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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0일 11시 36분 등록

칼럼 33 - 그림책의 힘

  마음속에 묻어둔 상실에 대한 아픔은 어느 때인가는 충분히 애도를 해주지 않으면 여러 가지 변환된 모습으로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죽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된 견해이다. 어른들에게 닥쳐오는 이별이나 상실감은 우리가 속을 내보이지 않도록 교양을 쌓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깊이 느껴보는 과정도 없이 그냥 지나보냄으로써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말은 땅에 발을 딛지 않고 10층 높이의 방에서 줄곧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를 읽었다. 우리에게 매우 알려진 이름이지만 우리는 호스피스, 내지는 죽음학 연구의 시조와 관련되어 단순한 줄긋기를 할 만큼 유명한 사람에 불과하다.

퀴블러 로스는 1926년부터 2004년까지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았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쌍둥이중 제일먼저 세상의 빛을 본 900그램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알프스의 소녀처럼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꽃과 들판과 눈과 얼음을 즐기며 살았다. 집에서 기르던 토끼 레비키를 저녁식사용 스튜를 만들기 위해서 정육점에 갖다 주어야 했을 때, 눈물로 헤어졌고 그녀의 가슴처럼 쿵쿵 쾅쾅 뛰고 있는 토끼의 가슴을 느꼈다고 한다. 토끼를 땅에 내려놓고 도망을 가라고 큰소리로 외쳤으나, 토끼는 떠나지 못했다.

이 일은 그녀가 정신과 의사가 되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하와이에서 워크숍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통곡을 함으로써 그때 미처 다 풀어놓지 못했던 상실감을 겨우 내려 놓을 수 있었다.

퀴블러 로스는 우여곡절 끝에 의사가 되었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정신과 전문의가 된다. 그리고 우연히 유럽으로 휴가를 떠난 지도교수를 대신하여 강의를 맡게 된다. 그때 그녀는 병원의 기계성, 과학성, 객관성, 냉정성에 아픔을 겪는 환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의과대학생들을 위한 강의에 죽어가는 16살의 환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준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될 사람들에게 생명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

입소문으로 알려진 퀴블러 로스의 관심은 결국 주위의 신학생들의 방문을 받았고 그들의 간절한 원에 의해 죽음 세미나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병원당국과의 마찰이 더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그러나 어린시절 자연과 동화되어 살았고 뛰어난 직관력으로 감정이입을 잘하는 퀴블러 로스의 재능은 그녀를 죽음학의 전문가로 일으켜 세웠다. 이 세미나의 과정과 함께 500명의 환자에 대한 인터뷰 기록이 1969년에 나왔다. 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On Death and Dying>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70년대에 이미 들어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도서관에서 퀴블러 로스를 검색했을 때 쏟아진 목록들을 보면 <죽음의 순간>,<인간의 죽음>,<죽음과 죽어감>이 모두 같은 내용의 책이다.

나는 임상심리를 공부하며 호스피스를 더 공부해보려고 이 책을 구해서 읽었다. 올해 봄부터 심도높은 변경연식 북리뷰를 하다보니 독서에도 여러 갈래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주말을 모두 바쳐야 하는 책읽기에서는 무언가 나의 말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죽음과 죽어감>을 다시 읽었고  또 그녀가 69세에 스트로크가 와서 부분 마비를 겪었고, 70세에 그녀의 일생을 기록한 이 <생의 수레바퀴>를 썼다는 것을 알았다. 자서전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나에게 친구가 되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현명한 안내자이다.  이미 읽었던 책들에 대한 이해도 사람을 알고 다시 읽으면 훨씬 더 깊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사흘을 세상과 접촉을 하지 않아도 무궁무진한 깊은 친구사귐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어쨋든 이렇게 다시 탐색하게 된 퀴블러 로스는 몇해 전 <인생 수업>이라는 책으로  한국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아마 집집마다 이 책 한권을 꽂아두지 않은 집이 없을 것 같다. 나도  크리스마스에 맞춰 나온 이 책을   입시가 끝난 청소년들에게 많이 선물했다. 이어 올해 나온 <상실 수업>, 이 두책이 모두 이른바 중풍에 걸려 마비 환자용 침대에 누운채 제자와 함께 써내려간 그녀의 작품들이다. 물론 죽음학의 선구자로서 임종환자와 말기 암환자, 불치병 에이즈 환자에 이르기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살아온 그녀였지만 그녀의 생 또한 굽이굽이 역경의 인생이었다.

영혼의 세계를 탐구하던 끝에 만난 그의 영혼의 인도자는 그녀에게 “눈물의 강에서, 시간을 친구 삼아라”는 조언을 해준다. 그녀 앞에 놓인 험하고 어려운 길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녀는 놀라운 열정으로 위에 언급한 책 외에도 20권을 더 남겨두었다. 그리고 학술상을 가장 많이 받은 여성학자가 되었다. 모두 현장체험에 바탕을 둔 자료들이므로 매우 가깝게 와닿고 성찰을 하게 하는 자료들이다. 특히 어린이 환자들과의 사례를 다룬 책은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공부가 될 것이다. 상실에 대한 감정은 솔직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에게서 그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유년기에 원하지 않는 이별과 상실에 직면하게 되지만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견디어 나가야 할 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닥터 지바고도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고, 토마스 머튼도 어머니의 죽음을 “어린이 접근 금지”란 병원의 방침아래 건물 밖에 혼자 남아 그 아픔을 겪게 된다. 지금도 우리는 아이들이 주검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한다. 가끔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임종을 마주쳤던 아이들에게서 “너무 무서워서 울었어요.”하는 말을 듣는데, 이때 어른들은 “길을 떠나시는 분이 정을 떼시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우리보다 죽음에 대한 준비교육이 앞서있는 일본에서는 이런 상실의 아픔을 그림책에 많이 담고있다. 어른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고, 또 남은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는 책들이다. 그 중 < 그림책의 힘>이란 책은 우리에게 어떻게 이 상실의 과정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야 하는지 잔잔하게 흐르는 물처럼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는 “그림책 속에서 소리와 노래를 본다.”는 주제로 임상심리학자와 어린이 문학가와 논픽션 작가가 함께 만든 책이다. 작가의 말을 한 부분 옮겨놓고 싶다.

“나는 인생 후반기야말로 그림책을 늘 곁에 두고 찬찬히 읽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그림책을 읽고 있노라면 정신없이 바쁘게 사느라 잊었던 소중한 것들, 유머, 슬픔, 고독, 의지, 이별, 죽음, 생명 등에 대한 생각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 야나기사와 씨는 어머니로서 여덟 살과 다섯 살짜리 아이를 남기고 여행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 옆에 있어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을 그림책에 담았던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이 세상을 살다간 흔적 이랄까, 증거로서도 이 그림책을......그래서 이 그림책이 완성되었을 때 야나기사와 씨는 뭔가 이루었다는 만족감을 얻고 고요히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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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2009.12.11 21:16:02 *.248.91.49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라는 그림책이 있어요.
2년쯤 전에 성곡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했던 그림이기도 하지요.
존 버닝햄....
아마 한번 알게되면 아마 오랜친구로 남을  그림책이 되어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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