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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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지키는 깊은 산골, 귀신이 눈 뜨고 휙휙 날아 다니는 달이 휘헝청 밝은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밤이 찾아왔고 추늬는 윗목에 있는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어른들은 하나 밖에 없는 이웃, 윗집에 마실 가셨고 동생은 아랫목 이불 속에 있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마을엔 시계가 없었다. 닭이 울면 새벽이고 그로부터 얼마 있지 않으면 동이 트고, 해가 산허리를 돌아 지면 얼마 있지 않아 밤이 되는 것을 알 뿐이었다. 순간 머리 속은 온갖 생각이 빠르게 스쳐갔다. 집으로 뭔가가 달려들면 어떻게 해야지? 들고 막아 설 것은 무엇이지? 눈말 굴려 방안을 살펴 보았다. 언니니까 내가 용감하게 나서야 겠군….
비명는 엄청 컸고 이런 일은 첨이었기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무슨 소린지, 알기 위해 온갖 신경을 문밖으로 보내고 있었다. 긴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추늬는 동생이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움직이는 순간, 또 외마디 비명이 들렀다. 추늬는 그제서야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며 이불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추늬와 동생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다. 이불 속에서 내다 보이는 엉성한 창호문 밖은 어찌나 밝은지 그것 조차도 더 겁이 나게 만들었고 문고리를 걸지 못함이 너무나 불안했다. 외마디 비명은 계속 들렸고 오지 않는 어른들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이튿날, 학교를 다녀와서야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알았다. 마을 어른들이 토끼를 잡기 위해 만들어 놓은 목로에 노루가 걸렸다고 한다. 어젯밤의 그 공포의 소리는 노루의 비명이었던 것이다. 추늬는 말로만 듣던 노루를 보고 싶었으나 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어른들이 이미 노루피를 나눠 마셨다고 한다. 추늬는 순간적으로 우웩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제의 공포도 아니었다.
동네의 동물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윗집의 우리에서 잠자던 십여 마리의 염소들이 그 비명에 놀라 어디로 갔는지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은 염소를 찾아 온 산을 뒤졌다. 가까운 곳에 염소가 숨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있어도 겁먹은 듯한 새끼 염소가 숨어있기를 바라며 추늬는 자기만의 숲으로 가 보았다.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추늬는 집에 오지 못하고 어른들을 따라 산속을 뒤졌다.
그날 밤이 깊도록 염소를 찾아 헤맸지만 발견한 염소는 몇 마리 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이제 우리 문을 열어 놓고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 후 한동안 추늬는 매일 엄마로부터 마을에 돌아온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눈으로 확인하러 집집마다 소, 닭, 토끼, 염소 우리를 순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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