렇지만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살고 서로 힘을 나누어 가진 신들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형제였고 그와 비슷한 힘을 갖고 있었다. 또 하데스는 자신만의 길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우스가 중재에 나섰고 마침내 하데스는 왕비를 풀어주기로 했다.

 

모든 것이 해결되자 다시 영원한 여름을 기대했다. 하지만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어둡고 작은 지하세계의 정원사가 페르세포네가 지하에서 석류씨를 몇 개 먹었다고 증언했고 그녀가 땅으로 돌아올 계획은 모두 무산 되었다. 죽음의 세계에서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절대로 삶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페르세포네는 더 이상 불사의 몸이 아니었고 씨앗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듯이 그녀의 몸 속에는 죽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바뀐 상황은 우여곡절 끝에 중재가 이루어져서 페르세포네는 1년 중 아홉 달은 지상의 어머니 곁에서 보내고 나머지 세달 간은 지하세계에서 보내는데 동의하였다. 그녀가 하데스와 함께 보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간 동안 지상은 어둡고 추워진다. 곡물은 성장을 멈추었고 사람들은 이 이상하고 새로운 계절인 겨울을 지내기 위해 곡물을 모아 저장했다. 이 어둠의 계절의 끝이 오면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올라왔고 곡물은 다시 싹을 틔워 성장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묵상을 해 볼 수 있는 자료다. 모든 전환은 우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인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윌리엄 브리지스는 말한다. 그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건들의 연속인 변화는 상황적인 것이고, 반면 변화에 의해 동반되는 낯선 상황을 내면화하고 적응하는 것은 심리적인 것으로서 전환(Transition)이라고 정의하고, 3단계의 전환 프로세스를 거치게 된다고 하였다. 그 전환의 시작에 과거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즉 과거에 형성된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모든 변화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원하던 것이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우울하다. 왜냐하면 뒤에 남겨두고 와야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하려면 반드시 그 전의 생을 마감해야 한다.” 아나톨 프랑스의 말이다.

 

“난 죽음이 두렵다. 죽음이 닥쳤을 때 나는 그곳에 있고 싶지 않다.” 우디 알렌의 말이다.

 

겨울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두렵고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쩌면 전에 미처 받아들이기도 전에 들이닥쳐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이고 체념해야 했던 상실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 되살아나서 과잉반응을 보이게 되는건지도 모른다.

 

끝냄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화, 슬픔, 공포, 실망, 혼돈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정들은 상실의 증후로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보자. 혹시 과거의 짐을 내려놓지 못한 채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거나, 새로운 출발점을 미처 챙기지 못한 채 끝이 닥쳐왔던 경험은 없는지... 과거에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한 변화의 순간들을 기억해보자. 한때 내가 살았던 옛날 집의 내부를 떠올리듯 속속들이 기억해보자.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는 것은 때늦은 작별 인사, 편지, 혹은 안부전화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미련이나 후회같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쌓여있는 누군가에 대한 미해결 감정이나 연민일 수도 있다.

 

상실에 대한 보상은 모든 종류의 변화에 기본이 되는 원리이다.

 

윌리엄 브리지스는 그 자신이 작은 세미나와 소그룹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쌓인 경험들을 그 자신의 체험에 접목하여  끝--중간지대--다시 시작 이라는 전환(Transition)의 과정을 공식화하였다. 지금 여기에서는 그중에서 끝을 말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겨울을 지내면서 과거의 자신을 죽여 땅에 묻고 매장하는 통과의례를 치름으로서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예절을 치루어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그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떠 올랐다.

 

자주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되고”라는 백창우의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나, 이렇게 정말 겨울 앞에 홀로 서있어 보고 싶은 열망은 없었다. 그냥 입으로 노래하고 이성으로 그림을 그렸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잔잔한 마음에 불러일으킨 물결이 오래 멀리멀리 가려나보다. 뒤따라 젊은이 같은 실험정신도  올라오고 “함께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몇몇의 얼굴도 떠오르니, 페르세포네의 겨울을 연출하고 그 경과를 써내려 가보면 칼럼 45 즈음에는 페르세포네의 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지,  전환를 기대해본다.

 

 

우리가 시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끝이고, '끝을 맺는 것' 은 시작이다.
끝은 우리가 출발한 그곳이다. -T. S. El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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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48.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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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16:57:29 *.250.117.172
샘, 이 글을 읽는데요 문득 제가 어느 날 출장을 가려고 짐을 싸면서 든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때 무쟈게  일을 마니 시키는 회사를 다닐 때였는데 본사에 가서 연수를 받고 와야 하는 일이
제게 떨어졌어요. 해외 연수니만큼 즐거워야 하는데 전 미치게 힘들었거든요 (연수가기 이틀전에 알려주시는 지사장님 센수땀시 ^^:::)

가기 전에 그 며칠분의 일을 다 마치야 했고, 한국 시장 상황을 전부 정리해서 레포트도 만들어야 했고
주요 클라이언트들에게 사정 말씀드려야 했고 등등.
비행기에서 잘 각오로 이틀을 꼬박 밤을 새우고 벌건 눈으로 짐가방을 싸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급작스레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하고 그렇게 황망히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겠구나...'

그때가 아마 아빠가 돌아가신 지 얼마 후라서 제가 아직 "죽음"이란 녀석과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계속됬어요. "때론 내가 아무리 준비가 되지 않았다 발버둥쳐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이 무조건 순응해야 하는 일들도 있겠구나. 그 때 당시 연수가 그러했고, 더 크게는 죽음 역시도 그러할 수 있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가능하면 평상시에 내 삶을 가벼이 하자. 늘 준비하자."
매사 뒤늦게 허둥대거나 후회하거나 마지막 순간에 집착하거나 후회하는거
참 슬픈 일인것 같아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일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수는 없겠죠... 저 역시 그러하고요...

어리지는 않지만 비교적 일찍 친부의 죽음을 경험한 저로는
그 때 당시는 그 사건이 제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었어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외적 환경에 의해
우리네 삶이 얼마나 뒤바뀔 수 있는지 뼈속깊이 체험했다고 할 수 있죠...

샘. 세상에는 오늘 이 시간에도 그런 이들의 눈물이 있을거에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따듯한 글 꼭 쓰시리라 믿어요.
제가 좀 더 일찍 샘의 책을 만났더라면 좋았을걸요~ ㅎㅎ

끝까지 응원할테니, 힘내세요.
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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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범
2009.12.02 23:48:22 *.248.91.49
수희향의 글을 읽으니 한 생각이 떠올라 와.

어느해 여름에 우리가 신샘따라 바이칼로 졸업여행 갔을때
함께 갔던 젊고 수려한  청년 하나가 여행을 마치며 소감을 말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는 화가나서 충분히 슬퍼해드리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제밤에 이 넓은 땅을  통곡장  삼아 한껏 울었습니다....."

이 청년은 그해 사법시험 2차를  마치고 함께 길을 떠났었어
그리고 그해 합격했고 연수원을 마치고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있어.

대학 동기이던 여자친구가 고시생일 때 결혼해서 공부 뒷바라지를 했었지.
그 예쁜 아내가 임신중이어서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한  남편을 대신 보냈어

통곡의 장!
우리가 밤새워 노래부르고 노는 동안  그는 바이칼 호수에 나가 혼자 울고 있었지.
실컷 울고나니 후련하다고.... 하던 그 맑은 눈빛과 표정이 생각나네.

누구든 가슴에 사연하나 품지 않은 사람은 없잔아, 그치?
구비구비 이야기가 흐르고,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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