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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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주택이다. 처음 그 집으로 이사를 온 게 초등학교 5학년, 내가 11살이었을 때였는데 그후 20년 가까이 그곳에 살다가 최근에야 회사 내 부서전배의 이유로 그곳에서 나와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어렸을 때 부터 상당한 길치였던 나는 새로 이사간 동네에 들어설 때마다 으리으리한 대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주택가에서 우리집을 종종 잃어버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와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11살 소녀의 눈에 이사한 집은 대궐처럼 넓어보였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한 옵션이지만 초인종을 누르면 실내에서 인터폰으로 사람을 확인하고 대문을 열어준다는 것이 신기했고, 수세식 화장실이 너무나 깨끗해 놀라웠다. 허구헌날 사소한 문제, 가령 '이불을 누가 개는가?' 등의 이슈꺼리로 말다툼했던 언니랑도 헤어제 내 방을 가지게 된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마당에 심어진 두 그루의 나무였다.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마다 '수확'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짜릿한 일이었다. 운치있는 두 그루의 나무는 우리집을 옆집과 차별되게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내 자랑이기도 했다.
그러나 멋진 자태의 나무의 외관도, 달디 단 열매의 과즙도 한 해, 한 해 반복되다 보니 눈에 익고 입에 익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나무 때문에 꼬여드는 지렁이, 거미 등의 곤충들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특히 내 눈을 가장 거슬렀던 놈은 거미라는 녀석이었다. 어두운 저녁, 대문을 열고 대추나무를 지나 현관으로 들어걸 때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에 얼굴이라도 닿을 때면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고, 무의식적으로 걷다가 거미가 내 눈앞에 턱 하니 나타나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고는 했다. 싫어해 도망가기는 하지만 무서워 감히 죽이지는 못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거미녀석들은 하나둘씩 계속 늘어나 나무에 자신들의 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마 그 날은 마음이 매우 안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랑 다퉜는지, 시험을 못봤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게 기억이 안나지만 나는 짜증이 난 상태였고, 나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집에서 나와 밖으로 나서는데 그놈의 거미 녀석이 또 거미줄을 나무 가지 사이에다 쳐놓은 것이 아닌가. 나는 심술이 났고 나무 곁에 떨어진 가지 하나를 잡아 거미줄을 모두 다 망가뜨려 놓았다. 거미녀석들이 다시 거미줄을 '재건'하지 못하게 모조리 '파괴'시켜버렸다.
그 날은 아마 밖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난히 그 즈음에 나 스스로에게 실망을 많이 하고, 괴롭히기도 많이 괴롭혔다. 그리고 새벽녁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데, 대문을 열고 나무를 지나 현관문으로 살금살금 걸어들어갔다.
그런데 어슴프레 비치던 새벽 빛에 내 눈을 확 잡아 끄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바로 새로운 거미줄을 짓는 거미였다.
분명 내가 모조리 다 없애버렸는데, 거미녀석들은 우직하게 파괴된 터전 위에 새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뭔가 모르게 가슴이 뭉클거린다. 내가 못하는 것을 저 거미들은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들, 왜 되는 일이 이리도 없을까 하는 불만들이 거미 앞에서는 한낱 투정에 불과했다. 거미녀석은 '언제 그런 생각에만 휩쓸려 있을래? 그냥 움직여. 다시 시작해'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거미가 내게 주는 인생에 대한 훈수였다.
거미를 그리도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이지만 부지런히 실을 뽑아내 거미줄을 만드는 그 녀석의 행동을 차마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멍하니 그 녀석의 행동을 관찰한 뒤 손에 든 나무가지를 다시 내려놓고 내 방으로 향해 그 울렁거림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종종 나는 내가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많은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할 때, 그날의 거미를 떠올린다. 그리고 거미가 내게 들려주었던 무언의 메시지를 떠올린다.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을 절망으로 고통스러워 하기 보다는 다시 움직여 나의 터전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ps. 지금 생각해보면 난 당시 정말 멜랑꼴리한 상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거미라는 녀석이 적어도 당시에는 나를 위해 잠시 하늘에서 내려온 '메신저'라는 생각을 했었으니 말이다. 혹은 내가 감수성이 굉장히 풍부한 아이였었는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심미안을 종종 꺼내 세상을 바라보았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역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종종 어린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게 된다.

나 어제 "위대한 침묵"을 보는데...아주 리드미칼하게 코를 고는 사람들이 많았어..
밤 늦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무슨 영화가 소리가 없어... ㅋㅋ ...그 배경 리듬 덕에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었지...
나도 조금 잠이 오려고 했거든..
인시에 일어나는 것.... 이틀 해봤어...
그랬더니 거실 창으로 아침 해가 뜨는 걸...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더라.
희열과 감탄과 감사.... 이런 단어들 다 다시 찾아왔어.
너도 한번 해봐....
회사에서 점심먹고 .... 책상에 엎드려... 잠시 오수를 즐기면......
혹시 거미가 훈수들러 또 내려올라나 .... ?
가능하면 토요일 저녁에 봤으면 좋겠다....관심이 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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