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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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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7일 19시 46분 등록

내가 사랑한, 그리고 나를 사랑해준 이들을 위하여

 

짐 로허와 토니 슈워츠는 그들의 책 <에너지 발전소>에서 사람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힘을 에너지의 차원으로 본다면 그것은 신체 에너지, 감정 에너지, 정신에너지, 그리고 영적 에너지라고 말한다.   이러한 에너지는 차원을 형성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차원에서 개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성장과 발전을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위해서 성장과 발달은 밑에서 위로 즉 신체에서 시작하여 감정, 정신 그리고 영적인 발달로 이루어지지만, 반대로 동기화는 그 역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즉 확고한 목표를 가질 수 있는, 그런 가치와 의미를 지닌 태도를 지님으로서 가능해진다. 그 구체적인 표현은 몰입이다.

 

나와 선수들이 그 도저히 불가능한 시합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승리가 우리와 한국의 펜싱에 반드시 필요한 넘어서야 할 관문이며 자신 스스로와 펜싱에 관여된 많은 사람들과 국가에 대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여정은 우리에게, 그리고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궁극적으로 세계무대에 당당히 설수 있는 힘을 주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현명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만 더 가치 있는 무언가에 도전하지 못한다. 그저 가족들을 잘 보살피고, 일상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자동항법 장치에 의해 항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치있는 경쟁이란 누구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는 상상이 불가능하고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을 것만 같은 경쟁에서 불안과 고뇌와 함께 온갖 노력을 다하여 이겼을 때 그것은 참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한 개인의 삶과 존재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부여해 준다.

 

훌륭한 선수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요인 즉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지원을 필요로 한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고도의 테크닉을 배울 수가 없다.  원리와 법칙을 알고 충분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또 강인한 체격과 키가 190이 넘는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선수와 잘 알아먹지 못하는 언어들을 토해내는 심판들 사이에 처음 서 있어본 사람이라면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것이 경험이다. 재능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실제로 체험함으로서만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서울올림픽 유치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운 좋게 나는 20대에 국가대표 코치로 발탁되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많은 경험과 과학적인 방법론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삶과 인생을 얼마나 힘들고 험난한 길을 걷게 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내겐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지도자가 된 이후에 오랜 시간 동안 보아왔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과 코치들이 탁월한 재능과 열정 그리고 눈물겨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었다.  20대에 국가대표 코치라는 행운을 거머 쥔 나는 항상 그들에게 빚을 진 기분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없이 많은 선수들과 코치들이 없었다면 우리는(그 당시의 나와 선수들) 결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비록 훌륭한 선수가 경쟁 상대들과 패배를 딛고 일어서 성실과 끈기로 끝없이 노력함으로 인해서 완성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없이는 훌륭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책을 쓰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나의 선수와 코치로서의 성장과정이 그렇게 순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운 좋게 기회를 얻었고 성실하게 노력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가, 특히 한국의 무분별한 학교체육 정책과 스포츠 진흥정책들은 정말로 많은 희생 위에 존재한다. 오로지 성과와 승자만을 지향하는 이러한 정책은 많은 폐단을 가지고 있다. 많은 선수나 코치들이 형편없는 삶을 살거나 부랑아로 전락한다. 또 그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배우고 그대로 답습한다. 그들은 이기면 지나친 우월감에, 지게 되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성공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들은 좌절감과 패배감으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꼭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전국체전에서 일등을 해야만 삶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승리라도 그것이 가치와 보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과 그러한 작은 승리가 더 높은 목표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알려질 수 있는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여정에 이름 없이 사라져간 많은 무명의 선수와 코치의 희생이 결코 값없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실패했을 때에도 내가 선수들에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너희가 비록 오늘 시합에서 졌다고 해서 너희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희의 몸 안에 그대로 있다. 그 불굴의 정신과 성실한 노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올림픽은 4년마다 계속되고 그 사이에 2년마다 아시안 게임이 있고 해마다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너희가 포기하지 않는 한 기회는 언제나 있다. 그러나 너희의 정신이 쓰러져 포기한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난다.  나는 너희가 시합에 졌더라도 정신만은 살아서 돌아가기를 원한다. 사람의 목숨은 빼앗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의 정신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은 한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살아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한국선수들은 4년 뒤에 시드니 올림픽에서 최초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A급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지금도 많은 선수와 코치들이 힘든 훈련을 하고 생활도 되지 않는 박봉으로 생활하며 꿈을 키운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열정과 의욕만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 재능 없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좋은 기술과 연습량만으로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왜 이기려고 하는지 가치와 의미가 왜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열정과 노력을 가진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나는 대 목수이셨던 아버지로부터 날림 공사는 하지 않는다. 잡은 한 번 지으면 백 년을 사는데 제대로 지어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과 내 자손과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올바른 일이다. 라고 말씀하시던 장인정신과 함께 나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태도를 배웠었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 속에 굳건하게 가졌던 믿음이 있었다. 남자는 스스로 일어서서 강자가 되고 자기 자신과 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야 한다 였다

내가 비록 일 개 스포츠 운동 종목의 코치이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때내가 가르치는 선수들, 그들의 부모들, 소속팀과 협회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 곧 남을 위해서도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봉사란 자신의 일을 접어두고 주말이나, 혹은 틈틈히 짬을 내서 하는 것 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한 나라를 대표하던 국가대표선수의 코치였던 나만의 소박한 신념이었다. 그것은 짐 로허와 토니 슈워츠의 에너지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그러한 성장과 발달을 일으키는 동기화와 일치한다.

 

나는 펜싱을 사랑한다. 그것을 잘 알고 싶어 했고 또 잘 다루고 싶어했다.  오랜 시간 그 삶을 살아왔을 때, 나는 펜싱을 통해서 펜싱이 아닌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상대선수의 생각과 행동을 알려고 하듯이 타인을 알려고 노력하고, 선수의 태도와 행동을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줄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더불어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방향을 긍정적으로 이끌어 갈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내가 삶을 통해 펜싱을 하고 있는지 펜싱이 나를 통해 삶을 살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7개월여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된다. 다만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펜싱이 평범한 소년이던 나를 인생이라는 위대한 모험으로 초대했으며 힘겨운 시련을 이겨 내고 가치 있는 목표를 달성하게 했으며 보람 있는 삶을 살게 했다는 것과 그 모험은 계속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훈련장과 시합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쓰기 위해 글쓰기 공부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모험이다. 그러나 나는 노력한다.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 나 보다 더 많이 펜싱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사랑한, 그리고 나를 사랑한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가치 있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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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10.02.05 20:01:42 *.70.87.108
멋져요, 그대. '그대가 묻어있는' 글이 좋네요. 그대 삶과, 펜싱이 다시 보입니다.
시합장에서 서 있던 그대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그대가 같은 사람이란 걸 나는 알아요.
꼭 책을 쓰십시오. 그럼 나는 그 책으로 당신을 자랑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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