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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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의 좋은 이별
미국의 여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저자조사를 하다 보니 그녀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았다. 나는 이내 그녀의 삶에 폭 빠져들었다.
이번주 북리뷰의 저자 조사에서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그녀는 유년기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우울증에 가까울 정도의 지나친 애도로 부모 양쪽을 잃은 것처럼 살아간다. 어린 소녀에게 죽음은 환상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무언가였고, 할머니가 겨우 네 살 된 그녀에게 죽은 아기의 시체를 보여줌으로써 그 환상은 더욱 커진다.
불행했던 과거, 늘 따라다니던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한 환경에서 그녀를 구출해주었던 것은 그녀의 남편 스탠리 베네딕트였다. 열렬한 사랑에 빠진 그녀가 어린시절의 아픔을 치유받고 아이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좋았으련만(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훌륭한 문화인류학자 한 사람을 보지 못했겠지만), 사랑과 결혼 생활의 행복감도 채 10년을 가지 못했다.
베네딕트는 대학 졸업 이후부터 인생의 목적을 찾아 무엇을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 온 사람이었다. 힘들어진 결혼생활의 돌파구를 찾던 그녀는 결국 운명처럼 인류학, 그리고 스승인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어, 당시로서는 늦은 30대의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다. 또 그 운명적인 만남으로 그녀는 전세계인에게 영향을 준 인류학자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운명적인 ‘이별’들이 있었다는 생각에 미쳤다. 최근에 <좋은 이별>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자꾸만 이 쪽으로 연관되어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죽음’으로 점철된 힘든 과거를 대학시절까지 이어온다. 그녀가 영문학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려고 계속 습작한 것도 자신의 깊은 우울함을 표출할 방법이 문학 말고는 달리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고리를 끊고 결혼을 했다.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맛보는 행복한 사랑의 감정에 그녀는 영원히 따라다닐 것만 같았던 과거와의 이별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행복한 가정에 안주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거기서 또 한 번의 이별, 즉 안주된 삶과의 작별을 그녀는 스스로 선언한다. 늦게 뛰어든 공부였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찾고, 새로운 사랑(마가렛 미드로 알려진)을 찾고 생명력을 복원해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녀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종종 생각날 것만 같다.
한 해를 마감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괜히 이 때만 되면 불안초조해지며 ‘올해는 과연 내가 얼마나 알차게 살았는가’를 반성하게 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불태워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연구원 생활 1년차 수련을 마쳐야 할 시기도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올해와 멋진 이별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했던 결과물들을 가지고 연구원 1년차 생활과 좋은 이별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남은 3주 동안 나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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