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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9일 09시 10분 등록

 

컬럼 : (쉽게 쓰는) 기술의 발전사 & 미래 고찰

 

 

인간 발전의 원동력, 도구와 기술

 

기술은 우리 주변에 편재한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예를 들면, 건축, 자동차,핸드폰, TV, 가스보일러 등등이 모두 기술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기술과 인간은 어떤 관계에 있고 기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도구 사용과 기술의 문화적 전수는 인간적인 존재 양태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인간이 진화 속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많은 부분 도구 제작 및 사용 기술의 터득과 전승 덕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화 역사는 기술의 역사에 기반을 둔다.

–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중에서

 

그렇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고, 다양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있었기에 약한 육체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지구의 지배자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시대부터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까지 발전해 오게 된 것일까?

 

환경이 유리하면 종이 번성하여 개체수가 늘어나고, 단위 면적당 밀도가 높아져서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 즉 확보량 보다 소비량이 많아지면 그에 합당한 적절한 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동물의 경우 적자생존에 의해 개체수가 자연적으로 조절되지만, 인간의 경우는 스스로의 의지로 생존을 위해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어 단위 면적당 생존할 수 있는 개체수를 증가시켰다. 그것이 인간의 생존 방식이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방안이 바로 도구의 사용을 통한 기술의 터득과 전수이었다. 역사적으로 이를 가능하게 한 많은 기술들이 있지만 이중 혁명적인(즉 인간의 삶의 형태를 바꾼) 기술로는 농업혁명, 도시혁명, 산업혁명 등을 들 수 있다.  

 

초기 인간은 동물처럼 사냥과 채집 생활을 통해 식량을 조달했다. 흔히 사냥과 채집 생활이더 고달펐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초기 인간의 절대 개체수는 지금보다 현저히 작았고 온 사방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고기와 먹을 거리가 널려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노동의 부담이 없었기에 생존을 위한 고민이라는 스트레스가 없었고 단순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이 넘치고 채집의 어려움이 생기면서 정착을 통해 스스로 먹을 것을 생산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친족들과 함께 부락을 이루어 살면서 공동 경작을 통해 스스로 먹을 것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자연적으로 생산되는 것보다 단위 면적당 더 많은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농업혁명(혹은 저밀도 농업혁명)이라 부른다.

 

보통 부족 단위의 경작으로는 생산할 수 있는 양이 한계가 있는데, 이는 변덕스러운 기후 환경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서 일정하게 공급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관개시설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대규모 시설은 일개 부족이 건설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따라서 여러 부족이 모여 힘을 모아 상호 혜택을 위해 이런 관개 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또한 이로 인해 생산된 초과 잉여분의 식량를 관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초기의 원시적 국가 형태의 원초문명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런 원시국가는 함께 모여살면서 도시 형태의 삶의 모델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를 도시혁명(혹은 고밀도 농업 혁명)이라 부른다. 도시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주요 기술들로는 청동 야금술, 수로 및 도로 건설 기술, 건축 기술 등이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대륙끼리 떨어져 상호 교류가 불가능했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6개 지역에서 상호 별개로 독립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초기 문명이 생겼다는 점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을 취하는가 보다.

 

이러한 도시 문명은 고대 말기 이후로 중세까지 내내 지속되었다. 문명은 대규모의 관개 시설을 관리하면서 그들의 국가적 경제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역사 속에서 많은 국가들이 세워지고 상호 경쟁을 통해 명멸해 갔다. 그들 중에는 영토 확장을 통해 국가의 범위를 엄청나게 확장시킨 국가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이들을 제국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로마제국, 몽골제국, 이슬람 제국, 대영 제국 등이 역사상의 한 시대를 풍미하며 국가의 기개를 온 세계에 떨쳤다. 이들 제국은 특히 상대 국가를 제압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전쟁 관련 기술에서 상대국가에 비해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어서 상대적 우위를 점유했다. 로마제국은 육군과 해군, 몽골제국은 기병, 대영 제국은 소총과 화약으로 무장한 전함 등이 이 우위를 가능케 해 준 전쟁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만든 장본인은 많은 교육을 받은 지식인 보다는 실제 생업에 종사하며 전문적으로 해당 기술을 익혀온 장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렵게 획득한 이 기술을 몹시 귀하게 여겨 자신의 근친에게만 구전으로 전달했다.

 

근본 담론으로서의 과학의 발전 과정

 

우리는 보통 예전부터 과학과 기술이 밀착되어 발전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생존과 발전의 필요에 의해 기술이 먼저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추상적인 사유로서의 과학은 삶의 풍요 기반 위에서 행해졌다. 과학이 기술을 이끌었다기 보다 기술에 의해 과학이 유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견해이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과학과 기술이 융합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과학혁명 때부터이고, 실제적으로 융합되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 것은 19세기와 20세기 들어서이다.

 

과학은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국가의 필요성에 의해서 발생하여 지원되는 실용적인 패턴을취했다. 하지만 여기에 유일한 예외가 바로 그리스의 자연철학이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순순하게 개인적인 지적 호기심에서 자연에 대한 추상적인 탐구를 시작했다.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누대에 걸친 자연 탐구의 여정 끝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마지막 분수령에서 향후 2000년 동안 지속된 세계관(지구 중심 우주론으로서 구형의 지구가 우주 중심에 멈추어 있다는 생각)을 창조했는데, 이는 고대 말기, 이슬람 문화권, 근대 유럽까지 이어지며 과학 전통을 지배했다.

 

17세기까지 세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던 자연관은 놀랍게도 2000년 전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한 모델과 거의 그대로였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세를 관통한 종교(기독교 및 이슬람교)의 힘에 의해 신학과 위배되는 자유로운 창조적 사고가 원천적으로 신의 이름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중세에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지적되면 바로 화형에 처해졌다. 어느 누가 쉽게 자유로운 사고와 자신의 목숨을 거래할 수 있을 것인가?).

 

코페르니쿠스가 이러한 자연관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저술에서 태양 중심의 지구의 공전 운동 모델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알려진 바와 달리 주장이 아니라 가설의 제시일 뿐이었다. 그것도 그가 죽기 직전 이 책을 출판했다. 가설일 뿐이라는 서문을 덧붙여서. 그도 종교 재판이 무서웠던 것이다. 이와 달리 적극적으로 자신이 만든 망원경을 이용해서 관찰한 결과를 기반으로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이 사실임을 적극 주장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유명한 갈릴레오이다. 그는 그의 저서 <두 개의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태양 중심의 세계관을 적극 주장했다. 당연히 이 때문에 그는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고, 재판정에서 자신의 신념을 꺾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차에서 내릴 때 땅을 짚으면서 저 유명한 그래도 이것은 움직인다(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남기게 된다. 이후 종교적 영향력이 많이 감소한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적 사실을 집대성하여 태양 중심의 전통적 세계관을 확립한 이가 바로 뉴턴이다. 그의 명저 <프린키피아>에서 그는 당대의 모든 물리학적 이론을 하나로 통합했다. 재미있게도 갈릴레오가 죽은 해에 뉴턴이 태어났다. 국가를 넘어(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과학의 천재 영혼이 이동했나 보다.

 

역사적으로 과학은 천문학, 역학, 수학, 광학 등이 연구의 주 대상이었는데, 이들은 일상적인 관찰에 의해 접할 수 있는 자연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을 고전 과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16, 17세기에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의해 기존에 없던 학문이 발생했다. 예를 들면 전기 효과, 물체간의 끌림, 열의 변환 등과 같은 새로운 현상들이다. 이러한 새로 발견된 사실을 다루는 전기학, 자기학, 열역학 등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들을 구분하여 베이컨 과학이라고 부른다. 이 두 과학 체계의 중요한 차이는 고전 과학은 알려진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하는 반면, 베이컨 과학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실험을 하는 데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 19세기에 일어난 2의 과학혁명으로 인해 고전 과학과 베이컨 과학이 통합되었는데 이로인해 기계 중심의 고전적 세계관이 완성되었다. 뉴턴과 칸트의 이론에 토대를 얻은 고전적 세계관은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규정하고 물질, 에테르, 에너지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제시된 다양한 이론들을 총 망라하여 우주의 물리적 측면과 자연 현상의 상호 연관성에 대해서 수학적으로 정확한 이해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 고전적 세계관을 1880년에 확립된 이후 채 몇 십 년을 가지 못하고 새로운 세계관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이 새로운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입증된 양자역학이었다. 이는 이 세계에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공간/시간 모두 상대적으로 측정될 수 밖에 없음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모든 물질은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으며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지닌 채 대상을 특정 구역 안에서 발견할 확률만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자연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비결정성을 드러낸다. , 우리는 자연에 대해 아무 것도 확실하게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으며, 존재할 확률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도래

 

기술적으로 볼 때 18세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은 농업에서 수공업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가정에서 공장 중심으로 우리의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는다. 산업 혁명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엄청나게 늘어난 인구와 이로 인해 정체된 경제 성장를 감당하기 위한 돌파구의 형태로 발생했다. 이 중심에 증기기관과 석탄/석유 등의 화석 에너지, 대규모 자금 조달을 가능케 한 금융 시스템 등의 기술이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어진 19세기와 20세기는 산업화에 먼저 성공한 나라들의 독주의 시대였다. 산업화는 전세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비례해서 자연의 황폐화와 환경 오염도 발생하게 되었다.

 

이제 다가온 21세기의 기술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여전히 기술 중심의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더 크고 더 빠른 기계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통신산업의 발달로 인해 단순 산업 사회가 아닌 산업과 서비스가 복합된 고도의 지식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 그 한 가운데에서 핵심 기술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 바로 IT 기술이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IT 기술은 분명 우리의 삶의 양식 중 하나를 바꾸고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필요한 것을 소유하는 패러다임에서 소유하지 않고도 언제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에 접속해서 소비할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바꿔주고 있다. 최근 우리는 구매비용을 지불하기 보다는 사용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에서 이러한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IT 기술 자체가 우리의 삶의 형태를 바꾸는 혁명적 기술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IT는 기존의 산업 프로세스를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 산업화를 가속화시키는 핵심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고찰

 

미래의 발전 방향은 산업화를 지속하던지 아니면 산업화의 발전의 한계를 인식하고 산업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노력을 하던지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맺고 있는데, 이 구절은 의미심장하게 곱씹어 볼 만 하다 생각된다.

 

역사는 세속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성이 있다는 생각을 최초로 공표한 것은 18세기의 계몽사상가들이었다. 그러나 진보는 반드시 일어나는 것도 필연적으로 지속되는 것도 아님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산업혁명과 그 귀결들은 지난 두 세기 동안 세상을 급속도로 또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변화의 산물로 도래한 현재 인류의 강화된 산업적 실존 양식은 지속되기 어려워 보인다.

 

산업적 실존 양식이 지속되기 힘들다면 우리의 미래의 삶의 양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엔트로피에서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한 저엔트로피 사회로의 회귀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의 방향성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엔트로피 문화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며 이 둘을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생명의 원천이 된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자연을 정복한다는 생각이 다른 생물과 전체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는 개념으로 대치된다. 태양 에너지 시대에 농업은 다양화된 유기 농법으로 바뀔 것이다. 또한 농작물을 멀리 떨어진 시장까지 수송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고 따라서 소규모 지역 영농은 좀 더 경제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전거와 걷기가 중요한 이동 수단이 될 것이다.

 

산업사회는 생산의 목적이 소비에 있고 노동은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지만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노동이야말로 의식의 계몽상태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은우리는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아는 데 도움을 주는 활동으로 신성시된다. 저엔트로피 문화에서 노동은 수면, 명상, 놀이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인식된다. 노동 없이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노동은 무엇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엄성과 목적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의 방향을 이러한 저엔트로적인 방식으로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삶을 기존의 산업화된 스타일에 가미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 삶의 일정 부분은 치열하게 산업화 된 IT 기술을 활용하여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또 한 편으로는 자연적인 삶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적절한 시기에는 보다 많은 삶의 시간을 저엔트로피적인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서는 제레미 리프킨의 다음 말이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택하고 난 뒤에야 인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구 실현에 충실한 시스템이다. 다만 정신적인 측면 보다는 물질적인 측면의 욕구 충족에만 심하게 치우친 측면이 많다. 이는 산업화 자체가 개인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연과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동양적인 사고에 중심을 둔 새로운 산업화, 또는 자연을 중시하는 중도적 산업화로 이제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수정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믿었다.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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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10.01.19 09:13:03 *.45.129.180
이번에 읽은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는 과학과 기술 발전의 세계사적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해한 것을 쉽게 쓸 수 있는지 테스트 해 보기 위해서 이번 컬럼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이것 역시 좀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새로운 버젼을 계속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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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1.19 19:50:38 *.160.33.244

이것저것 정리처럼 보인다.   칼럼으로는 산만하다.   너무 많다. 
추리고 잘 묶어 가지런히 하되, 한 곳을 열어 폭포처럼 흐르게 해라.  촛점을 맞추어야  물줄기가 흩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훈련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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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10.01.20 06:57:38 *.45.129.180
네, 선생님. 지적하신 부분 충분히 고민하여 수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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