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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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 - 파자마 파티
지난 주말에 어른들을 위한 파자마 파티를 했다.
시작은 학령기 전의 아이들이 밤에 잠옷을 입고 모여서 그야말로 유치하게 뛰어노는 일탈로 시작된 놀이이다. 평소에는 정해진 시간에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역사책이나 동화책을 들으며 스르르르 잠이 들고, 또 때로는 손님이 와서 잠들고 싶지 않지만 잠속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울며 들어가던 침대에서 친구들과 함께 마음놓고 놀다가 베게가 다 터뜨려지게 신나게 놀다가 친구들과 함께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거의 환상에 가까운 놀이였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놀이는 있었다. 함께 모여서 공부하겠다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친구집에 모여 밤샘 수다를 하는 일이다. 물론 시험공부는 물을 건너간다. 그러나 이런 추억 하나 없이 어떻게 학창시절을 견딜 수 있을까?
우리 어머니는 장녀인 내게 유난히 엄격하셨다. 나는 친구를 무척 좋아해서 늘 4명이서 무슨 조폭 깍두기처럼 몰려 다녔었다. 그중에 한명은 의견 차이가 심하게 나서 싸운 뒤로 서로 말을 하지않는 긴장상태에서 순한 친구를 가운데 세우고 계속 같이 다녔다. 그러니 우리의 대화는 간접화법이다. 그래도 다 알아듣고 그 마음을 짐작해가며 몰려다녔다. 지금생각하면 속이 다 보이는 유치한 자존심이었지만, 그때는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고지를 점령하는 길인 줄 알았다.
이런 방법은 결혼 생활 초기에도 유유히 그 명맥을 이어갔다. 나는 조금 이런 방법에 이미 연습이 되어 있었기에 내가 늘 이기는 것 같았다. 승리의 비결은 밥을 안 챙겨주는 것이었다. 남편은 늘 따뜻한 밥을 원했기에 찬밥을 보면 자기가 찬밥이 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매우 유치하게 꽃다발을 받으며 화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이기는 것이 곧 지는 것인데...그때는 그걸 몰랐다.
어쨌든 우리 어머니는 내가 외박을 하는 대신 친구들이 집으로 오는 것은 허용하셨다. 우리는 이층 골방인 내방에서 무척 재미있게 그 밤을 보냈다. 우선 김치 볶음밥으로부터 시작해서 오징어 뒷다리, 오뎅, 가래떡은 계속 부엌에서 내방으로 공수되었고 우리는 하라는 공부대신에 실컷 수학 선생님 흉내를 내고 또 선생님의 별명을 불러가며 말의 향연을 벌리다가 같이 잠들고는 했다. 나는 형제가 많아서 사실 우리끼리 놀기에도 바빴는데, 내 친구는 무남독녀였다. 그 애는 늘 우리 집을 좋아했다. 나는 그 애처럼 나도 혼자였으면 좋겠다고 부러워 할 때가 있었다. 내 동생은 어느 날 우리가 함께 놀아주길 원해서 문밖에서 손가락으로 문을 뚫고 애원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시몬느 보봐르가 말하는 “노년”의 특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열어준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같은데 아이가 제법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율적으로 모임을 이끌어 나갔다. 나는 간식을 챙겨주고 안방에서 따로 또 같이 밤을 새워주었다. 그 파자마 파티의 반향이 너무 좋아서 아이 친구의 엄마들에게 감사전화를 많이 받았다. 이때는 앞, 뒷집에 양해를 구하고 또 대문에도 방을 붙였었다. 마침 윗집에 사시던 노교수님이 예븐 외제 사탕을 한병 들고 모시적삼을 곱게 입으시고 파자마 파티를 하러 오셨다. 이를 어떡허나.... .아이들의 놀이라는 설명이 빠졌었나 보다. 그래서 다음에는 그분을 위해 비슷한 파티를 열어드리겠다고 말씀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을 입어 두 번째 파자마 파티를 개최했다. 이번에는 애들도 단단히 준비를 하고와서 밤새도록 귀신놀이 하느라 괴성을 지르고 기운이 넘쳐서 집밖으로까지 진출하는 바람에 민원을 조금 사게 되었다. 지금도 사진으로 돌려보는 그때 그순간에는 아이들이 매우 드레시한 잠옷을 챙겨 입고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로 서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리고 남자라고 소외되어 혼자 울다가 심술을 부리다가 하던 동생 놈이 드디어 이 그룹에 받아들여져서 의기양양 기뻐하는 모습이 보인다. 누나들 사이에서 맨 끝, 꼬랑지에 뻘쭘하게 서있지만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빛나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다 커버린 지금, 다시 그리워지는 과거사의 한 장면이다. 파자마 파티는 일탈이다. 착하게 바르게 사는 사람은 이 놀이 자체를 이해 못할 지 모른다. 그러나 친구지간에도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는 놀이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창조놀이라고 시작을 해보려니 친구가 필요했고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하는 마음에 파자마 파티를 제안했다. 의외로 사람들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나는 더 강하게 유혹하기 위해서 조니워커 블루를 미끼로 내밀었다. 게다가 “짝사랑”을 주제로 매우 친절한 상담을 해주겠다고 초대장에 써 두었다. 젊은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주제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리고 짝사랑이라고 하면 내가 자체 경험에 의해 전문가 수준으로 갈고 닦았던 주제가 아닌가? 그래서 자신있게 유혹했다.
바깥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우리는 모두 10명이니 예상 5명을 넘어 성황을 이룬 것이다. 촛불을 켜서 분위기를 만들고 모두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긴장을 풀고나니 벌써 사이좋게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실 게임처럼 시작을 해서 잠이 쏟아질 때까지 각자의 짝사랑을 풀어나갔다. 비밀을 간직해야하는 원칙을 뛰어 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얘기들이 많았다. 오늘 못다한 얘기는 해가 떠오르면 다시 일어나서 계속하기로 하고 슬리핑 백 2개와 장의자 3개 그리고 안방을 무대삼아 모두 잠 명상으로 빠져들었다. 두 사람은 꼭두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중요한 미팅을 하러갔고, 우리는 배가 고플 때까지 잤다. 춥다고 커튼을 쳤더니 부지런한 아침 해는 벌써 솟아 저만치 떠 있었다. 가볍게 요기하고 북악산을 향하여 산책을 가기로 했다. 하루 밤사이에 우리는 전보다 조금 더 친해져서 많은 얘기들을 좀 더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공유하는 흥미를 찾아 다음 미팅을 계속해보면 어떨까하는 의견이 나왔다. 이미 자기의 강점으로 공헌하는 것은 모두 기본적으로 같이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후기가 올라오고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오고... 그냥 흘러가버렸을 시간을 되살려준다. 유난히 추운 이 겨울에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뭔가 좋은 일이 이어질 것 같이 활력을 주고 있다. 역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진실임에 틀림이 없다. 아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 책의 서문을 쓰는 새 숙제를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이 글로 우선 마감시간을 지킵니다.
글이 준비되면 칼럼을 바꿔 올려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아이처럼 유치함을 함께 즐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